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5화 정선생과 곰소댁(2)


“시장에서 장사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왔는디 숙희란 년이 뾰로통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저 냥반은 마루에 앉아 있더구먼”

영석이와 누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냥반은 왜 자기가 여기 있느냐고 물으면서 다만 비몽사몽간에 내가 숙희를 부탁함서 꼼짝 말고 여그 있으라고 했던 말만 어렴풋이 생각나서 내가 올 때까장 앉아 있었다는 거여”

“근디 저놈의 가시낭년이 나를 쳐다봄서 째려보는 거여, 도대체 누구냔 거제”

영석이가 생각해도 엄마가 갑자기 낯선 남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왔으니, 숙희가 황당해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근디 뭐라고 해야 저년이 이해할까를 생각헝게 참말로 폭폭 하더구먼”

“그라고 갑자기 저 냥반이 너무 고맙다고 하고서는 가겠다는 거여”

“어디 갈 디는 있소?” 곰소댁이 물었단다.

“갈 디가 없는 눈치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디, 그냥 보내면 내가 죄를 짓는 것 같더라고”

“내가 부엌에 가보니 아침에 해놓고 간 밥을 숙희도 안 먹고 저 냥반도 안 먹은 거여”

“내가 밥 해놓았으니 드시라고 이야기를 못하고 나갔고, 숙희란 년도 낯선 사람이 있으니 하루 종일 밥을 안 먹고 있었던 개벼”

“그려서 갈 데 가더라도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혔지”

“둘 다 배가 고팠는지 허천나게 먹더구먼”

“그래서요 밥을 먹고 정선생님이 가셨나요?” 누나가 물었다.

“오랜만에 사나 놈이 있으니 집안에 활기가 도는 것 같은 디, 간다고 허니 어째 좀 서운한 것이 지금 생각혀도 뭐라고 설명을 하기 곤란헌 기분이었어”

“그려서 내가 이왕 하룻밤 잔 것 밤도 늦었으니 하룻밤 더 자고 가되 나랑 25도짜리 진로쐬주나 한 병 까자고 했제”

“잘 허먼 두깨비 그림 그려진 병뚜껑도 찾을 것이고 그러먼 포니자동차 한 대 받아 팔자 고칠 수 있을랑가 모른다고 꼬셨제”


영석은 시내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1970년에 진로소주가 삼학소주로부터 소주 시장 1위 자리를 뺏을 수 있었던 1등 공신은 병뚜껑 경품행사라고 이야기하던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아저씨들은 1973년에 삼학소주가 부도가 나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놓고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김대중 후보를 밀었다는 이유로 세무조사를 받아 망했다고 주장하는 전라도 말투의 아저씨와 1971년에 삼학소주가 소주병에 붙이는 납세증지를 위조한 ‘납세증지 위조사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경상도 말투의 아저씨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져 운전기사와 버스 안내양, 그리고 승객들까지 나서서 뜯어말리던 기억도 났다.


“그래서요 정선생님이 주저앉으셨나요?”

누나는 또 조바심을 냈다.

“그럼 어쩔 것이여? 보아 허니 갈 데도 없어 보이더구먼”

“쐬주 한고뿌만 하고 가겠다면서 마루에 다시 앉더라고”

“내가 그동안 숙희 줄라고 냄겨두었던 돼야지 고기에 양파, 마늘, 파, 그리고 꼬치장 넣고 뽂아서 이왕이면 방으로 들어가서 마시자고 혔지”

“숙희란 년도 괴기를 봉게 눈깔이 헤까닥 뒤집혀 갖고 달라들대”

“그락 저락 쐬주 한 병을 나눠 마셨는디, 25도밖에 안 되는 술 몇 잔에 저 냥반이 픽 꼬꾸라져 불더라고”

“어머 또 쓰러졌어요?” 누나가 물었다.

“다행이네요. 또 아주머니 집에서 잘 수 있게 되어서요”

영석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숙희는 정선생님과 사이가 좋아졌나요?”

“좋아지긴 뭘 좋아져? 저년이 지 엄마 뺏길까 봐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키는 것 같더라고 효녀 난 거지, 효녀!”

