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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칠도씨 Sep 16. 2023

2022 취준일기: 면접 후기(3)

해운회사 영업기획 신입 1차 면접


    이번 회사는 광화문 근처, 여러 기업이 입주한 큰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주눅 들면서도 동경의 마음이 들었다. 대기업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회사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멋졌다.(합격 후 들은 말이지만 내부 리노베이션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면접시간 30분 먼저 오라고 한 것을 그보다도 빠르게 도착해 우선은 엘리베이터 옆 복도에서 숨어서 준비하고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가면 긴장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좋은 전망을 보며 맘을 가라앉혔다. 북악산과 청와대가 내려다 보여 가슴이 웅장해졌다. 어떤 남자 지원자도 계속 복도에서 왔다 갔다 거려서 저 사람도 긴장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시간이 다 되어 회사로 들어가자 벌크선 모형이 복도에 쭉 늘어서 있어 구경하면서 걸어갔다.

    면접 대기실로 쓰이던 회의실에는 나 말고 두 명의 남자 지원자가 있었다. 역시 해운회사이다 보니 남자 비율이 높구나 싶었다. 화이트보드에는 숫자가 두 개 쓰여 있었다. XX00 -> XX00. 나중에 들어온 사람 좋아 보이는 인사 담당자가 자랑스럽게 설명해 줬다. 작년까지 이 연봉이었지만 올해 올라서 대졸 신입 초봉이 저렇다며. 물정 모르는 내 눈에도 높은 것 같긴 했다. 면접관들이 면접 시작 전 제일 먼저 꺼낸 말도 연봉이었다. 동기부여용이거나 아니면 회사 자랑이었을 것이다. 평이한 수준의 영어 테스트를 보고 조금 기다리자 담당자가 면접장으로 안내했다. 높으신 분들이 쓸 것 같은 것 같은 둥그런 협탁에 푹신한 의자가 있는 회의실이었다. 정장을 입었는데도 춥다고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이 세게 틀어져 있었다. 안 그래도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이 굳어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도 각 질문에 대해 세 명이 순차적으로 답하는 형식이었고 내가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면접 질문들은 대부분 평이했다. 내 경우 인적성 결과가 전체적으로 무난한데 긍정성이 좀 떨어진다고 그룹활동을 할 때 잘 이겨냈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인적성을 중요하게 보고 면접에서도 반영하는 회사들이 있다. 현대그룹도 그런 모양인데 내가 HMAT에서 자꾸 안 맞는 사람으로 나와서 족족 인적성 전형에서 떨어졌던 것 같다. 회사마다 fit이 있다는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는 도전적이고 진보적인 그런 ‘요즘’ 회사보다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회사에서 선호하는 인재상에 가깝단 것도. 내 강점으로 분석력과 학습능력을 내세우자 시사 질문을 제일 먼저 물어봤다. 그나마 다른 질문보다는 자신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유 중장기 노선 이동 증가가 탱크선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한 면접관이 '이 회사는 탱크선이 별로 없는 것 알죠?' 하며 태클을 걸었지만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니었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곡물이 많이 나니까 벌크선에 영향이 가지 않겠냐고 힌트를 줬다. (고마운 사람이다) 그걸 넙죽 받아 벌크선이 치킨게임을 하게 되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실무진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코웃음 쳐질 수준일 수 있겠지만 일반 대학 졸업자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조사한 결과였다.

