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은 싫어하면서
첫눈 오는 날은 기다려졌어요.
사무치게 그리운 누군가가 영화처럼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닌데,
눈이 내리는 게 좋아서 눈이 오면
항상 하는 루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매년 첫눈 오는 날엔 창밖을 보며
눈이 내리는 걸 한참 동안 바라봤던 거 같아요.
최근에 그 이유를 알았어요.
첫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어 경치가
아름다워지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계절의 변화하는 그 순간을
좋아하고 기다렸던 거 같아요.
현실적으로는 비염 때문에 환절기가 되면
힘들어지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될 때,
달라지는 공기 냄새, 알록달록해지는 나뭇잎들,
또 첫눈이 오면 가을에서 겨울로 변하는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이 오는 순간,
또다시 달라지는 공기 냄새, 하얀 세상이
꽃으로 덮이는, 그 순간이 좋아요.
하지만 이런 감수성을 자극하는 순간들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메말라가네요.
계절이 변하는 순간에도 무뎌지고,
계절마다 다른 공기 냄새를 느낄 여유도,
색이 바뀌는 나뭇잎이나 꽃을 볼 겨를도 없어지고,
첫눈도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게 됐어요.
그런 낭만을 느끼며 살아가기에는
하루하루 살아 내는 것도 버거웠거든요.
아직도 나는 버티며 살아가는 중이지만,
때로는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예쁜 구름 사진을 남기거나,
퇴근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노을을 진 하늘을 바라보거나,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그 순간들이
내일을 살게 하고, 다음 달도, 내년도,
그 후로도 나를 계속 살게 해요.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나는 왜 죽지 못해 사나?
이런 고민이 나를 짓눌렀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살아가는 데에 그런 거창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더라구요.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나에게 살아갈 이유가 돼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사소한 이유조차 주지 못하고,
상처만 주는 사람들이 뭘 알겠어요.
첫눈이 살아갈 이유가 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첫눈 - 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젯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 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 신해철>
너에게 전화를 하려다 수화기를 놓았네
잠시 잊고 있었나 봐
이미 그곳에는 넌 있지 않은 걸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너의 눈 속에 담긴
내게 듣고 싶어 한 그 말을 난 알고 있었어
말하진 못했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 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내게로 돌아올 너를 또다시 혼자이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내 품에 안기어 눈을 감을 때
너를 지켜줄 거야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 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 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