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에서 인생을 배우다.(실무생활)
혹독한 겨울을 훈련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내가
근무할 포항 1사단 자대에 배치되었다.
이등병 계급으로 첫 자대에 도착했을 때 기억은 전혀
잊히지 않는다. 모두 검게 그을린 얼굴과 근육질의 선임들
모습에 긴장하며 내무실에 들어가니 아 이제 진짜 군대에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각 계급의 선임들의 모습은 너무 달라 보였다.
일병 선임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선임들의 눈치를 보며 기합이
바짝 들어 있었고, 상병 선임들은 조금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지만 병장들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병장들은 항상 웃으며 후임들에게 장난을 치며 군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언젠가는 나도 병장이 되겠지?라는 머나먼 기대를 하게 되었다. 역시나 첫날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 맞선임이 건네준 쪽지에는 중대 선임들의 기수와 성명 그리고 해병대만의 군가 일명 “사가”라는 군가가 적힌 쪽지 두장을 내일까지 외워야 한다는 말에 새벽시간 화장실에서 외우던 기억이 난다.
해병대의 내무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해병대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이병, 일병 생활은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하루라도 집합을 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매일 세탁실로 불려 가 얼차려를 받는 게 일상이었다. 드디어 자대배치를 받고 100일이 지나고서 받은 4박 5일 위로휴가는 정말 4.5초 만에 자대에 들어온 느낌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법 군기가 바짝 들어가고 있었다. 일병이 되면서 중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제 좀 파악이 되어 눈치껏 재빠른 행동으로 내무생활은 적응하였지만 매달 빡빡한 훈련은 왜 해병대가 힘들다고 했는지 알게 하였다. 포항에 위치한 해병부대는 상륙사단으로 365일 중 2/3 이상을 야외에서 훈련을 받느라 장시간 대대를 떠나 있을 때에는 내무실에 거미줄이 쳐질 정도로 야영훈련이 많았다. 나도 점점 검게 얼굴이 그을리며 군복은 항상 작업과 훈련으로 깨끗한 적이 없었다. 깨끗한 군복은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종교활동으로 교회에 갈 때만 입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줄 잡힌 군복과 다림질로 주름 하나 없는 군복을 입는 병장의 모습이 항상 부러웠다. 조금만 참자! 나도 1년 5개월이 지나면 병장이 될 거야! 참고 견디었다.
역시 군대를 가면 여자친구와 헤어진다는 말이 남의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도 이별이란 시간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 만났기에 그럴 일은 없을 거란 착각을 했다. 전화를 잘 받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일병을 넘기지 못하고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별의 아픔도 잠시 지나가는 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훈련과 내무 생활에 하루하루 견디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모든 훈련과 군생활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더 강한 정신력을 가지기 위해
정말 열심히 군 생활을 이어갔다.
전투수영, 호국훈련, 쌍용훈련, 상륙훈련, IBS상륙기습훈련등 모든 훈련을 한 번씩 지나고 나니 드디어 상병이 되었다.
상병은 해병의 꽃이라 했던가.. 이젠 마음대로 전화도 할 수 있고 밥도 고봉밥 안 먹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도 있고
책도 마음대로 볼 수 있다니 정말 인생역전의 기분이었다.
상병이 되고 나는 정말 전역 후 내 인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무엇을 할 건지
진로와 인생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나는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리는 내 전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의 전공은 원래 호텔 경영이었으나 입대 전 아르바이트로
주방에서 일했던 시절에 정말 즐겁게 일한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요리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 전역 후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자!
그전에 군대에서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준비하여 전역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자 공부도 틈틈이 하여 한자 2급 자격증도 땄다. 그리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요리를 하기 위해 주말에는 외출로 밖에 나가 요리학원을 가서 자격증 공부도 하였다. 결국 한식과 일식 자격증까지 군대에서 취득하게 되었다. 또한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어 본 적 없는 시간도 보냈다.
군대에서 매일신문을 읽으며 경제, 사회, 인문, 경영 등의
지식들을 얻었고 자기 개발서, 경영서적, 심리학등 여러 방면의 책들을 읽으며 나름 내공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병장시절에는 요리감각을 쌓기 위해 시간이 될 때면
취사실 취사병 후임에게 가서 식사 준비를 돕기도 하였다.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 중대에는 정말 공부를 잘하는 후임들이 많았다.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등등 우리나라에서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생인 후임들로 인해 공부하다 궁금한 것은 후임들이 알려 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래서 후임들과 친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병장 때에는 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며
한 주를 보냈는데 일요일이 되면 모든 내무실로 가서 교회를
다니던 후임들을 직접 데리고 나와 같이 교회에 다녔다.
일, 이병 시절에는 종교활동을 하고 싶어도 선임들의 눈치로
교회에 가지 못하는 후임들이 있기에 병장이 되어서는 직접 챙겨서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이병 때 선임이 주먹을 쥐어보란다. 그리고 그 주먹사이의 구멍을 들여다보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게 너의
군생활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병 때에는 주먹사이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앞이 컴컴한 암울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병장이 되고 전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에게도 주먹이 펼쳐진 환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역하기 일주일 전부터 우리 대대 모든 후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 그리고 고마웠던 마음을 담아
새벽까지 한 명 한 명에게 내 전역사진 뒤에 편지를 썼다.
드디어 전역 당일 대대장님께 전역 신고를 하고 대대를 나가
보니 모든 대대원들이 두 줄로 서서 박수를 치며 군가를 부르며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때 후임들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그동안 쓴 편지를 건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해병대에 입대 후 난 3번을 울어보았다. 한 번은 훈련서에서 가족의 편지를 받고 화장실에서 편지를 읽으며 펑펑 울던 기억, 그리고 훈련소 동기들과 마지막으로 각자 자대배치를 받아 헤어질 때 한번, 마지막으로 전역 당일 후임들을 안아주며 흘린 눈물..
이게 전우애인가 2년 동안 내가 생활해 온 대대를 떠나
함께 해 온 후임들을 떠올리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나의 2년여 시간의 해병대 군시절이 끝나갔다.
이제 사회에 나가서 해병의 정신으로 못할게 무엇이더냐..
정말 나에게는 군시절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 되었고 지금 생각해도 내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해병대에서 값진 인생의 경험을 쌓아왔기에 이젠 내 꿈을
펼치겠노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