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4화 물난리(2)
임시 수용소는 학교 체육관을 개조한 곳으로, 영석이 살고 있는 판잣집에 비하면 궁궐 같은 곳이지만 쉰내, 꿉꿉하고 퀴퀴한 냄새, 발냄새 등이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몸을 부딪치는 일이 잦다 보니 사람들 모두 신경이 곤두서 사소한 일에도 말다툼이 벌어지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허다했다.
영석은 학원에 가지 못했다. 오목교가 침수된 후, 교통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버스를 탈 수 없고, 전철을 이용하려면 영등포역까지 가야 하는데, 이 역시 오목교를 통과해서 영등포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므로 달리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임시 수용소에서 배급해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니 영석은 가슴이 답답했다. 게다가 1979학년도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예비고사가 11월 7일에 치러질 예정이므로 한 토막만 남은 양초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영등포 쪽에 있는 작은 세무사무소에서 일하는 누나도 출근을 하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었다.
정선생은 자꾸 구석진 곳만 찾아다니며 사람을 피하는 눈치였다. 자신의 병이 타인에게 전염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겠지만, 영석은 타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부담스러워 그러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도 정선생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기 때문에, 급할 때 달려가 법률문제 등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정작 정선생 옆으로 가까이 가는 것은 꺼리는 눈치였다.
“보건소 선생님이 약만 빼놓지 않고 잘 챙겨 먹으면 거의 전염이 안 된다고 하지 않습디여? 그렁게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지냅시다.”
“여그서 당신만큼 잘나고 많이 배운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혀”
곰소댁은 다른 사람 들으라는 듯, 자기 어깨를 활짝 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정선생은 작은 기침만 나와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고, 구부정한 어깨는 더 올라간 듯 보였다. 숙희는 소풍이라도 온 듯 이것 저곳을 기웃거리다 자기 또래라도 만나면 재잘거리며 신이 난 모습이었다.
“어이 젊은이 나 좀 도와주겠나?”
30대 중반 정도 되는 아주 잘생긴 남자가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다가와 영석에게 말했다.
“아이고 지 선생님 아니신가요?”
“사모님도 오셨네”
영석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일손이 달려서 젊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영석은 누나 손을 잡고 벌떡 일어섰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할 일이 태산 같아요”
“우선 배식 좀 도와주세요”
“그런데 지 선생님! 작년에 소래로 이사를 가시더니 어떻게 여기를 또 오셨대요?”
영석이 옆에 있던 사람들도 일어서며 물었다.
“아니 고향 사람들이 이 고생인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나요?”
“아이고! 고향이요? 하여튼 지 선생님은 우리들의 대부라니까”
“대부는 무슨 그냥 친구지요”
지선생이라는 분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깔끔한 얼굴에 눈빛이 아주 맑아 보여서 영석은 자석에 끌리듯 그를 따라 라면과 밥을 준비하는 교실로 갔다. 누나와 주변의 젊다 싶은 사람들도 영석을 따랐다.
교실에 마련된 배식소에는 도시락과 라면 상자, 음료수 등이 쌓여있고, 배식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강당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공무원들과 밀러 신부도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영석과 누나도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배급일을 돕기 시작했다. 라면과 빵 한 개라도 더 가져가려는 사람들과 이를 눈썰미 있게 찾아서 가족들 숫자대로만 나눠주려는 사람들 간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영석은 전쟁터가 이와 다를까 싶었다.
“그래 전라도 사람이 니들 헌티 밥을 달랬냐? 떡을 달랬냐? 왜 못 잡어 먹어 환장들이여?”
체육관과 교실 간의 거리가 상당하고,사람들이 뒤섞여 소란스러운데도 배식소까지 들릴 정도의 큰 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여기 좀 부탁드릴게요. 여러분들도 열심히 일하고 계세요”
지 선생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한 후, 급하게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곰소댁 목소리 아니냐?” 누나가 물었다. 곰소댁은 몸집만큼이나 목소리도 컸다.
“그런 것 같은데 내가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 너도 가봐”
“대답혀 봐, 전라도 사람이 뭐가 어쩐다는 거여?”
곰소댁이었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뭐라고 했다고 지랄이여?”
곰소댁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대거리를 했다.
“내가 내 귓구녕으로 똑똑히 들었다는 디 잡아떼는 거 보소, 너! 전라도년들은 다 도둑년이라고 혔어? 안 혔어”
곰소댁은 자기 나이 또래의 여자를 내려다보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대들던 여자가 무르춤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곰소댁 주변에 서있는 사람 몇몇도 씩씩거리며 금세 달려들 듯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영석은 그들도 고향이 전라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빵 한 개를 더 달라고 허니 그런 거 아니유”
충청도가 고향인 듯한 여자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려, 우리 딸이 빵 한 개만 더 먹고 싶다고 혀서 한 개만 더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어린것이 먹고 싶다는디 에미가 그만 보고 있을 수 없어서 한 개만 더 달라고 혔다. 근디 그것이 에미가 욕먹을 일이지, 전라도 사람들이 싸잡아서 욕먹을 일이여? 여그 있는 사람들 헌티 물어봐, 내 말이 경우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려 내가 내 새끼 주둥이에 빵 한 개 더 넣어줄라고 되잖은 소리를 혔다. 그건 내가 미안허다. 근디 니들은 왜 걸핏하면 전라도 사람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냐 이 말이여”
“전라도 사람들은 어디 제대로 된 곳에 취직도 못 하고, 걸핏허면 따돌림 당허고...., 오직 허문 본적을 옮기겄냐고”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람서 이 코딱지맹키로 작은 나라에서 남북이 갈라진 것도 서러운디 왜 또 갈르냐 이 말이여”
곰소댁은 그간 쌓인 한을 풀 듯 한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지 선생이 나섰다.
