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 헬리오스
20여 년 전 일이다. 시에서 위탁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에서 경력직 팀장을 뽑는데, 센터장이 팀장과 실무자인 나에게 면접관으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왔다.
면접관석 가운데에는 센터장이 앉았고, 시에서 참석한 팀장과 내가 그의 양옆에 자리했다. 정신의학과 교수이기도 한 센터장이 질문을 주도했고, 나는 옆에서 의례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가 이력서 한 장을 손에 쥔 채 응시자를 향해 물었다.
“이력서에 쓰신 이메일 주소, 이 아이디는 무슨 뜻인가요?”
응시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정확한 말은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믿는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정신건강 전문 간호사로 지원한 그였다. 아이디 하나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직업적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것으로 그 질문은 끝났다. 응시자가 나간 뒤 나는 교수에게 물었다. 왜 아이디의 뜻을 물어보셨느냐고.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디를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어떤 것이, 의도하지 않아도 이메일 주소로 대표되는 아이디 속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고.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 자신은 아이디를 깊이 있게 참고한다고 했다. 정신의학과 교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아이디를 떠올리고 있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무렵, 어디서든 아이디를 만들어야 했다. 포털 사이트에 가입하고,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이런저런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마다 아이디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그 일이 낯설었다. 온라인 세상에서 나를 대신할 이름 하나를 짓는 일인데, 막상 앉아 생각하니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르다. 자신의 취향을 담기도 하고, 좋아하는 단어나 의미 있는 숫자를 조합하기도 한다. 아이덴티티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개성 있는 아이디를 스스럼없이 만들어낸다. 그런데 나는 그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첫아이의 이름과 생일을 조합했다. 딱히 깊이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그냥 먼저 떠올랐고, 그것으로 정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디를 만든 사람이 꽤 많았다. 첫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조합하거나, 아이의 이름에 숫자 몇 개를 붙이거나. 특히 나와 비슷한 또래, 인터넷을 처음 접하던 무렵에 아이가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경우가 흔했다. 아마도 그 시절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아이디를 다시 생각했다.
두 가지 생각이 거의 동시에 밀려왔다. 하나는 부끄러움이었다. 아이디 하나에도 자신의 신념을 담아내는 사람이 방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 일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는 빠르고 부지런했지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서툴렀다.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방향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삶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이였다는 것. 의식하지도 않은 채 손이 먼저 아이의 이름을 입력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이는 아이디 속에 자신의 꿈을 담고, 어떤 이는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를 담는다. 그 정신건강 간호사는 자신이 믿는 것을 담았다. 나는 아이를 담았다. 그것이 그 시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두 가지 생각은 쉽게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면접실을 나오는 길에도 그 두 마음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따라왔다.
세월이 꽤 흐른 뒤였다. 아이가 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아이의 엄마와 셋이 함께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아이가 흘리듯 말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려고 했더니 이미 같은 아이디가 있다고 나왔다고. 그래서 당황했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멋쩍게 웃으며 그게 아마 아빠 아이디인 것 같다고 했다. 짐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아버지가 아이의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었고, 그 아이가 자라 자신의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려다 아버지의 흔적과 마주쳤다는 것. 중복이라는 알림 한 줄이 그 둘을 이어준 셈이었다. 온라인 세상의 어느 구석에 아버지가 먼저 와 앉아 있었고, 아이가 그 자리를 향해 걸어온 것이었다.
지금 그 아이는 스물여덟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만의 아이디를 여럿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때 만든 아이디를 쓰는 곳이 있다. 오래된 이메일 계정, 몇몇 사이트의 로그인 정보. 아이가 스물여덟이 된 지금도 그 아이디를 입력할 때면, 자판 위에 손가락이 얹히는 순서가 몸에 배어 있어 생각 없이도 쳐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 가입하는 곳에서는 다른 아이디를 쓰고 있다. 헬리오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이다. 매일 아침 황금 마차를 몰고 하늘을 가로질러 세상에 빛을 나르는 신. 화려하거나 전능해서가 아니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일을 해낸다는 것, 그 성실함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아이의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내 이름을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십이 넘어서야 온라인 세상에 처음으로 나를 위한 이름 하나를 지은 셈이다. 늦은 것인지, 아니면 이제야 제때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판 위에서 h-e-l-i-o-s를 처음 입력하던 날, 손끝에 낯설고도 묘한 감각이 있었다. 오랫동안 남의 이름을 대신 써왔다가, 비로소 내 이름을 쓰는 사람의 감각 같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