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과잉 사동의 습관

by 축성여석

책임을 피하는 문장들에 관하여

언어에는 책임감이 깃든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쓰는 말에서는 행위를 흐리게 만드는 문장이 유난히 많다.

‘누가 했다’는 선언 대신 ‘무엇이 되었다’, ‘누군가에 의해 진행되었다’ 식으로 주어가 실종된 문장들 말이다.

이런 표현은 문법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책임을 교묘히 비켜선 문체라 할 만하다.


대표적인 과잉 사동은 “조사 시키겠습니다”, “조정 시켰습니다”, “중단 시키겠습니다” 같은 표현이다.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조사하겠습니다”, “조정했습니다”, “중단하겠습니다”가 훨씬 진실하고 투명한 문장이다.

주체가 일을 직접 수행하면서도 굳이 ‘시키다’를 덧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무적 말투로 격식만 차리려는 습관의 결과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다’는 미묘한 거리 두기의 심리가 숨어 있기도 하다.


이런 ‘거리 두기 문장’은 관공서 문서나 방송 대본, 회의 보고서에서 특히 흔하다.

“검토가 진행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 말은 듣기에 책임감 있어 보이지만, 실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는지를 회피한 미적지근한 문장이다. 직접적인 말로 바꾸면 문장의 온도가 달라진다.

“검토하겠습니다.”

이 짧은 다섯 글자 속에는 주체의 의지와 행동,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살아 숨 쉰다.

언어의 ‘피동화’와 ‘사동화’는 곧 사고의 수동성으로 이어진다.

말을 돌려 쓰는 습관은 점점 행동의 중심을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누가 한다’는 의지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결과만 남는다. 이것이 바로 과잉 사동이 의미를 흐리는 동시에 책임을 분산시키는 언어적 장치가 되는 이유다.


우리가 다시 ‘~시키다’ 대신 ‘~하다’를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문법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거창한 격식 아래 숨겨진 주체를 되찾는 일이며, 말의 근육을 되살리는 일이다.

‘행동하는 말’이 곧 ‘믿을 수 있는 말’이다. 정직한 주어가 살아있는 문장을 쓸 때,

비로소 우리의 언어는 신뢰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된다.


***

본 연재는 브런치에서 30회째 연재 중인 〈聰明記, 출판편집 40년의 기록〉의 현장 메모에서 언어에 관한 대목만을 따로 추려 묶은 것입니다. 〈聰明記〉가 삶의 장면들이라면 이 매거진은 그 장면들 사이에 남은 문장의 잔향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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