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레시피

02

by 시프트육육

눈을 뜨자마자, 입 안에선 쇠 맛이 가득 났다. 텁텁한 피비린내가 콧속을 훑고 지나가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복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뒤통수로 날아든 커다란 고함이 귓속을 울렸다.
“어이! 처 자빠져 있을 시간 없어! 온장고에 고기 들여놨으니까 당장 썰어!”
복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주방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당 뒷주방과 도살장이 섞인 듯한 공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죽은 공기 속에서, 사람 같은 존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검붉은 살점이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엔 핏물이 배수구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복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머리를 약하게 흔들었다. 기억이 희미하고, 몸은 멀쩡한데 살아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상하게도 통증도, 감각도 무뎌 있었다.
“뭘 멀뚱멀뚱 서 있어? 손님 기다린다니까!”
옆에서 고함을 지르던 남자는 붉은 눈을 크게 부라리며 복을 향해 고무장갑을 툭 하고 던졌다. 그의 가슴에는 P라는 명찰이 달려있었다. 복은 반사적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칼을 들었다. 이유도 모른 채. 단 하나 확실한 건, 이곳은 살아 있는 곳이 아니었다.


칼끝이 도마 위를 훑을 때마다 불쾌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복은 베는 감각을 지우려고 애썼다. 살점의 결이 너무 익숙했다. 기름기와 핏물이 얽힌 앞치마, 알 수 없는 생물의 뼈들이 수북이 쌓인 싱크대.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와 낯선 주방. 복은 모든 게 낯설고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주변 뭐 하나 파악되는 것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소란스럽던 주변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바삐 움직이던 손들이 일제히 멈췄다. 칼 소리도, 불 끓는 소리도, 심지어 숨소리마저도 사라진 듯했다. 식은 형광등 아래, 정적만이 짙게 고였다. 복은 고개로 차마 들지 못하고 눈알만 살짝 들어 올렸다. 주방 입구 쪽,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이내 곧 방향을 틀었다. 발자국이 들리지 않는데도 그의 걸음은 너무나 선명했다. 분명히 복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복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방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바들바들 떨던 영복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머물던 숨 한 가닥이 미끄러졌다. 깜짝 놀란 복이 두 손으로 입을 막기 위해 눈을 번쩍 뜨자, 복 앞에서 샐쭉 웃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안녕~ 네가 영복이구나.”
남자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라곤 생각지 못할 만큼 낮고, 억양은 어딘지 간섭 없이 흘러가는 물 같았다. 복은 대답하지 못했다. 함부로 입을 열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자는 대답 없는 복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식당이야. 한마디로 이승과 저승 그 사이에 있는 식당이지. 망자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야. 나는 이 식당의 주인이고.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와. 너한테 그를 위한 접대를 맡길 거야. 알았지?”
“네? 제, 제가요? 왜요?”
복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새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았다. 그와 반대로 남자의 손은 건조하고 창백했다. 남자는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규칙은 세 가지”
1. 내 말에 토 달지 말 것.
2. 레시피대로 정확하게 요리할 것.
3. 음식은 절대 먼저 맛보지 말 것.


복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복은 내내 속에서 끓던 말이 입 끝을 뚫고 튀어나왔다.
“자, 잠시만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제가 이곳에 왜 있는 거죠?”
남자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힘겹게 마주친 눈동자는 동공이 짙게 번져있어 오래 마주 보긴 힘들었다. 남자는 복을 내려다보며 입으로 쯧 소리를 냈다.


“이번 일만 잘 마치면 알려줄게. 그러니까, 잘해. 규칙 어기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복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톡톡 두드린 게 어깬지 뺨인지 복은 긴장한 탓에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남자는 유유히 주방을 빠져나갔다. 복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남자의 그림자 한끝마저 사라지자, 주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소음이 살아났다. 기름 튀는 소리, 주문받는 소리, 웍 돌리는 소리, 무언가 끓는 냄새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복은 남자한테 받은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낯선 재료와 익숙한 단어가 뒤섞인 요리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코스 마지막 줄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파이팅!]
복은 속으로 생각했다.
‘파이팅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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