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도망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

by 싸이진

“어른이라면 책임져야지”라는 말의 거리감

“어른이라면 책임져야지.”

이 말을 들을 때면 그때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늘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책임을 지는 걸까.

막연함이 먼저였다. 실제로 책임을 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책임’이라는 단어만 크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막연함 뒤에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붙어 있었다.

어딘가 내가 덜 자란 사람 같다는 기분. 남들보다 늦게 크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도 비슷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인가.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인가. 그 질문은 크게 소리 내어 말한 적은 없지만, 조용히 오래 붙어 있었다.


내가 떠올렸던 책임의 이미지

내가 상상하던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을 맡기면 빈틈없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

책임은 그런 사람들의 특성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기준에 나를 세워두면, 나는 늘 조금씩 미달이었다.
일을 하다 자주 멈칫했고, 계속해서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를 속으로 계속 가늠하면서 계속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어떤 날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하루 기분이 다 무너졌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스스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기 싫었지만 계속했던 날들

퇴근 후 카페에서 지인을 만났던 날이 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거의 한숨처럼 말했다.
“하 나 책임감이 없나 봐. 뭐 하나 잘 해내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었다.

일도, 맡은 프로젝트도, 매일 반복되는 일정도.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계속 이어가는 일이 버거웠다.

지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너 계속하잖아.”

위로 같지도, 칭찬 같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이나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내가 이 일이 맞는 걸까 고민하면서도 노트북을 다시 열었던 밤이 생각난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감 시간에 맞춰 파일을 보냈던 날.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지만, 그래도 피드백을 위해 보고를 했던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회사 건물로 걸어 들어갔던 날.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좋은 태도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책임감이란 도망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인과의 대화 이후로, 책임은 잘 해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하기 싫어도, 잘하지 못해도, 마음이 자주 흔들려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속도가 느려도, 중간에 몇 번을 멈춰도, 포기하지 않고 끊어내지 않는 것.

그런 것이 어른의 책임감이 아닐까.


능숙함이나 단단함보다는, 어쩌면 지속성에 가까운 말처럼 느껴진다.

매일 비슷한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

마음이 복잡해도, 다음 날 또 자리에 앉는 사람.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다는 것.
그 정도면, 어른의 초입에 있는 나로서는 충분한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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