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人文學, 언박싱
_⑤ 物(만물 물)

by 축성여석

한자는 오래된 문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지금도 현재형이다.

이곳에서는 설명보다 호흡을 먼저 꺼내 본다.

상자를 열듯, 한 글자씩.

외우기 위한 한자가 아니라, 살아보게 하는 한자.

오늘 열어 볼 글자는 物, 만물 물이다.


만물 물.png


한자 人文學, 언박싱-⑤ 物(만물 물)


牛 소.

勿 말다, 혹은 여러 빛의 천을 잇댄 깃발.


物자를 가만히 풀어 놓으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둘이 마주 선다.

소 한 마리와,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하나의 부호.

왜 ‘만물’을 뜻하는 글자에 소가 들어갔을까.

아마도 고대의 눈에는 소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가까운 생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밭을 갈고, 삶을 지탱하며, 때로는 제물이 되던 존재.

소는 곧 하나의 세계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物 속의 牛는 소 한 마리가 아니라, 그 몸을 덮은 셀 수 없는 털들이 아닐까.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털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생겨났을 만큼,

소는 이미 무수한 것들의 집합이었다.

하나이되, 수많은 결이 겹쳐 있는 상태.

그렇게 읽으면 物은 단일한 사물이 아니라,

수많은 결들이 잠시 한 이름에 묶여 있는 현장처럼 보인다.

그 옆의 勿은 그 장면을 움직인다.

여러 색의 천이 이어진 깃발로 보면,

이 글자는 바람에 흔들리고, 방향을 바꾸며,

서로 다른 결을 드러내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物은 정리된 목록이 아니다.

한 마리의 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털과 결이 드러나는 존재다.


나는 종종 사물을 너무 빨리 규정해 왔다.

쓸모가 있는가, 내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세계는 쉽게 납작해졌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것은 ‘나와 세상이 하나’라는 선언이라기보다,

나 또한 세상 속의 하나의 물성임을 인정하는 자각에 가깝다.

나 역시 수많은 결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한 올의 털일 뿐이라는 깨달음.

산에서 붓을 들고 획을 그을 때,

종이와 먹과 붓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것들은 도구가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내가 그들을 다루는지, 그들이 나를 이끄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物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얻기보다, 무엇을 함부로 정하지 않기로 한다.

곁에 있는 물건 하나, 스쳐 가는 사람 하나를 오래 바라보며,

그가 흔들고 있을지 모를 보이지 않는 깃발을 상상해 본다.

소처럼 묵직한 침묵으로,

세상이라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다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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