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회자되다”는 틀린 표현일까?

by 축성여석

의외로 많이 헷갈리는 우리말 (회자하다 vs 회자되다)

말은 자주 쓰일수록 본래의 문법적 틀에서 벗어나기 쉽다.

요즘 기사나 방송에서 “그 발언은 SNS에서 크게 회자됐다.”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귀에 익숙해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이 표현이 과연 올바른가를 두고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이 문제는 단순한 맞춤법 논쟁이 아니라, 우리말이 지닌 능동적 표현 감각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와도 맞닿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자되다’를 틀린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의미의 원형과 우리말의 감각에는 ‘회자하다’가 더 가깝다.


1) ‘회자(膾炙)’의 본뜻을 알면 답이 보인다

‘회자(膾炙)’는 날고기 회(膾)와 구운 고기 적(炙)을 뜻한다.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듯,

어떤 이야기나 이름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아 칭찬 속에 퍼지는 상태를 비유한 말이다.

이미 이 단어 자체에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회자하다'만으로도 뜻은 충분히 완결적이며 자연스럽다.


[올바른 예시]

-“그의 일화는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했다.”

-“짧은 한마디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회자하며 큰 울림을 주었다.”


2) 그렇다면 ‘회자되다’는 왜 쓰일까?

피동형 접미사 ‘-되다’는 보통 ‘누군가에 의해 어떤 상태로 바뀜’을 나타낸다.

그래서 ‘회자하다’처럼 이미 능동적 의미를 내포한 표현에 ‘되다’를 붙이면

의미가 한 번 더 겹쳐지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현실 언어에서는 ‘회자되다’가 널리 쓰이고 있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 표현이 등재돼 있다.

이는 ‘누군가에 의해 입에 오르내려졌다’는 의미로 굳어진,

언중의 사용 습관 속에서 굳어진 피동형이라 볼 수 있다. 즉 ‘회자하다’가 의미의 원형에 가까운 표현이라면, ‘회자되다’는 실제 사용 속에서 굳어진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교정을 볼 때, 가능한 한 ‘회자하다’로 고쳐 쓴다.


3) ‘유행하다’와 ‘논의되다’를 비교해 보자

-유행하다 (O) / 유행되다 (X)

‘유행’은 자연스럽게 퍼지는 상태를 뜻하므로 능동형이 어울린다. “요즘 이 패션이 유행돼요”라고는 하지 않는다.


-논의하다 / 논의되다 (O)

‘논의’는 특정 주체가 어떤 안건을 다루는 행위를 뜻한다.

주체를 생략할 때는 “현재 이 사안은 논의되고 있다”가 자연스럽다.


‘회자’는 본래 의미상

‘논의’보다는 ‘유행’에 더 가까운 말이다.

그래서 ‘회자하다’가 더 자연스럽지만, ‘회자되다’ 역시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진 표현임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4) 한 줄 정리 및 기억법

-권장 표현: 회자하다

(입에 오르내리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다)

-자주 쓰이는 표현: 회자되다

(표준어로 인정된 피동형)


[쉽게 기억하는 법]

맛있는 회와 구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미 입에 오를 준비가 된 말이라면, 굳이 ‘되다’를 덧붙일 필요는 없다.

말이 스스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는, ‘회자하다’가 더 어울린다.


***

본 연재는 브런치에서 30회째 연재 중인 〈聰明記, 출판편집 40년의 기록〉의 현장 메모에서 언어에 관한 대목만을 따로 추려 묶은 것입니다. 〈聰明記〉가 삶의 장면들이라면 이 매거진은 그 장면들 사이에 남은 문장의 잔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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