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5화 정선생과 곰소댁(1)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물난리를 겪은 마을이 평온해지고, 사람들도 조금씩 정상을 찾기 시작했다.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다시 오목교를 건너 서울역, 영등포, 구로동, 그리고 가리봉동 등으로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그러나 영석은 학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정독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정독도서관은 하절기에는 오전 7시, 동절기에는 오전 8시에 문을 여는데, 일반 시민들의 독서와 학습을 위한 공공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재수생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새벽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영석은 정독도서관에 자리를 잡지 못한 날은 상대적으로 교통편이 불편하나 덜 붐비는 남산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물론 오목교에서 가까운 거리인 당산동에 시립도서관이 있고 여기에도 재수생들이 많이 있지만, 정독도서관이나 남산도서관에 비하면 입시 정보를 얻기 어렵고, 학습 열기도 떨어지는 편이며, 종로, 대성, 정일학원 등 유명한 입시학원이 대부분 종로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영석이도 될 수 있는 한 거기에서 가까운 정독도서관으로 가고자 노력 했다.

영석이와 같은 재수생들에게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한 심정들이 있었기에, 내심 ‘재수생들의 성지’라 불리는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한국 최고 명문고의 기운을 받아보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정독도서관은 1938년에 지어진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로 이 학교가 1976년에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1977년 1월 4일에 옛 경기고등학교 건물과 부지를 활용하여 개관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4대문 안이나 그 인근에 있던 경기, 서울, 경복, 용산, 경동 등 5대 공립고등학교와 배제, 보성, 양정, 중앙, 휘문 등 5대 사립고등학교는 높은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교들이었고, 그중에서도 경기, 서울, 경복고는 3대 명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통비와 식사비였다. 누나가 아끼고, 아껴서 주는 용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끼니를 해결하는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도서관 안에 있는 식당에서는 아주 저렴한 국수와 백반 등을 팔고 있지만, 영석에게는 그조차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석은 튀김, 김밥, 순대, 쫄면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아서 분식 가게라도 보일라 치면 애써 외면한 채 빠른 속도로 걷곤 했다. 영석의 몸무게는 50킬로그램을 간신히 넘었다.


이제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다 못해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기까지 한 8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에 영석은 너무 배가 고파 라면이라도 끓여 먹기 위해 서둘러 집에 왔다. 누나도 토요일이라 영석이보다 20분 정도 늦게 집에 들어왔다.

“이봐 학생 있는가?” 곰소댁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 있나요?” 누나가 영석이보다 먼저 대답하며 뛰어나갔다.

“방금 들어오는 눈치던 디, 혹시 저녁 안 먹었으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 안 먹을랑가?”

“아이고 저와 동생은 감사하지만, 폐가 되는 일이라....” 누나는 말끝을 흐렸다.

“오늘 생선 팔다 남은 고등어가 있어서 무 썰어 넣고 대충 끓여 놓은 게 있으니 와서 같이 한술 뜨자고” 곰소댁의 목소리가 펄떡거리는 고등어를 닮은 듯 싱싱하게 들렸다.

영석과 누나가 곰소댁네 집안을 들어가는 일은 처음인지라 매우 조심스러웠다.

“어 오빠 왔네! 우와 신난다”

방바닥에 엎드려서 숙제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숙희가 벌떡 일어서 영석의 손을 잡았다.

“죄송해요. 처음으로 오는 것이니 빨랫비누 한 장이라도 사 가지고 와야 하는 건데...”

누나는 아주 어색한 표정으로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살아가는 사정 다 알고 있는 처지에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어서들 앉아” 구석에 앉아 있던 정선생이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으며 한마디를 했다.

곰소댁이 가져온 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등어찌개와 애호박찌개, 김치, 그리고 파래무침 등이 아주 정갈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던가? 영석은 엄마가 가마솥에 밥을 하다가 밥물이 넘칠 때쯤 김치 한 포기를 양푼에 넣고 밥솥에 넣어놓으면, 밥물이 넘치면서 양푼 속으로 스며 들어가 알맞게 익은 김치나 무 또는 김치를 넣어 끓인 고등어찌개와 조림, 그리고 양재기 속에 손질한 조기를 넣고 파, 마늘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어 밥 위에 찐 조기를 가장 좋아했다. 곰소댁의 음식 솜씨가 바로 엄마의 음식 솜씨와 너무나 닮은 것 같아 영석은 너무 기뻤다.



