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과 존재 : 명절 갈등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

by 학연서


1. 명절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의 침묵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릅니다. 운전하는 남편도 피곤하고,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시선은 창밖 먼 곳을 향해 있습니다.


"당신 수고했어."


남편이 건넨 위로에도 아내의 마음은 쉽사리 풀리지 않습니다. 남편의 '수고했다'는 말에 아내를 향한 '존재'는 빠져있으니까요. 남편은 아내를 '고생한 일꾼'으로 인정했을 뿐, '가슴 아픈 한 사람'으로 헤아려주지는 못했습니다. 몸이 힘든 건 며칠 쉬면 낫는다지만, 가슴 한가운데 얹힌 돌덩이는 내려갈 줄을 모릅니다. 섭섭함과 서운함이 밀려와 창밖 풍경을 눈물로 번지게 만듭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뉴스는 떠듭니다.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

"남자도 가사 노동 분담 해야 한다"

"명절 음식 간소히 하자. 전 부치는 양을 줄여야 한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불판 앞에서 허리 한 번 못 펴고 전을 부치는 일은 고된 노동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요?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도 마음까지 부서지는 진짜 이유는, 전을 수십 장 부쳐서가 아닙니다. 그 부엌에 '나'라는 존재는 없고, '며느리'라는 역할만 덩그러니 남겨졌기 때문입니다.



2. "너는 우리 집의 '기능'이다"


시댁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많은 며느리들은 기이한 박탈감을 느낍니다.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과장님이고, 친정에서는 귀한 막내딸인 내가, 이곳에만 오면 이름도 개성도 지워진 채 일꾼으로만 취급받는 느낌 말입니다.


와야 하는 사람.

부엌에서 움직여야 하는 사람.

집안 행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일꾼.

며느리라는 역할엔 오직 기대치만 존재합니다.


"이 정도는 며느리가 해야지."

"요새 젊은 애들은 약해 빠져서..."

“넌 이것도 못하니? 친정에서 뭘 배운 거야.”


이 차가운 기대와 무시 속에서 모멸감을 느낍니다.


"나는 이 집의 식구인가, 아니면 잠시 고용된 인력인가?"


몸의 피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서러움입니다.



3. 초대받은 사람 vs 부름 받은 사람

하지만 똑같이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해도, 어떤 집의 풍경은 다릅니다. 그곳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따뜻한 존중의 향기가 흐릅니다. 그 차이는 노동의 양이 아니라, 말의 온도에 있습니다.


"우리 며느리,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 (환대)

"쉬엄쉬엄 해라." (배려)

"네 덕분에 이번 명절도 잘 보냈구나. 정말 고맙다." (인정)

이 몇 마디 말은 마법과 같습니다.


상대를 '일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존재‘로서 귀하게 대우해 주는 순간, 며느리는 더 이상 '일꾼'이 아니라 사랑받는 '가족'이 됩니다.


우리는 압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짓는 밥은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것을요. 소중한 가족이 먹을 전을 부치는 손길에는 정성이 깃들고, 설거지하는 뒷모습에도 흥이 납니다.



4. 전을 줄이기보다, 마음을 읽어주세요


우리는 늘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해결하려 합니다.


"이번엔 전을 사서 하자"

"남편들도 같이 해라."


물론 필요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건 일의 양 때문이 아니라, 관계에서 존중의 부재 때문입니다.


전의 개수를 줄이는 것보다 더 시급한 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눈빛입니다. 기계 부속품처럼 대하지 않고, 피와 살이 도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


"우리는 너를 아껴."


이 마음이 전달된다면, 우리는 전쟁 같은 명절이 아니라 축제 같은 명절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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