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회전시키다”

by 축성여석

자기가 하면서 ‘시켰다’고 하는 거짓말에 관하여

언어에는 진실을 흐리는 습관적 과장이 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시키다’류 표현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한 일을 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시켰다’고 말한다.

“의자를 회전시켰다”, “문을 닫히게 시켰다”, “기계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문장들의 주어는 모두 실제로 손을 움직여 행동한 당사자다.

자기가 돌렸고, 닫았고, 작동시켰다.

그런 일을 과연 ‘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키다’는 본래 남에게 명령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원인만 제공할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아이에게 청소를 시켰다.”

이 문장에서 나는 직접 청소를 하지 않았다. 청소 행위를 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반면, “나는 청소했다”라고 말하면, 그 행위의 주어는 분명히 나 자신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문법 문제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는가를 가리는 언어의 윤리이자 책임의 경계다.

‘회전시키다’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회전하다’는 그 자체로 이미 능동적 동작이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돌렸다면, 그 사실을 숨길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표현의 격식이 아니라, 누가 돌렸는가다.

* 팬이 스스로 돌아가면 → “회전했다.”

* 내가 버튼을 눌러 팬이 돌도록 만들었다면 → “회전시켰다.”

이것은 정상적인 사동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손을 대어 돌려 놓고도 “회전시켰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가 하면서 시켰다고 말하는 언어적 허위에 가깝다.

이런 과잉사동은 문체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일상의 감각을 흐린다.

‘이동시키다’, ‘조정시키다’, ‘교체시키다’, ‘중단시키다’ 같은 표현도 그렇다.

대부분은 ‘이동하다’, ‘조정하다’, ‘교체하다’, ‘중단하다’로 충분하다.

‘시키다’를 덧붙이는 순간,

문장은 불필요하게 부풀고, 책임의 주체는 흐릿해진다.

말은 어느새 공무원 어투에 가까워진다.

언어를 단정히 한다는 것은 단어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행위의 주어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시키다’를 붙이지 않는다. 내가 했다면, 했다고 말한다.

그 단순한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문장은 힘을 얻고말은 다시 진실에 가까워진다.


***

본 연재는 브런치에서 30회째 연재 중인 〈聰明記, 출판편집 40년의 기록〉의 현장 메모에서 언어에 관한 대목만을 따로 추려 묶은 것입니다. 〈聰明記〉가 삶의 장면들이라면 이 매거진은 그 장면들 사이에 남은 문장의 잔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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