    자기소개서에는 해양대학교에 들어가는 걸 꿈꿨다고 쓰여 있는데 왜 해양대에 안 가고 지원자께서 졸업한 대학 갔는지에 대한 질문도 들어왔다. '당시 고등학생이라 경험이 부족해서 어른들 조언 여쭤보았다, 우선은 종합대학에 가서 다양한 전공과 사람들을 경험해 보라고 조언해 주셔서 그걸 따랐다'라고 대답했다. 상식적으로 고를 수 있다면 대부분은 해양대학교보다는 소위 '입결'이 더 높은 서울의 대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면접관도 그걸 모르지는 않겠지만, 질문의 진짜 의도는 내가 학벌로 으쓱대는 지원자인지 검사하려는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이유였기 때문에 다행히 멈칫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로 말할 수 있었다. 원래 국문과로서 목표한 직업, 작가나 PD 같은 건 없었냐는 질문도 들었다. 세상이 녹록지 않았다고 솔직히 대답할 수는 없었다. 인문학이 인간과 세상을 배우는 학문이기 때문에 어떤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중소기업에서 인턴 경험이 있다는 한 지원자가 사실은 그 회사 사장 아들이라 신기했다. 면접관이 지원자와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추리해 내는 건 더 신기했고. 아니면 이미 뒷조사를 하고 온 걸까? 편하게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거나 아버지 돈으로 투자를 해도 될 텐데 왜 취업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속으로만 할만한 생각인데 면접관은 자신의 권력을 활용하여 그걸 또 실제로 물어봤다. 그러자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을 거였다면 재수도 하지 않았겠죠!"라는 당돌한 혹은 당찬 답변이 나왔다.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는 보수적인 중년 아저씨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마이너스가 크게 됐을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는 재수 생활을 말하던데, 그게 진심이라면 조금은 부러웠다. 부모뿐만 아니라 온 국가가 응원하고 지원해 주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험을 공부할 수 있다는 건 사실 어떻게 보자면 시련이 아닌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갑자기 내리는 날벼락처럼 준비 없이 버텨내야 하는 고난은 얼마나 많으며 노력해도 누군가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건 수능은 참으로 자비로운 시험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재능을 타지 않을 수 없겠으나 그나마 노력으로 비벼볼 수 있는 최후의 시험이었다고 느낀다. CPA든, 5급 행정고시든, LEET든... 열심히 공부하며 희망으로 기약 없이 투자한 젊은 날이 불합격이라는 결과 하나로 무효가 돼버리는 잔인한 시험들도 있으니까.


    끝으로, 시간이 다 됐지만 정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보라고 했다. 그때 손을 슬금 들고 제일 먼저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계속 긴장한 모습을 많이 언급해 주셨다. 하지만 긴장한 게 그만큼 이 면접에 진심이고 꼭 들어가고 싶다는 의지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나름 잘 이야기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질문이 껄끄러웠다. 별 의미는 없고 그냥 확인 차원에서 물어보는 거라며 주량과 흡연 여부 물어봤다. 제일 먼저 대답한 지원자는 소주 세 병이라고 하자 면접관들이 술이 세다며 다들 놀랐다. 나머지 지원자는 한 병이라고 하기에 나도 무난하게 한 병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술을 안 마셔서 주량을 모르는데도. 내가 면접 중 한 유일한 거짓말이었다. 왜 물어본 걸까… 불안했다. 결국 이 불안감은 입사 후에 현실이 됐다.


    총체적으로는 남초 회사의 나쁜 점과 좋은 점을 모두 갖고 있는 극단적인 회사라고 느꼈다. 그걸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인물은 하고 싶은 말 다 하던 제일 높은 직급의 면접관이었다. 그는 나머지 두 남자 지원자에게 '이력서 사진에선 안경 안 꼈는데 실제로는 꼈네', '낀 게 낫네 마네' 하는 둥의 얘기를 했다. 굉장히 민감한 사항인데 아무리 좋게 봐도 지나치게 시원하게, 위험한 발언을 직설적으로 해서 놀랐다. 나에게는 왜 이렇게 긴장하고 눈 못 마주치냐는 지적을 했다. 그러고선 연달아 왜 이렇게 떠냐는 공격(?)이 들어왔다. 생신입이라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자 '지금까지 구직활동 해본 적 없냐, 인턴도 안 해봤냐'라고 물어봤다. 면접에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좋은 결과를 못 얻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경험상 이런 사람에게는 맞불 놓듯이 꾸밈없이 말하는 게 제일 나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보인 숫기 없는 모습도 있으니 수긍하는 듯했다. 그때 그가 해준 말은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그렇네, 계속 면접에서 떨고 그랬으면 트라우마였을 수도 있겠다." 정다운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뒤끝 없고 솔직하게 다 말해주던 그의 표현이 다른 지원자들에게 무례하게 들렸을 것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해준 말은 도움이 됐다. 부족한 점을 솔직히 말해주니까 발전의 계기도 됐고. 좋은 사람인 척하며 입에 발린 말만 해줄 수도 있는 것을 이미지 손해를 감수하며 굳이 지적해 줘서 고마웠다. 그는 갑작스럽게 쫓겨나듯 퇴사하던 나를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대해준 부서 사람이기도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찾아갔을 때 '여성들이 사회에서 잘해나갔으면 좋겠다, 네 앞길을 응원한다'며 악수를 해주었다. 팀장이 괴롭힐 때는 이 악물고 참고 있던 눈물이 그제야 찔금 났다. 난 사실 재직 중에도 그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표현은 거칠지만 못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에. 내가 그의 딸과 비슷한 나이대이고 그 또한 내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이기에 그런 것일까, 딸 같아서... 가족관계를 기반한 공감과 연민은 한계가 있지만 분명히 한국 사회에서 얼마 남지 않은 정이 흘러나오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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