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된 형식 너머로 사라진 본질의 부피
“시간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회의실 마이크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생략된 것은 단순한 행사 순서 하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애국가 제창에 드는 2분 남짓 시간과 십여 초의 묵념. 우리가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잠깐이나마 마음을 가다듬고 공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그 짧은 멈춤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통째로 덜어내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심의위원회 안건에 답변하기 위해 배석 중이었다. 회의실 정면 왼편 깃대에 꽂힌 태극기는 단정했다. 그리고 사회자의 ‘생략’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애국가가 있어야 할 빈자리를 대신 채웠다. 위원장의 의사봉 소리는 건조했고, 발표자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이어졌다. 모든 과정은 신속하게 흘러갔지만, 내 귀에는 좀 전의 그 다섯 글자, ‘시간 관계상’이라는 말이 이상하리만치 긴 여운을 남겼다.
돌이켜보면 내 공직 생활은 어쩌면 그 ‘시간 관계상’이라는 문장과의 사투였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나는 누구보다 효율을 신봉했다. 두꺼운 종이 서류를 한 장의 요약본으로 줄이는 데 희열을 느꼈고,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유능함이라 믿었다. 결론에 빨리 도달하는 것만이 혁신이라 생각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덜어낸 것은 비단 국민의례뿐만이 아니었다. 민원인의 절박한 하소연을 ‘요점만 말하라’며 잘라냈던 순간들, 후배의 고민을 ‘나중에 얘기하자’며 넘겨버렸던 저녁들.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마음을 두어야 할 자리들을 생략하며 달려왔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물들이 과연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만들었을까. 종이 서류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디지털의 0과 1로 치환되는 동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의 부피마저 함께 줄어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풍경은 며칠 전 참석한 민간단체의 행사장에서도 목격했다. 뷔페식당의 한 홀을 빌려 진행된 그곳은 시작 전부터 이미 육중한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아직 뚜껑을 열지 않은 요리들에서 새어 나온 들큰한 고기 향과 기름진 증기가 정장의 깃에 들러붙는 기분이었다. 빔프로젝터 스크린 위로 투사된 태극기는 그 습한 냄새 사이에서 묘하게 겉돌았다. 사회자는 그 가벼운 빛의 형상을 향해 경례를 붙이더니, 역시나 익숙하다는 듯 애국가와 묵념을 생략했다.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 앞에서 존중과 기억은 번거로운 식순에 불과했다.
그 회의가 있고 난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앞에 몸을 바짝 붙였다. 검색창에 ‘국민의례’를 쳤고, 차가운 화면 위로 무미건조한 행정 규칙들이 쏟아져 내렸다. 마우스 휠을 굴리며 촘촘한 글자들 사이를 헤맸다. 규정은 명확했다. 하지 않아도 될 자리라면 아예 식순에서 덜어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꼭 해야 한다면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생략’이 아닌 ‘약식’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원칙. 나는 그 내용들을 정리하여 직원들과 공유했다. 우리가 무심코 밟고 지나갔던 가치들에 대한 뒤늦은 복원 신청이었다.
퇴근길, 시청 국기게양대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집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하늘은 어느덧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높게 솟은 깃대 끝에서 태극기가 저녁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 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태극기를 다시 보았다. 퇴근하는 사람들 모두가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깃대는 그냥 묵묵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날 회의실에서 너무 쉽게 덜어냈던 그 2분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쳐버려도, 나라도 그 짧은 시간만큼은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신호가 바뀌었지만 나는 곧바로 발을 떼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국기를 잠시 더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