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방아꽃 향기

낡은 골목, 버려진 땅에서 자라난 방아

by 박계장

대문 앞 골목길에는 누가 일구었는지 알 수 없는 밭이 있었다. 폭은 서너 걸음, 길이는 스무 걸음 남짓한 길쭉한 땅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낡은 기와집 담벼락과 2층 양옥집 담장 사이, 골목의 햇볕이 고이는 자리였다. 기와집에는 부엌 딸린 삯월세 방이 두 칸 있었고, 우리 식구는 그중 한 칸을 썼다. 1970년대 부산 용호동 변두리에는 그런 자투리 밭이 흔했고, 그런 단칸방도 참 많았다.


한때 그 땅에는 배추와 상추, 대파가 심겼다. 철이 되면 누군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 밭이 놀려지기 시작했다. 빈 땅에는 잡풀이 먼저 쳐들어왔고, 그 틈에서 방아가 자라났다. 바람이 씨를 물어다 놓은 듯했다. 방아는 하나둘 싹을 틔우더니 어느새 군락을 이루었다.


여름이면 방아는 어른 허리께까지 쑥 자랐다. 네모진 줄기마다 가지를 뻗고 끝에 연보랏빛 꽃대를 올렸다. 꽃은 작고 자잘했지만 빽빽하게 모여 피었고, 수술은 꽃 밖으로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벌과 나비가 그 위를 분주히 넘나들었다. 지나가다 잎을 스치기만 해도 박하보다 강하고 매캐한 향이 손에 배었다. 저녁이면 골목 안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가 흘러나왔고, 그 냄새들 틈에 방아 향이 알싸하게 묻어났다. 낡은 기와집과 2층 양옥집 사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세계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방아밭 너머 양옥집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또래가 살았다. 학교에서 그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발아래로 향했다. 나이키였다. 흰 바탕에 굵은 로고가 선명했다. 부산 공장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이 골목 아이의 발에 신겨 돌아온 신발. 나는 시장표 운동화를 신었다. 가끔 그 아이가 2층 창가에서 내려다볼 때면 말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기고 싶었는지, 지지 않으려 했는지도 지금은 희미하다. 다만 올려다보는 쪽과 내려다보는 쪽이 있었고, 그 사이에는 무성한 방아밭이 있었다.


가을녘 방아가 꽃을 피우고 쓰러지면, 그때부터 연탄재가 쌓이기 시작했다. 골목 안 집들이 아침저녁으로 연탄을 갈고 나면 갈 곳 없는 재들이 빈 밭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버린 연탄재를 반드시 발로 밟아 뭉갰다. 불문율처럼 그것만은 지켰다. 밭은 차츰 분홍빛 연탄재 더미로 덮여갔다. 그러나 이듬해 봄, 잿더미 속에서 연초록 싹이 고개를 내밀면 아무도 그 자리에 연탄재를 버리지 않았다. 누가 정한 것도, 말한 것도 아니었다. 방아가 살아 있는 동안은 버리지 않고, 방아가 쓰러지면 다시 덮으며 해마다 그 일을 반복했다. 가난하고 고단한 골목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명을 지켰다.


국민학교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방아 잎을 한 움큼 따서 어머니께 내밀었다. 빗속에서 잎을 훑으면 손에는 향이 더 깊게 배었다. 어머니는 내가 건넨 잎에 고추와 양파, 잔파를 넣고 전을 부치셨다. 고소한 기름 냄새와 방아 향이 뒤섞여 빗소리와 함께 좁은 단칸방을 가득 채웠다. 고등어를 쪄서 가시를 일일이 발라내고 추어탕을 끓이는 날에도 방아 잎이 들어갔다. 어머니가 고등어추어탕이 끓던 솥뚜껑을 열면 방아 향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 향기가 비린내를 덮고, 추위를 덮고, 지독한 가난도 잠시 덮어 주었다.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사상구 덕포시장 쪽방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용호동 단칸방에는 나와 여동생 셋만 남았다. 아버지는 가끔 들러 음식과 생활비를 놓고 가셨고, 나머지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했다. 세 살 아래 여동생과 손을 맞춰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리며 아랫동생들을 건사했다.


달이 밝은 어느 밤, 세 살배기 막내가 엄마를 찾으며 칭얼댔다. 나는 막내를 등에 업고 대문 밖 방아밭 앞에 섰다. 훤한 달빛이 방아 군락을 비추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연보랏빛 꽃대는 달빛 아래서 은빛으로 일렁였다. 보채는 막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나는 속삭였다. "엄마한테 가자, 가자." 막내는 그 말을 믿었는지 조용히 울음을 그치고 등 뒤에서 잠이 들었다. 밤공기 속에 방아 향이 번졌다. 나는 잠든 막내를 업은 채 은빛으로 빛나는 꽃대 앞에서 한참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 골목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단칸 삯월세 방도, 2층 양옥집도, 방아밭도 이제는 없다. 그 시절 방아는 아무도 심지 않았고 아무도 거두지 않았지만, 해마다 제 몫의 계절을 꿋꿋이 살다 갔다.


이번 설날에 막내를 만났다. 나와 열 살 차이 나는 여동생도 이제 아이가 넷이다. 어느새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투덜대는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주 앉은 동생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섞여 있는 흰머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가느다란 흰 줄기들을 보고 있자니, 훌쩍 지나온 세월이 어지럽게 겹쳐 보였다. 제 자식 넷을 건사하며 동생의 시간도 그때 방아밭처럼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뎠을 것이다. 엄마를 찾으며 내 등에서 잠들던 어린 누이의 머리칼 위로, 어느덧 제 몫의 계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동생의 머리칼 위에서 반짝이는 그 흰빛은 그밤 훤한 달빛 아래 은빛으로 일렁이던 방아꽃대를 닮았다. 그 밤, 내 등 위에서 잠든 아이의 머리칼 너머로 흔들리던 그 서늘하고도 따스한 은빛이 지금 동생의 머리 위에 다시 피어난 것만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그 골목의 방아 향이 다시금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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