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찢는 손

by 박종민

창가에 앉아 종이를 찢었다. 처음에는 반으로, 다음에는 사분의 일로, 그리고 계속해서 더 작은 조각들로. 종이의 섬유질이 분리되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를 닮아 있었다. 종이를 찢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매일 아침, 나는 백지를 꺼내어 천천히, 정성스럽게 찢었다. 그것은 마치 기도와 같았다.

어느 날,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내가 찢고 있는 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나 자신의 정신이었다. 각 조각은 나의 기억, 감정, 신념의 파편들이었다. 나는 정교하게 나를 찢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체를 해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도달하는 자해였다.

청소년기, 나는 팔에 상처를 내는 자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면의 고통을 외면화하는 방법이었다. 보이지 않는 통증을 보이는 형태로 전환하는 행위.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해방감만을 주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다른 형태의 자해를 발견했다. 그것은 살을 찢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찢는 것이었다.

"내가 나에게 가하는 폭력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을까?" 내 손은 찢어진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모았다. 파괴는 재구성의 전제조건이었다. 나를 찢는 손은 동시에 나를 새롭게 조립하는 손이기도 했다. 이 역설 속에서 나는 자기 파괴와 자기 사랑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직감했다.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나는 트라우마와 해리에 관한 글 한편을 썼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경험을 연구하면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부분으로 나누어, 고통스러운 기억을 특정 부분에 격리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해리였다. 나의 자기 해체도 비슷한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나의 해체는 트라우마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이라는 점이었다.

종이 조각들을 모아 콜라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찢어진 조각들은 새로운 형태로 재조합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원래의 백지가 아니었다. 주름지고,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형태였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해체된 나의 조각들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 개념이 떠올랐다. 데리다에 따르면, 텍스트를 해체하는 것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의미와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의 자기 해체도 유사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나를 찢는 것은 나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종이를 찢는 동안, 나는 종종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의 파산, 이혼, 따돌림...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가 해석하고 내면화한 경험이었다. 해체는 그 해석의 과정을 역추적하는 것이었다. 기억 자체가 아니라, 기억에 부여한 의미를 찢어내는 것.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바람에 날렸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춤을 추듯 흩어졌다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 광경은 묘한 평화로움을 자아냈다. 통제를 포기하는 것, 흩어짐을 허용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해방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 릴케의 말이 생각났다. "마음 속의 풀리지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나는 아직 해체되지 않은 부분들,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완전한 해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

나를 찢는 손은 이제 지친 듯했다. 한동안의 격렬한 해체 후에, 나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모아 상자에 담았다. 언젠가 그것들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파괴는 창조의 전제조건이었다. 나를 찢는 손은 나를 만드는 손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찢고, 모으고, 다시 찢었다. 그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나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온전한 이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복잡성과 모순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찢는 손은 결국 나를 살리는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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