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벽, 무궁화호

by 박계장

1993년 3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던 나는 친구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뚜렷한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만으로 밤 11시 무렵 부전역에서 무궁화호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영주를 거쳐 강릉으로 향하는 긴 여정이었다. 친구는 대학을 휴학하고 시험 준비 중이었고, 나 역시 막연한 들뜸과 답답함 사이에서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우리는 수원에서 온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둘을 만났다. 그들도 무작정 여행 중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우리와 앞뒤로 앉아 있었는데, 의자를 젖히며 어느새 네 명이 마주 보게 되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부터 낯선 사이였던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녀들은 밝고 솔직한 태도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부산 여행을 마친 후 강릉에 들렀다가 수원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보다 두 살이 어린 그들은 처음엔 수줍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지만,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금세 익숙한 동행처럼 편안해졌다.


"어디 가세요?" 그녀들 중 한 명이 물었다.


"딱히 정해진 데는 없어요. 경포대 일출도 보고, 정동진도 가볼까 합니다." 내가 그렇게 답하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정해진 일정 없어요. 같이 다닐래요?"


뜻밖의 제안에 친구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기차는 덜컹이며 밤을 갈랐다. 친구는 제대후 학교에서 만난 후배와 이별한 뒤로 우울감에 빠져있던 터라, 이런 환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웃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게는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영주역에 3시경에 내려 강릉행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1시간을 역사 안에서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핸드폰도, SNS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말 한마디와 눈빛 하나에 집중하며 친밀함이 깊어졌다.


강릉행 열차로 갈아탄 뒤에도 한동안 이야기는 이어졌다. 하지만 점점 말수가 줄었고, 차창 밖 풍경은 어둠 속에 잠겨갔다. 객차 안은 졸음과 잔잔한 여운에 젖어 조용히 가라앉았다. 쉽게 잠들지 못할 줄 알았던 마음도, 기차의 규칙적인 흔들림과 하루의 피로에 이끌려 서서히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얼굴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에 눈을 떴다. 객차 안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창밖, 동해 바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바다 위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 붉은 태양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고, 빛은 잔잔한 물결 위로 일렁이며 객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할 만큼, 고요하고 찬란한 순간이었다.


다음 날 경포대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지만, 그보다 먼저 기차 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의 동해 일출은 단순한 자연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청춘의 한때를 붉고 따뜻하게 비추던 순간이었다. 짧았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 새벽이었다.


강릉역에 도착한 우리는 역 앞에서 관광지 지도를 얻고, 시내버스를 타고 경포호와 선교장을 둘러보았다. 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봄기운이 서서히 깃들고 있었다. 호숫가에서 풀빵을 나눠 먹으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오후에는 오죽헌을 찾아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모든 풍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해가 기울 무렵, 다시 버스를 타고 경포대로 향했다. 해수욕장 근처 민박집을 하나 잡고 짐을 풀었다. 바닷가에 앉아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맥주를 나누었다. 바다와 노을, 젊음과 웃음이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던 중, 문득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가방에서 동전을 꺼내 공중전화로 향했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청에서 전화 왔어. 내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래."


그 순간, 술기운이 싹 가셨다.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일상이 다시 현실로 다가왔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그녀들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내일 부산 가야 해. 서구청으로 발령났대."


잠시 멍한 정적이 흘렀고, 이내 그녀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진짜 가야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쉽네요. 내일 정동진에서 같이 일출 보려 했는데..."


그 말에 친구도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말없이 잔을 부딪쳤다. 예정에 없던 만남과 예상치 못한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백사장에서의 술자리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파도 소리에 섞인 웃음, 간헐적인 침묵, 잔잔한 감정의 물결이 흘렀다. 누군가 말했던 약속이 지금도 기억난다.


"부산이든 수원에서든, 꼭 다시 만나요."


다음 날 새벽, 친구와 나는 조용히 짐을 쌌다. 복도를 지나며 문득 그녀들의 방문 앞에 시선이 멈췄지만, 문을 두드리진 않았다. 전하지 못한 인사는 마음으로만 남겼다.


첫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 창밖은 밝아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묘하게 허전했다. 함께 나눈 하루가 너무 짧아서인지, 그녀들과의 추억은 오히려 더 오래 남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는 서부터미널에서 헤어졌고 서구청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경이었다. 야전상의에 워커 차림,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총무과 문을 열었다. 인사담당자는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내일, 정장 입고 다시 오세요."


총무과 인사주무의 첫 한마디는 무뚝뚝했고, 사무실의 공기는 냉랭했다. 내 인사기록상 입직일은 1993년 3월 24일로 되어 있었지만, 연금공단에는 하루 빠른 3월 23일로 등록되어 있었다.


몇 해 전, 하루 차이의 사유를 연금공단과 인사부서에 문의했는데 어디에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두 기록을 일치시킨다며 연금공단의 기록이 수정되었다. 나는 그 차이가, 아마도 군복 차림으로 찾아갔다가 '내일 정장 입고 오라'는 말을 들었던 그 날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함께 여행했던 친구는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IMF 외환위기 시절, 채용이 거의 끊겼던 시기를 견디며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냈다. 결국 해양경찰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가 강릉으로 향하던 기차에서 감격하며 보았던 동해바다에서 근무 중이다. 늦은 결혼 끝에 얻은 아들을 키우며, 이제는 또 다른 삶의 무늬를 그리고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부전역에서 강릉까지 고속열차가 운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출발하면 당일 관광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영주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10시간 넘게 덜컹거리며 달렸던 그 시절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 시절엔 모든 게 느렸지만, 그래서 가능했던 것들이 있었다. 낯선 이들과 나눈 대화, 종이 지도 한 장을 펴놓고 고민하던 동선, 말없이 마주 보며 웃던 순간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졸음과 설렘이 뒤섞인 새벽, 기차 창밖으로 붉게 솟던 일출과 같은 순간들은 더욱 그러했다.


삶에는 그렇게 짧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환히 밝혀주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특별하지 않아도, 기록되지 않아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풍경들이 있다. 때로는 그런 기억 하나가 고단한 하루를 견디게 해준다. 무궁화호에서의 그 짧은 만남은 내게 그런 순간이었다.


지금 그녀들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수원의 어느 거리에서, 혹은 어딘가의 바닷가에서, 나처럼 어느 날 문득 그날의 새벽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다를 따라 달리던 열차 안, 말없이 마주 보며 미소 짓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남이 짧았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처럼, 때로 인연은 그렇게 아주 잠깐 스쳐가며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긴 설명도 약속도 없이, 단지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게 된다.


그날 밤, 우리는 잔을 부딪치며 약속했다. "부산이든 수원에서든, 다시 만나자."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기억은 흐릿하다. 다시 만난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일상에 파묻히며 그 약속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아쉬움은 오래도록 남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 하루가 조용히 남아 있었다. 문득 낯선 도시를 지날 때, 밤기차의 진동을 느낄 때, 혹은 기차 안에서 마주 본 붉은 새벽빛이 떠오를 때면, 그들이 생각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도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그날의 동행들도 분명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날을 떠올릴 때면, 내가 그러하듯 그녀들의 마음에도 따스함이 스며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