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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06. 2022

내가 살고 싶은 곳

워킹홀리데이 국가 정하기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마음먹고 내가 가장 먼저 한일은 국가를 정하는 것이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국가는 총 23개국이었다. 이때 나는 이른 나이에 떠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 여정에 어느 정도의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최종 목표는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생활하기'였다.


영어는 평생의 숙제 같은 녀석이었다. 같은 언어 이건만 전공이었던 일본어는 비교적 쉽게 익혀왔지만 이 녀석은 일본어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해왔는데, 참 쉽지가 않았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 영어를 하며 일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세계여행에 돌아와서 나는 내가 일하던 업계의 국내팀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쉽게 구해질 줄 알았는데 이력서를 넣었음에도 생각보다 연락이 오는 곳이 없자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을 때쯤,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은 국내팀이 아닌 해외팀을 구하고 있었고 우선 면접이라도 보기 위해 해외팀 업무가 가능한지를 묻기 위한 전화였다. 그때의 나는 과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대뜸 '알려주시면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는데, 또 막상 합격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이력서를 넣고 전화가 안 왔을 때보다 더 초조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 흔한 토익 영어 성적도 없는 영어 문맹이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합격을 했다고는 하지만, 일은 실전이었다.


출근 날짜가 정해지고, 6개월 간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해외에서 날아오는 메일을 볼 때마다 극도의 긴장감이 몰려왔다. 구글 번역기, 파파고 번역기, 영어 문법 검사기까지 돌려가며 나는 영어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내가 뱉은 말이 있으니 해내야만 했다.


그렇게 1년쯤 흐르다 보니 세상에 그 숙제 같던 녀석이 조금씩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계는 계속해서 보였다. 내 영어는 영작에서 멈춰 있었다. 말은 전혀 되지 않았다.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에 완벽하게 실수 없이 써야 한다는 내 강박이 내 말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기초도 없었다. 그저 업계 용어를 익히고 익숙한 문구를 사용하여 메일을 작성할 뿐 내 영어실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이 숙제 같은 녀석에게 흥미만 생겼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소득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혼자서 공부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기왕 환경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나는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기로 했다.


영어권 국가 중 내가 선택한 곳은 호주였다.


영어권 국가 중 워홀 비자를 가장 받기 쉬운 국가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과 가장 닮은 곳이 호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계여행 중 나는 서호주의 퍼스에 3주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호주의 하늘은 한국에서 바라봤던 하늘과 달리 낮게 내려와 있었다. 5시가 되면 도시가 조용한 대신 불빛에 가려졌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초록의 것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낮게 내려온 하늘과 대자연을 간직한 그곳에 있다 보니 나도 저절로 여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자연이 주는 치유력이 내게도 통한 것이다. 물론 삶이 된다면 그곳은 또 다른 곳으로 바뀌겠지만 나는 호주인들의 태양을 가까이하는 삶이 좋았다. 


한국에서 나는 늘 살이 타지 않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고 조금이라도 햇빛이 없는 그늘에서 쉬기를 원했다. 호주인들은 나와는 반대였다. 선크림 대신 태닝오일을 바르고 햇빛 아래에 몸을 맡겼다.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볼 것 없이 자연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들의 여유로움에 나 또한 한껏 여유를 즐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남들과 같이 보폭을 맞춰서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자연이 가깝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정착하게 된다면 나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 속에서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핀란드에 머물게 된 3명의 주인공이 문득 '이 국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여유로워 보이는 걸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이후 그 질문에 매일 커피를 마시러 오던 핀란드 청년이 '이곳엔 숲이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했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 난해한 장면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했었다.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우연히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나는 그때서야 그 장면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도 호주의 풍경이 그랬다.


아름다운 서호주를 떠나오던 날 나는 왠지 이곳에 다시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여행을 통해서 이곳을 다시 올 거라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긴 호흡으로 그곳에서 머물게 될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지금의 나는 다시 이곳 호주이다. 바쁜 일상에 익숙해져 그날의 나처럼 호주의 자연을 즐기기에는 아직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설프게 이곳 사람들처럼 해변에 앉아서 오후의 햇살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는 건 아무래도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뜻일 테다.


32살의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곳으로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 고민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지만 어느 날의 내가 그랬듯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더 많은 양분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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