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오랜만에 스키를 신었을 때, 몸은 생각보다 말을 듣지 않았다.
발목은 굳어 있었고, 허벅지는 쓸데없이 힘이 들어갔다. 스키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발을 움직이는 게 어색했다. 리프트 쪽에서 들려오는 금속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는데, 혼자 스키장에 입장했던 나는 그 소리들 사이에서 괜히 더 서툴게 서 있었다.
오늘 스키를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콘도에 놀러 와서 스키장까지는 같이 왔지만 부모님은 스키를 타지 못했다. 어떻게 타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스키장에 들어가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장비를 대여하는 곳을 찾아야 했고, 보관함 번호를 확인해야 했고, 부츠에 발을 밀어 넣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리바리한 나를 중심에 두고 엄마 아빠와 “저기서 빌리는 거 아니야?” “이거 이렇게 신는 건가 보다.”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셋이 머리를 맞댄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누구도 확신은 없었지만, 그냥 같이 서서 표지판을 읽고, 주변 사람을 흘끗 보며 따라 했다.
스키장 입구로 들어간 뒤, 나는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부모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두 분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어릴 때 소풍 가던 날 교문 앞에서 보던 장면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구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학교 면접 날도 그랬다. 겨울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아 있던 아침이었다. 교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서류를 확인하고, 넥타이를 한 번 더 만졌다.
부모님은 괜히 학교 건물을 올려다보며 “긴장하지 말고. 힘들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아” 같은 말을 건넸다. 그 전날까지는 예상 질문을 같이 읽어보며 연습했고, 어떻게 학교까지 가면 좋을지 셋이 앉아 이야기했었다.
식탁 위에는 프린트물이 흩어져 있었고, 나는 연습하듯 몇 번이고 자기소개를 말했다.
하지만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은 늘 나 혼자였다. 경비 아저씨 옆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 때, 뒤에서 들리던 부모님의 목소리는 거기서 멈췄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그렇게 움직였다. 내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하면 셋이서 같이 고민했고, 어느 순간이 되면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자리에 남았다.
나는 혼자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시험을 치고, 동아리 면접을 보고, 새로운 곳에 지원서를 낼 때마다 결국 문을 통과한 건 나였으니까. 결과를 받아들인 것도 나였고, 그 이후를 감당한 것도 나라고 여겼다.
그런데 가만히 떠올려보니 내가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들 뒤에는 항상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방법을 몰라도 같이 고민해 주던 사람들. 내가 넘어질까 봐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 답을 대신 말해주지는 않지만, 문 앞까지는 함께 와주던 사람들.
나는 그렇게 자라왔다는 걸, 오늘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오늘 스키장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장면이 오래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었고, 부모님은 여전히 뒤에 서 있었다. 스키를 끌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동안, 등 뒤 어딘가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희미하게 따라왔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 자라온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