“아주머니 고정하세요, 더 많이 나눠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생기네요. 그리고 아주머니께서는 사과하세요. 사람을 땅으로 가르면 결국 자신이 설 땅도 사라지는 법입니다. 이것은 지역감정으로 연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죄송 혀유, 저 역시 빵 한 개를 더 받고 싶어도 참고 있는디 빵 한개를를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꼴 뵈기 싫어서 그랬네유, 미안혀유”
충청도 아줌마가 곰소댁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려 곰소댁이 참어, 곰소댁도 잘 헌 것만은 아녀”
옆에서 씩씩거리던 사람들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곰소댁을 달랬다.
“어서 가서 일하세, 자네는 대학생인가? 지 선생이 영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재수생입니다” 영석의 자신 없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아이고! 내가 정신없이 공부해야 할 사람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구만”
“아닙니다. 버스가 안 다니니 학원에 갈 수도 없고, 책도 없습니다.”
“힘을 내게, 나도 5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어, 조금 늦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절대 아냐, 오히려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지”
영석은 뜨거운 뙤약볕 속에 있다가 한줄기 소나기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지 선생님은 5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셨다네”
배급소로 돌아온 영석은 누나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영석 학생이 큰 위로를 받았겠네, 저 친구는 5수 끝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거든”
밀러 신부가 둘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유쾌하게 말했다.
“맞아요! 우리 신랑 5수 했어요”
지 선생 사모님이라는 분도 한몫 거들며 웃었다. 지 선생은 빙긋이 웃으며 영석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서울대라잖아” 누나가 영석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런데 5수라잖아” 영석은 지 선생의 눈치를 보며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가 5수라도 해서 서울대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누나도 지지 않고 속삭였다.
“저 친구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저 친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경상도 촌 동네에서 태어나, 서울대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다가 청계천 판자촌에서 들어가 야학교사로 일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네”
”저 친구는 판자촌 사람들을 외면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구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1973년부터 이곳에 들어와 나와 친구가 되었지. 그리고 우리는 이곳 주민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더 나은 삶을 개척하자고 약속했네. 그리고 저 친구는 작년부터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 일부와 함께 시흥으로 이주하여 공동체 건설을 위해 일하고 있네”
밀러신부가 계속해서 말했다.
“정신부, 쓸데없는 잡담 말고 어서 일이나 하시게”
지 선생이 이들의 말을 들었는지 한마디 했다.
영석은 옆에서 같이 일하던 다른 사람을 통해 밀러 신부의 한국 이름이 “정민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 선생은 오목교 판자촌에서의 삶을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그냥 산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앞장선다”는 원칙을 세우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돕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주민들을 돕는 대상으로 보고 그들에게 단순한 시혜나 봉사를 베푸는 것을 넘어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와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공동체를 이룩하는 데 힘쓰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밀러 신부와 지 선생 부부는 강당 구석의 좁은 자리나 화장실 옆 복도에서 잠을 청하고, 배급줄에 서서 주민들과 함께 라면이나 도시락을 나누었다.
“야, 왜 그렇게 떨어뜨려! 또 청소해야잖아”
“조심하라고!”
자꾸만 라면 부스러기를 흘리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신경질을 부렸다.
영석은 누나에게 속삭였다.
“조심해… 다들 예민해.”
지 선생이 다가가 또 상황을 진정시켰다.
“싸움이 아니라 배려가 필요합니다. 좁고 힘든 곳일수록 서로를 존중하세요.”
그날 오후, 배급용 물통을 놓고 또 작은 충돌이 벌어졌다. 한 남자가 먼저 차지하려 하자, 젊은 여성 몇 명이 가로막았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거 제 차례예요!”
밀러 신부는 직접 물통을 들어 나누며 주민들에게 손짓했다.
“서로 차례를 지킵시다. 나부터 기다릴게요.”
이틀 후, 물이 빠지자마자, 영석이네와 곰소댁네는 집으로 왔다. 그리고 처참한 광경에 모두 말을 잃었다. 누나는 눈물을 흘렸다. 곰소댁은 함지박부터 찾았고, 정선생은 삽짝문에 걸려 뒤집어져 있는 평상을 보며 안도하는 눈치였다.
“오빠! 문 열어 봐, 그리고‘우주 탐험대’ 틀어 줘”
숙희가 철없는 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