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레시피

01

by 시프트육육

“수고하셨습니다!”
저마다 우렁찬 인사를 주고받으며, 시끌벅적하게 주변을 정리했다. 마감 후 가득 쌓인 설거지와 식재료 더미를 애써 못 본 척하며, 복은 종종걸음으로 주방을 빠져나왔다.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조급한 마음이 드러나는 발걸음으로 복도 끝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복도를 꺾자 넓은 식당 홀이 나타났다.

“아직이야?”
복이 홀 매니저 K에게 물었다. K는 의자를 테이블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의 시선이 자연스레 홀 한가운데의 식탁으로 향했다. [예약석]이라고 표시된 그 자리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복은 그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정중하게 식당 문을 두드렸다. 복은 순간 숨을 멈춘 채 문 쪽을 바라봤다. 혹시 그토록 기다리던, 그 예약자일지도 모른다. K가 “뛰지 마”라던 말을 무시하고, 복은 문 쪽으로 달려갔다.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그 기세에 놀란 듯, 문 너머에는 말쑥한 노인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복을 응시했다.

“초대받고 왔는데, 아직 영업 중입니까?” 검은 정장, 얼룩 하나 없는 셔츠 깃,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왼쪽 손목에는 은색 시계가 느슨하게 감겨 있었다. 세상 물정에 닿지 않은 듯한 얼굴에 스며든, 익숙한 냉소. 복은 그 모든 것을 단숨에 읽어내고는, 여유로운 웃음으로 맞이했다.
“물론이죠. 어서 들어오세요.”
복은 자연스럽게 노인의 외투와 가방을 받아 들었다.
“오시는 길,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불편했다기보다... 경황이 없었지.”
노인이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노인은 안내받은 [예약석]으로 향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가 자기 자리였다는 듯, 자연스럽고 익숙한 몸짓이었다.

“죽었는데도 식욕은 살아 있는 게, 좀 웃기는군.”
노인이 복을 향해 가볍게 농을 던지듯 말했다. 홀 한쪽, 주방 쪽에서 마감을 마친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노인이 복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다 가버리면, 내 식사는 어떻게 되는 거지?”
허기를 참던 노인은 약간의 신경질을 숨기지 못했다.
“걱정 마세요. 손님의 식사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준비해 드릴 겁니다. 오너께서 특별히,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복이 조심스럽지만 힘 있게 대답했다.
“제 예상보다 조금 늦으시긴 했지만, 문 닫기 전에 오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뵙기 어려워서 혼났어요.”
복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들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복은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노인 혼자 남은 식당 홀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시계 초침 소리만 또박또박, 공간을 가로질렀다. 은은한 조명이 내려앉은 식탁 위엔 흰색 린넨 천이 곱게 깔려 있었고, 중앙엔 이름 없는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생화는 아니었지만, 마른 꽃에서 퍼지는 향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노인은 고개를 숙여 향을 맡더니,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뻗어 꽃잎 하나를 천천히 짓이겼다. 세월이 깃든 손끝. 그가 꽃잎을 누르는 움직임은, 오래된 습관처럼 조용하고 단단했다.

복은 칼날 끝을 가볍게 세워 빛에 비춰보았다. 반짝이는 날에 오너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그 모습에 놀란 복은 그만 칼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오너는 발소리 하나 없이 다가와 복의 코앞에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칼을 들어 복의 손에 다시 쥐여주었다.
“왜 그렇게 놀라? 귀신이라도 본 거야?”
킬킬, 귀신답게 웃었다.
“제발 인기척 좀 내고 다니면 안돼요?”
복이 발끈 하자,
“인기척 내는 귀신도 있냐?”
오너는 복의 뺨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어 번 툭툭 치며 말했다.
“됐고, 너. 내가 말한 규칙 잘 기억하고 있지?.”
복은 그 말에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마침 오셨어요. 오너가 말씀하신 손님.”
칼을 다시 고쳐 쥔 복은, 비늘을 벗긴 생선의 반들반들한 살을 조심스레 포 뜨기 시작했다.
“응, 알아.”
오너는 짧게 대답하고 포 뜬 날생선을 날름 먹고는 샐쭉 웃었다.
“요리 끝나면 꼭 불러. 재밌겠다.”
그리곤 잠시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오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복은 그럴 줄 알았다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식탁 위에는 한 상 가득 요리가 놓였다. 싱싱한 생선회부터, 연기가 피어오르는 찜 요리, 투명한 국물에 떠 있는 맑은 수프, 노릇하게 구워진 육고기, 그리고 정갈한 절임과 반찬들. 저마다 다른 온도와 향기가 공존하는 그 식탁은,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의 만찬 같았다. 죽은 이를 위한 만찬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복은 마지막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식기와 물, 모두 따뜻하게 데워 두었습니다. 식사 중에 불편하신 점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노인은 칼질을 하기 전, 잠시 손을 모아 식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지막 만찬도, 참 풍요롭군.”
복은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막상 노인이 눈앞에서 식사를 시작하자,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노인은 젓가락을 들었다. 조심스럽게 생선 한 점을 집어 들고, 천천히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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