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길의 가치

부과장이라 불리는 서무에 관해

by 박계장

공직에 첫발을 디딘 날, '서무'라는 낯선 단어가 내 귀에 들어왔다. 사무도, 총무도 아닌 그 용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부르는 호칭이 되었다. 서무(庶務)는 한자 그대로 '여러 가지 일'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이 의미는 충실히 구현되어, 부서의 잡다한 일들이 모여 하나의 역할을 이루고, 그 역할은 결국 '모든 직원의 뒤를 받치는 사람'이라는 정의로 귀결된다.


서무의 자리는 대체로 연차가 낮은 행정직 공무원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유한 업무라기보다는 부서의 잔일을 도맡는 자리이며, 그래서 대개 신입 행정직에게 그 업무가 맡겨진다. 나의 경우는 이례적이었다. 기술직임에도 보건소 두 곳, 시청 사업소에서 햇수로 5년 가까이 서무 업무를 경험했다. 내가 발령받은 시기마다 행정직이 없거나, 있어도 퇴직이 임박한 연차 높은 분이 근무하고 있어 서무 일을 맡기기에 부적절한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그 역할은 내 몫이 되었다.


서무의 업무는 그 범위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그 시절 나는 사무실에 몇 대 없는 귀한 물건인 컴퓨터를 관리하고, 공문을 접수하여 담당자에게 배당하며, 문서 발송, 공인 관리, 비밀기록물 관리, 시설 보안, 물품 구매 업무도 했다. 사무실 집기 하나가 고장 나도 담당자는 나였고, 문구류가 떨어졌을 때도 내가 해결해야 했다. 서무라는 역할이 '잡무'라 불리는 이유를 몸소 체험했다.


자료의 취합과 유관 부서 및 상위기관 제출은 서무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업무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이 과정은 단순하고 명확하게 진행된다. 유관 부서나 상위기관의 자료 요청이 오면, 부서원들에게 양식을 배포하고, 각자 맡은 영역의 자료를 받아 취합한 뒤, 검토를 거쳐 최종본을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이 과정은 단순한 취합과 정리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실무에서 서무가 겪는 어려움은 대개 업무 자체보다 그 업무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담당자들의 미흡한 자료 제출, 촉박한 기한, 갑작스러운 요구 변경 등이 겹치면서 서무는 모든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부족한 자료를 보완하고, 상급자의 불만을 감내하며, 다시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서무의 일상적 도전이다.


조직 내에서 서무의 역할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존재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기심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한다면, 서무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헌신을 통해 조직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 균형은 눈에 띄지 않을 때 가장 완벽하게 작동한다. 아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때, 서무는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서무가 특히 어려운 것은 업무의 다양성보다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의 고유 업무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서무는 과장부터 신입까지 모든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성격과 업무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의 요구를 조율하고, 때로는 불합리한 상황도 참아내야 하는 정신적 부담이 따른다.


기술직으로서 서무 업무를 맡게 된 그 예상치 못한 경험은 결과적으로 값진 자산이 되었다. 특히 사업소와 같은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는 서무가 본연의 고유 사무는 물론이고 인사를 비롯해서 예산편성 및 집행, 민원접수까지 부서 내 돌아가는 모든 상황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낯설고 부담스러웠지만, 그 일을 경험함으로써 행정조직의 흐름과 구조를 체득할 수 있었다. 한 부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후에 기술직으로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때는 물론이고 관리자가 되었을 때도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서무는 모든 구성원의 업무를 지원하는 자리지만, 역설적으로 누구와도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내가 어느 보건소의 서무로 일하던 어느 날 퇴근 후, 아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모임 같이 하는 ○○○이 그러던데 당신이 너무 불친절하대." 자신의 아내와 친한 사이인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사무적으로 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 직원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특별한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게 대했던 기억도 없었다. 당시의 나는 항상 업무에 쫓기고, 부서 전체를 아우르는 업무 특성상 여유가 부족했다. 타고난 과묵함과 드문 웃음이라는 내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런 오해는 서무라는 자리의 본질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전달되길 바라지만, 서무의 위치에서는 그 진심이 종종 업무의 벽에 가려진다. 내 마음속에는 따뜻함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에 다음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내 감정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오직 효율만이 남는다.


인원이 적고 역량 있는 리더가 있는 부서라면 서무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서무는 외롭고 고단한 자리가 된다. 이따금 서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 행정업무인데 뭐가 그리 힘들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서무의 표면만 보는 시각이다. 보이는 업무 이면에는 조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조정이 숨어있다.


최근 시청의 한 부서 서무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책상 서랍이 잠기지 않는다며 수리를 요청하자, "이런 걸로 업자를 부르냐"며 불쾌하게 반응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야근과 휴일 근무 시 이용하는 급량 식당 한 곳이 질과 서비스가 좋지 못해 같은 메뉴를 취급하는 평판이 좋은 다른 식당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몇 달째 묵살하고 있어 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얘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과거 내가 서무였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서무에게도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책상 수리업자를 부르기에는 애매한 상황, 그러니까 이것만으로 수리업자를 호출하는 것은 효용성이 떨어져 최소한 어느 정도 일감이 모여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급량 식당의 변경에도 모든 직원의 일치된 의견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이는 그 식당이 최고의 맛집이라 평가했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책상 수리가 늦어지고 식당 변경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무는 과정이 아닌 결과로만 평가받는다. 서랍을 고쳐주었는가, 식당을 바꾸었는가. 그의 고민과 노력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오직 불편함만이 남는다.


서무라는 존재는 실적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 대신, 기대는 항상 존재하는 자리이다. 작은 배려에도 "역시 우리 서무가 최고다"라는 칭찬을 듣고, 사소한 무심함에도 "왜 저렇게 차갑냐"는 오해를 산다. 명확한 책임과 권한은 부여되지 않지만, 부서 전체를 뒷받침하는 역할인 만큼,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다양한 기대와 감정의 접점을 감당해야 한다.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서무는 조직 속에서 실무적 효율성과 인간적 감정 사이의 균형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게 배우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직장 동료들은 그런 서무의 자리를 때로 '부과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또한 정식 직함은 아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서무의 수고를 위로하고 그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일 것이다. 조직도에는 없는 이름이지만, 그 호칭 속에는 서무의 노고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서무로서의 경험은 내게 조직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겼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화려한 실적 뒤에 숨겨진 수많은 손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간판에 이름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 뒤에서 기꺼이 자신을 지우며 일하는 이들의 헌신 덕분이다.


공직에서는 "서무를 경험해야 조직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제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다. 서무를 통해 나는 조직의 표면 아래 숨겨진 작동 원리를 배웠다. 나는 이제 조직의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의 의미를 안다. 그것은 단지 내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전체를 움직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서무는 나에게 개인의 역할과 전체의 조화, 효율과 인간성, 책임과 배려 사이의 균형을 가르쳐주었다. 그 경험은 단순한 직무 수행을 넘어, 삶의 태도에 관한 깊은 교훈이 되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하찮다고 여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 서무로서의 경험은 나에게 이 평범한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겨주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전화를 받고, 서류를 정리하고, 물품 구입 영수증을 챙기며 조직이라는 거대한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돛을 정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의 하루를 완성한다. 그 소중한 진실을 나는 '서무'라는 이름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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