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 중국 한나라가 세워지기 전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이름은 '한신'. 그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지만, 허리춤에는 언제나 제 몸집만 한 큰 칼을 차고 다녔습니다. 비록 당장은 비루한 모습일지라도, 가슴속에는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거대한 야망이 숨 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네 건달들의 눈엔 그 모습이 몹시 거슬렸나 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에서 건달 하나가 한신의 길을 막아섭니다.
"야, 너는 쥐뿔도 없으면서 칼은 왜 차고 다니냐?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칼로 나를 찌르든지, 아니면 내 다리 사이로 기어서 지나가라!"
순간, 시장통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수많은 눈동자가 한신을 향했습니다. 한신의 손이 칼자루를 움켜쥐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저 건달을 벨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찰나, 한신의 머릿속엔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지금 칼을 뽑으면 나는 살인자가 되어 쫓기게 된다. 내 꿈은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저 다리 밑을 기어가면... 당장의 치욕은 있을지언정 내 꿈은 살아남는다.'
한신은 칼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몸을 낮췄습니다. 그리고 흙먼지 묻은 바닥에 엎드려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갔습니다. 등 뒤로 쏟아지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그는 어떤 표정으로 견뎌냈을까요.
우리는 흔히 이 이야기를 "참는 것이 미덕이다"라는 교훈으로 배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그 뒷부분에 있습니다.
먼 훗날, 한신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의 개국공신이자 대장군이 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한신은 자신에게 치욕을 줬던 그 건달을 다시 찾아갑니다. 사람들은 한신이 복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건달에게 벼슬을 내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네가 나에게 참을성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한신이 위대한 이유는, 모욕을 당했을 때 칼을 뽑지 않고 참아서가 아닙니다. 치욕을 삼킨 뒤, 힘을 길렀다는 점입니다. 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힘을 기르기 위한 시간을 버는 전략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살다 보면 참는 것이 때때로 불가피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눈앞에 닥친 시련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참는 것까지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미덕으로 치부하고 칭찬하는 것은 다음에 또 참아야 할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신은 참는 것을 미덕이라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지금 저 건달 하나를 제압할 힘과 권위가 없구나. 내가 더 강해져야겠구나.'
이처럼 자신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기 존중이며, 한신에게 있어서 자기 존중은 결핍을 채우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