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얼굴
이발소 의자에 앉을 때마다 나는 눈을 감는다. 거울 속 그 얼굴이 낯설고 어색해서다. 가위 소리가 귓가에서 바삐 움직이고,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목에 두른 천 위로 소리 없이 떨어진다. 눈을 뜨면 주름은 깊고 눈가는 퀭한 그 얼굴이 오늘도 거기 앉아 있다. 아버지의 얼굴이다.
아버지는 술을 삭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소주 반 병에도 집 안은 곧 불안으로 뒤덮였다.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지고, 밤을 새워 식구들을 괴롭혔다. 아버지는 울진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자랐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선대의 땅을 모두 잃고, 가족은 야반도주하듯 부산으로 내려왔다. 하룻밤 사이 세상의 뒤편으로 밀려난 사람에게 술은 마지막 도피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해와 용인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분노는 세상이 아닌 가족을 향했고, 우리는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본가에 맡겨두던 시절에도 그 버릇은 이어졌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친정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명하자니 변명이 되고, 감싸자니 거짓이 되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였으니, 꽤 오랜 세월이었다.
끝이 난 것은 심장 수술 때문이었다. 심장을 멈춰 세우고 막힌 관상동맥을 다리의 정맥으로 우회하는 큰 수술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아버지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반찬이 괜찮다 싶거나 특별한 음식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반주를 찾는다. 여느 집 아들 같으면 나이 드신 아버지께 술 한 잔 따라 드릴 만도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아버지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달갑지 않다. 어린 시절 그 밤들이 어김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다니 —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였던 셈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내가 그 진저리 쳐지는 술주정을 보고 자란 터라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을 무던히도 마셨다. 한자리에서 소주 서너 병을 비우는 게 예사였다. 다만 아버지처럼 정신을 놓는 법은 없었다. 그것만은 달랐다. 그러나 거울은 그런 구분을 알지 못했다. 이발소 앞에 앉을 때마다 그 얼굴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그 얼굴을 시로 썼다.
'좋은생각'에 수필 몇 편을 투고하면서 그 시도 함께 넣었다. 별 기대 없이 보낸 것이었다. 사실 작년에도 좋은생각에 수필 한 편을 투고했다가 9월호에 실린 적이 있었다. 채택 선물로 받은 1년 구독권 덕분에 그때부터 매달 잡지를 받아 읽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좋은생각의 시 코너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평이 붙는다는 것을.
그런데 2월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좋은생각 편집부였다. 4월호에 시를 싣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가슴이 뛰었다. 속으로 좋아하던 선생님에게서 처음으로 이름이 불린 아이처럼. 자세히 보아야, 오래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썼던 그 시인이 내 시를 읽게 되는 것이었다.
4월호를 펼쳤을 때, 나는 한동안 그 페이지를 덮지 못했다. 나태주 시인은 시인이란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거울 속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얼굴이라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러한 마음은 슬픔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인생은 이래저래 쓸쓸하고 적막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슬픔인지 절망인지 — 나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그 쓸쓸함과 적막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이발소 의자에서 눈을 감았다 뜨면, 거울 속 그 얼굴은 오늘도 낯설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낯선 얼굴로 나는 시를 썼고, 시인은 그것을 읽었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낯선 얼굴을 바라본다.
이발사의 능숙한 가위질에
무심히 머리칼이 잘려 나가면
거뭏하던 머리카락 속에
세월이 허옇게 묻어난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
주름은 깊고, 눈가는 퀭하다.
켜켜이 쌓인 지나온 시간 속에서
지우지 못한 기억이 소환된다.
쇳덩이를 불구덩이에 쑤셔 넣으며
긴 밤을 버텨내던 내 아버지
새벽이면 제철소 뒷문으로 쏟아져
그라스 가득 소주를 부어
목구멍에 엉긴 고단한 삶을 훑고
비틀비틀, 해를 머리에 이고
용케 집을 찾아오던 아버지
세월에 무너져 가던 그 사내
아니라고 손사래 쳐도
누가 봐도 그 사람이라니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불쑥, 느닷없이 찾아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내 아버지의 그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