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의 한마디가 마음속에 물결처럼 번져왔다.
“고령자 등 자살 고위험군 자살예방을 위해
인력이나 조직을 확대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라.”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런 것이 기회라는 것이구나.
이윽고 ‘소중한 생명팀’ 신설을 향한
절박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정신건강팀장으로 부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실무자 시절 수년간 하던 일이지만,
다시 돌아온 이 자리에서 나는 예전과는 다른 압박감을 느꼈다.
이제는 실무자가 아닌 팀장,
시의 정신건강분야 행정을 현장에서 컨트롤해야 하는 역할이다.
나는 다시 그들을 떠올렸다.
지켜내지 못한 생명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지난날의 아쉬움과 후회.
이번에는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부산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
전국 평균보다 높고, 특·광역시 중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교통사고로 숨지는 이들이 연간 백여 명이라면,
자살은 그 열 배에 달한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숫자는 단지 숫자가 아니다.
이름이고, 얼굴이며, 가족이다.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며, 자식이다.
부산은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도시다.
홀로 남겨진 삶들 속에서, 대화가 사라지고, 외로움은 깊어진다.
그렇게 절망은 아무 말 없이 스며들고,
어느 날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다.
남는 건 통계 숫자 하나뿐이다.
지금 자살예방 업무는 정신건강팀의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한 명의 직원이 여러 업무를 병행하며 그 중요한 과제를 떠맡고 있다.
다른 대도시들은 이미 전담 조직을 꾸려 입체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 출발점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문제는 명확하다.
답도 있다.
다만, 그 사이를 잇는 다리가 부족할 뿐이다.
시장님의 지시를 바탕으로 전담팀 신설 논의를 시작했다.
처음엔 ‘생명존중팀’이라는 명칭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장님의 제안으로 ‘소중한 생명팀’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그 이름이 말해주는 것.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건, 숫자가 아닌 소중한 사람 하나라는 것.
하지만 행정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조직관리부서를 찾아가 지시사항과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첫 회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에는 TF 구성이라는 절충안을 들고 갔지만,
그들조차 "정식 직제가 더 낫다"라고 하면서도,
정작 신설에는 반대했다.
‘통폐합’, ‘조정’, ‘축소’…
생명을 구하는 일은
‘효율적인 조직’이라는 행정의 언어 앞에서 자꾸만 작아졌다.
그 후 과장님, 선임 주무관, 담당자까지 총출동해 다시 내려갔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팀을 신설할 수는 없고
“기존 팀 하나를 없애야 가능하다.”
“필요한 팀은 신설, 대신 정신건강업무를
다른 업무와 묶을 수도 있지 않은가”
가족보건정신팀? 정신건강지역보건팀?
‘소중한 생명팀’을 신설하자고 정신건강업무를
불편한 동거를 하게 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물론, 그들의 처지도 이해는 된다.
인력은 동결 상태이고 예산은 늘 부족하고, 각 부서의 사정도 절실하다.
하지만 모든 원칙과 기준 앞에서도,
생명을 구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올해 자살예방센터 운영비가 7천만 원 삭감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어떤 정책이, 어떤 사업이, 사람의 목숨보다 앞설 수 있을까.
부시장님과 시장님은 분명 조직 확대를 지시하셨다.
그러나 그 뜻은 조직관리 절차를 거치며
‘재편’이라는 이름 아래 흐려졌다.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현실은 또다시 "신설 없이 재편"이라는 행정의 논리에 가로막혔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부산의 자살분야 지역안전지수는 늘 하위권이었다.
올해 간신히 4등급으로 올랐지만,
그조차 타 지역의 하락 덕이었다.
우리의 성과가 아닌, 남의 실패 덕분에 받은 등급 상승이라니
씁쓸했다.
뼛속까지, 참으로 씁쓸했다.
나는 종종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고서를 쓰고, 서류를 만드는 것만이 일인가?
우리는 삶을 지키고,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건네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함께 생을 마감하려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가슴이 아렸다.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다면 어땠을까.
그 손을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바로 그 ‘조금’을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광안대교를 지나며 바다에 눈이 멈춘다.
시원한 바람과 반짝이는 불빛 속,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야경을 마지막으로 보고 떠난 이들도 있겠지.
그들이 느꼈던 마지막의 절망은,
내게 아직도 너무 무겁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또 마음속에 되뇐다.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다가갔더라면.
그래서 나는 믿는다.
‘소중한 생명팀’은
단순한 팀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따뜻한 손길이다.
공문과 회의, 보고서와 통계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행정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우리는 생명을 위한 행정을 하고 있다는 것.
그 하나의 이유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