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심에서 우리로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과 부딪치며 외로움을 느낍니다.
부모님, 연인, 친구... 그 누구와 대화해도 결국 ‘내가 옳다’는 울타리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곤 합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간절히 하고 있는데, 상대는 또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대화가 끝날 때쯤이면 서로의 마음은 닿지 못한 채, 벽 하나가 더 쌓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오랫동안 저는 이런 갈등의 원인을 '상대의 이기심'이나 '성격 차이'에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그 선을 긋고 있는 두 중심이 너무나도 확고하게 '나'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사실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합니다. 이건 도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기본값 같은 것입니다.
내 감정, 내 경험, 내가 살아온 배경...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내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니 내가 우주의 중심인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 자기 중심성을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 부정하거나 숨기려 할 때 시작됩니다.
"나는 객관적이야"
"나는 너를 위해 말하는 거야"
이런 포장은 내 중심을 더욱 단단히 굳히고 타인의 관점을 차단합니다. 그럴 때 대화의 문도 함께 닫히기 시작합니다.
제가 관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낀 순간은, 제 깊은 곳에 자리한 자기 중심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을 때였습니다.
"아, 지금 내가 또 내 생각에만 빠져서 내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
이 인정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습니다.
내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사람 역시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상대의 억울함, 상대의 서운함, 상대의 날카로운 말들이 더 이상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우주에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 작은 틈, 그 틈이 바로 존중입니다.
이 틈이 생기면 대화가 달라집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지를 따지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교환하고 의논하는 시간이 됩니다.
“내 말 좀 들어줘!”가 아니라
“우리 이 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갈 수 있을까?”라는 묻게 됩니다.
이 변화는 의외로 관계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상대의 중심을 인정한 순간, 나도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중심에서 ‘우리’의 중력으로 의논의 과정이 반복되면, 우리는 자기중심의 세계를 깨고 나와 ‘우리 중심’으로 사고가 확장됩니다.
‘내 우주’와 ‘너의 우주’가 충돌하며 깨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중심을 인정하며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안전지대— ‘우리’라는 공동의 중심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말이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왜 너는 늘 그렇게 말해?”
에서
“우리가 더 편하게 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내가 맞잖아!”
에서
“너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로.
불붙듯 뜨거운 감정은 쉽게 타올랐다가 쉽게 식을 수 있습니다.
진짜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내 안의 자기 중심성을 인정하고, 상대의 자기 중심성까지 인정하는 존중의 일관성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