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싶지만 퇴근하기 싫어

나의 일상

by 싸이진

퇴근 버튼을 누르지 못하겠어

오늘도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시나리오 검토도 해야 됐고, 이전에 검토 중이던 UI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다시 열어봐야 했다.

그 와중에 협력사에서 장비 교체를 한다고 해서 보안 관리 업무도 챙겨야 했다.

오전에는 화상회의만 붙잡고 있다가, 오후에는 디자인 시안을 확인했고, 중간중간 전화로 장비 반입 시간을 조율했다.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도, 한 가지를 완전히 끝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화면에는 여전히 여러 창이 열려 있었고, 메신저에는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사무실이 조금씩 비었다.

의자를 밀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도 슬쩍 시계를 봤다.

저녁이 지나 야근 시간도 넘었는데, 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지 않을까.’

너무 많은 일을 오갔기 때문에, 그 사이에 빠진 조각이 하나쯤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다음 주에 대한 불안함과, 분명 어딘가에 빠진 조각이 있는 느낌. 그 생각이 자리를 붙잡았다.


다음 주에 대한 걱정도 한몫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음 주에 대한 걱정이다.

‘다음 주의 내가 이 일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끌어와 걱정한다.

오늘 급하게 넘긴 판단이 며칠 뒤 다시 문제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오늘 처리하지 않았던 일들이 다음 주에 더 많은 일로 쌓여 되돌아오지는 않을지 머릿속에서 장면이 재생된다.

구체적인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는 내일과 다음 주가 산처럼 부풀어 있다.

그래서 퇴근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태를 인정하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불안을 붙잡고 앉아 있는 시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일어나기 힘든 건 통제의 끈을 놓기 싫어서에 가까운 것 같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아직 내가 오늘을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모니터가 켜져 있고, 메신저가 열려 있고, 파일이 눈앞에 있는 상태. 그 안에서는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메일을 다시 열어보고, 이미 읽은 내용을 한 줄씩 내려 읽는다.

파일을 한 번 더 스크롤하고, 체크해 둔 항목을 다시 본다.

사실 달라질 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우스를 움직인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 혹은 다음 주에는 해야 할 일을 내가 인지는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잠깐 안심을 준다.

그냥 덮어두고 가는 건 아니라는, 최소한의 변명 같은 것.

오늘도 마음이 조금 불편한 채로 퇴근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서, 아까의 화면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려 한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는 기분을, 일단은 잊어가면서.

완전히 놓지는 못한 채로, 억지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듯 그렇게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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