“근디 말여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냥반인디 남자로 보이는 것은 무슨 조화 속이었는지 몰라”

“아마도 내가 남자가 그리웠던 게 벼”

“근디 그다음 이야기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에 걸리는디?”

“마른 장작이 화력이 좋다는 말은 심의에 안 걸리겄제?”

“거그까정만 허자고”

“사람의 정이란 것이 무서워서 벌써 3년이 흘러가 번졌네”

“그런디 저년이 정선생을 아빠라고 안 부르니 그것이 문제여”

“저 냥반이 나헌티 자기는 카뿌까라는 사람이 썼다는 ‘병신’이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는 거여”

영석은 정선생이 언젠가 자신이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법대를 안 나오고도 사법고시 1차 시험을 여러 번 합격했는디 2차에서 여러 번 아슬아슬허게 떨어지면서 나이는 먹고 취직도 안 되고 결혼도 못 허고 집에다 돈 달라는 소리도 못 하고 사람 구실 못 항게 가족들이 식은 밥 취급했던 게 벼, 그래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제”


영석은 잠들어 있는 정선생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면서 ‘변신’의 줄거리를 떠올렸다.

성실한 외판원이었던 그레고르 잠자는 빚을 갚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 즉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의 곤충으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그레고르의 방문이 열리자 그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비명을 지른다. 아버지는 격노하고, 어머니는 기절하며, 여동생 그레테는 두려움에 떤다.


그레고르는 출근하지 못하고, 직장 상사인 지배인까지 찾아와 그를 추궁한다. 방문 틈으로 보이는 그의 끔찍한 모습에 지배인은 도망치고, 분노한 아버지는 그를 방 안으로 몰아넣으며 사과를 던져 그레고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 갇힌 채 가족과 단절된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보살피는 역할은 주로 여동생 그레테가 맡는다. 그레테는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그의 방을 청소하고 먹이를 가져다주지만, 점차 혐오와 피로를 느끼게 된다.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자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그들의 삶은 그레고르 없이도 계속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레고르를 한 명의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짐스럽고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가족들은 세 명의 하숙인을 들여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느 날 그레테가 하숙인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음악을 듣고 감동한 그레고르는 방에서 기어 나오지만, 하숙인들은 그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떠나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하숙인들이 떠나자, 그레테는 더 이상 그레고르를 돌볼 필요가 없다며, “저 벌레는 오빠가 아니에요. 저건 그냥 벌레예요”라고 외친다. 이 말을 들은 그레고르는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진다. 자신이 가족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방으로 기어들어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 조용히 숨을 거둔다.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를 혐오스러운 벌레로 인식한 채 청소부에게 치우게 한다. 그레고르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슬픔이 아닌 해방감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홀가분함을 느끼며 함께 교외로 소풍을 나간다.

‘변신’이라는 소설의 비극적인 핵심은 육체적 변신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그를 더 이상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가족의 정신적 변신일 것이다. 영석은 ‘변신’의 정서적 본질이 사법고시에 여러 번 떨어진 정선생의 삶에 그대로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끔찍한 벌레의 껍질이 짓누르는 듯한 생각이 들어 흠칫 놀랐다.


‘고시생’이라는 이름이 어느 날부터 ‘고시 낭인’이란 이름으로 바뀌면서 마치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먹이를 가져다주듯 한때 정선생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던 이들조차 그를 ‘희망’이 아닌 ‘짐’으로 여기게 되었을 것이고, 정선생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혐오와 경멸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정선생이란 존재는 가족들과 사회에게 보이지 않는 짐이었을 것이고, 더 이상 그들에게 ‘아들’이나 ‘청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실패한 벌레’였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그는 투명 인간이 되었고, 그를 버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곰소댁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 위를 기어 다니는 한 마리 벌레였을 것이고, 술에 취해 쓰러진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그레고르가 자신의 방에서 가족들의 혐오를 견뎌냈던 것처럼 차갑고 무심했을 것이다.

영석은 곰소댁의 따뜻한 손길이 그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새로운 변신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부가 재수생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데, 가족과 사회에 짐이 되고 있는 자신과 정선생의 삶이 도대체 뭐가 다를까 싶어 착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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