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축축함과 함께
축축한 날씨의 진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걸을 때 드러난다.
조용히 지나가는 차가 물과 함께 합주할 때 귀를 감싸는 애매한 소리가 기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망할 친구 놈에게 빌린 우산과 함께 비가 그친, 촉촉함이 묻어 나오는 길을 걷고 있다.
앞에 3,4명 중학생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쓸데없이 큰 우산이 이를 저지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생각해 본다.
5 발자국 앞에서 무리의 우두머리가 그제야 나를 인식했는지 어색한 발걸음과 함께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에 멋쩍은 몸짓으로 오른쪽으로 향했는데, 그 무리 중 배가 통통한 녀석의 어리숙한 판단으로 배치기를 당했다.
F는 ma라 했던가, 그 녀석의 질량은 대단했기에 난 바닥으로 튕겨나갔다.
가장 먼저 당혹감과 황당함을 느끼고, 그 이후 바닥의 촉촉함이 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상당한 불쾌감 덕분에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그의 움직임과는 괴리되게 신속한 사과를 건네주었다.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런 풍채가 훌륭한 녀석의 신속한 대처는 나를 이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나도 함께 심심한 사과를 건네주고, 적당히 보이는 웃음과 인자함을 보여줌으로써 사소한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그 이후 이유 모를 만족감에, 내가 성인이 된 것 마냥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관대한 시각 속에서 바라보았다.
가령 같은 방향을 걸으며 고약한 담배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도 이해한다.
잠시 기다리고 가면 되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물기가 묻어 나오는 그의 발걸음을 조용히 지켜본다.
코끝을 스치는 담배의 잔향도 주변 가득한 수증기가 데려갔을 것이다.
아저씨의 모습이 안갯속으로 사라졌을 즈음에, 축축한 엉덩이와 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시 자동차와 아스팔트 도로가 만드는 연주를 귀담아들으며 기묘한 분위기를 즐겨본다.
어쩌면 우산을 빌려준 망할 친구 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