“시장에는 팔다 남은 채소들이나 생선들이 많이 있어, 내가 가끔 갖다 줄 텡게 두 남매 굶지 말고 살어”

“없는 놈의 서러움은 없는 놈이 젤 잘 아는 벱이여”

“영석이도 무람없이 와서 밥 먹어,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잘 먹어야 헝게”

“우리 저 냥반도 내가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말라서 그냥 시체나 다름 없었어, 지금은 내가 해주는 밥 먹고 저나마 살이 많이 찐 거여”

“아 그러세요?” 누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눈치로 정선생을 한번 흘끗 쳐다보았다. 정선생은 무심한 듯 신문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누나는 평소 궁금했던 것을 드디어 알아낼 기회라도 생긴 듯 자신의 무릎을 곰소댁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물었다.

“내가 저 냥반집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없고, 저 냥반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모르며, 저 냥반 한티서 가끔 들은 이야기밖에 없으니 뭣을 알겠는가만은 내가 쬐까 들은 이야기로는 고시공부하니라고 신세 망친 냥반이여”

누나는 더 구미가 당기는 눈치였다. 영석이도 갑자기 두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게, 영석이 가서 공부해야 할 텐데” 자는 줄 알았던 정선생이 한마디를 했다.

“아따! 오늘은 반굉일인 토요일이고 밥 먹었으니 소화는 시켜야 할 것 아니요?

정선생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화들짝 해서 일어나려던 영석이가 다시 주저앉았다.

“벌써 3년이 흘러부렀네. 저 냥반이 시장 순댓국집에서 괴기 몇 점에 쐬주 마시고 쓰러져서 몸을 못 가누고 있는디, 주인은 눈알을 부라리며 어서 돈 내고 집에 가라고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더란 말이여”

“시장 사람들은 무슨 싸움이라도 났나 싶어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디, 내가 보니께 시체나 매한가지인 사람이 상위에 널부러져 있는 거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생이지만 너무나 불쌍해 보이더랑게, 그래서 내가 술값을 내겠다고 했지, 그리고 이 사람을 부축해서 중앙파출소로 데려다줄라고 혔지, 근디 이 사람을 부축해봉게 종이장처럼 가벼운 사람이 하늘 하늘 허는디 퍼뜩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유언 한 마디도 못허고 기계에 찡겨서 뒤져삐린 냄편 생각이 나더란 말이여”

“아저씨 주무실 디는 있냐고 물어 봉게 고개만 흔드는디, 그런 몸으로 파출소 유치장에서 자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없는 돈에 택시 불러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부렀지”

“내가 그때 귀신이 씌었나 봐, 왜 그날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이여”

숙희는 벌써 쌔근쌔근 잠이 들었고, 정선생도 피곤했는지 벽에 몸을 기댄 채 졸고 있었다. 영석은 어서 집에 가자고 누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나 누나는 이를 모르는 체하며 “그래서요?”하고 물었다. 곰소댁은 정선생을 눕힌 후 이불을 덮어주고 두 사람 앞으로 디시 와서 앉았다.


“아따 오랜만에 집안에서 사내 냄새가 낭게 정신이 없더구마 잉”

“이부자리 깔아서 재우고 나는 숙희랑 골방에서 잤제”

“근디 새벽에 이 냥반이 물을 찾는 눈치여, 물을 떠다 줌서 봉게 병색이 심했지만 낯바닥은 준수허드란 말이여”

“장사를 하러 나가야 헝게, 꼼짝 말고 내가 장사 끝나고 돌아올 때까정 여그 있으라고, 우리 숙희 핵교 댕겨와서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 텡게 쪼까 봐달라고 신신당부 허고 장사하러 나갔제”

“근디 장사허먼서도 불안허드란 말여, 처음 본 사람한티 도대체 뭘 믿고 우리 숙희를 맽겼는지,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도 몰르겄어”

“진짜 그렇네요. 처음 뵌 분을 어떻게 믿고 그랬답니까?”

누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렁게 말여! 그냥 눈빛을 봉게 나쁜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제”

“그런데 저녁에 와 보니 선생님이 계시던 가요?”

이번에는 영석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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