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합격 이후, 입학 전 준비(3)

2023 여름 첫 세미나, 그리고 선생님

by 이십칠도씨

선배의 권유로 그가 진행하는 문학사 세미나에 얼렁뚱땅 합류하게 되었다. '선생님(이유는 모르겠지만 인문계 대학원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이렇게 호칭했다)'들의 첫인상은 "완전 P!"였다. 실제로 나중에 알게 된 그들의 MBTI는 INTP 2명, ENFP 1명, ESFP 1명, ESTJ 1명(중국인 유학생) 등으로 내국인 원생들은 나 빼곤 모두 P였다. 사람들이 J와 P를 나눌 때 계획형과 즉흥형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평생 스스로의 J 성향에 시달려보니 정확히는 '내 계획/생각대로 안 되면 못 견디는' vs. '내 계획/생각대로 안 돼도 별 상관없는' 통제광인지의 여부로 나누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꼭 J가 성취도가 높거나 더 이상적인 일꾼이라거나 한 건 아니라는 의미. 그러나... 대학원의 P들은 내가 바깥세상에서 본 것과 차원이 다른 P였다. 이렇게 대책 없이 살아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남을지 걱정되는 사람들. 그중 치밀한 J 몇몇이 얼마 없는 테뉴어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이를 증명하듯 석사과정까지만 해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P의 비율이 박사과정으로 가면서 조금씩 줄고, 조교수나 정교수로 가면 J가 대부분이 된다. 하긴 한국사회에서 돈도 안 되는 인문계 대학원에 오려면 대책이 없거나 갑자기 돌아버리거나 해야 하는 것 같긴 하다. (욕하는 건 아님! 이건 당사자성이 다분한 발언임과 동시에 대책 없이 문학을 사랑하는 그들에 대한 애정 어린 진술이다...^^;;)


230719 첫 세미나

별 관심도 없는 문학사 세미나에 처음 참여하기로 한 날. 첫인사를 할 때 한 선생님이 나를 아는 눈치였다.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쪽은 나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듯해 죄송스럽고 당황스러워서 기억력이 좋으시다고 칭찬밖에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다시 보게 돼서 되게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국문과로 전과하셨냐고 묻는 걸 보니, 그는 내가 국어국문학과로 적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타과생으로 국문과 수업을 듣던 과도기에 만난 사람인 것 같았다. 얼굴만 봤을 때는 기억이 안 났는데 그 사람이 세미나 중에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걸 보니 갑자기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말하는 걸 알아듣기도 어려울 만큼 똑똑해서 질투도 안나는 학우. 아무튼 첫날에는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서 쭈그러들며 필기만 조금 남겼다.

- 세미나란 서로 토론하고 논문/텍스트/작품에 대해 평가하고 이야기하는 것.

- 내 머릿속 개념을 말로 만들어 내뱉는 연습이 필요하다.

- 말 정확하게 끝낼 것(대학 졸업 때까지는 나도 말끝 흐리는 버릇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 추측으로 논지 전개할 때는 ‘(국문과 내에서의) 메타적 위치 인식’이 필요하다. → 정확한 좌표

- 논문의 결론은 “문학(계)에서 쓸만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 문학을 이론에 접목할 때 괜찮고 아닌 걸 결정하는 건 무엇인가? 수사의 문제?

- 작품에서 이론을 연역해내려고 하면 안 됨.

세미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맛만 보려고 했는데 끝날 때 선생님들은 자연스레 내게도 역할을 할당하고 카톡방에 초대했다. 어영부영하다가 코 꿰어버린 것 같다.

세미나가 끝나고 근처 라멘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날 아는척했던 J 선생님은 계속 나를 어디서 봤는지 고민 중인 듯했다. 나와 같이 들은 19학년도 수업을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거라고 하여 나도 그때 들은 국문과 수업을 나열했고, 송도캠퍼스에서 열린 전공기초 수업에서 신촌조로 같이 조별과제를 한 걸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근데 사실 굉장히 여럿이(7명인가가 함께) 한 조모임이고, 4년이란 시간이 지났기에 그 조원들 중 누구를 봐도 나는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기억하는 걸 보니 기억력이 대단하거나 내가 기억에 남았거나 한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그의 얼굴은 몰라도 그의 글은 알 것 같았다. ‘코기토’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룬 어렵고 멋진 글, 철학과는 다 이렇게 똑똑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일까 감탄도 하고 기도 죽었던 기억이 났다. 나와 함께 정문까지 걸어간 적도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어쩜 그리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기억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학부시절의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다. 넓적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뾰족하게 날 서서 늘 혼자 다니던 그때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또 없기를 바랐기에, 누군가 똑똑히 내 얼굴을 기억하는 상황을 맞닥뜨리자 반가움보다는 부끄러움과 당혹이 앞섰다. 하지만 계속 생각해 보니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는 것이 범상한 일은 아니기에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그의 느낌이 왠지 괜찮게 다가온 것도 있었지만 그런 고마움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식사 자리가 끝나자 별 일정 없이 신촌 거리를 방황할 예정이던 나는 J 선생님을 따라 무인양품에 들렀다. 선생님은 캐리어를 사고 싶었다고 하며 본인처럼 차분하고 단정한 매장을 둘러보았다. 계단을 오르며 ‘코기토’ 글 쓰신 것 맞냐고, 너무 대단했다고 칭찬하니 “선생님 제발…”하고 쑥스러워하는 반응이 귀여웠다. MBTI가 INTP 아니냐고 한 번에 맞추자, 다시금 “INTP 안 같아 보이려고 노력했는데…”하고 조곤조곤 대답하는 모습도 꽤나 깜찍했다. 함께 캐리어를 구경하면서 J 선생님은 어머니와 후쿠오카를 갔다 왔는데 근교의 유후인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무인양품에서 아로마 디퓨저를 좋아해 올 때마다 냄새를 맡아본다고 했다. 마침 시향하는 코너가 있어 시트러스 향을 맡다가 향기가 좋다고 선생님의 코 가까이에 병을 대주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돌이켜 보니 약간 데이트 느낌이 난다.

아마 J 선생님은 내 얼굴이 인상적이었고, 나는 J 선생님의 글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나중에 그와 사귀게 되었을 때 그는 내가 너무 예뻐서 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고, 더 나중에 그와 헤어진 뒤 나는 그의 글이 생각보다 잘 쓴 글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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