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시인의 짧은 산문집
마지막 편지
사람을 처음 만나서 친해지기까지는 여러 가지 마음의 물길이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 같은 느낌도 있고, 비바람 몹시 치는 날의 파도 같은 물살도 있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소박함도 있습니다. 5년 전, 웰다잉 강사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난 형은, 작은 얼굴과 흰머리에서 느껴지는 왜소함에 까탈스런 사람 일거라는 조심성이 내게 있었어요. 두 번째 만나는 그날, 매번 가는 00역 10번 출구가 아닌 8번 출구로 발이 저절로 가서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고, 그 얼마 후, 웅변학원에 가는 날, 같은 건물에 있는 기타교실에 가는 형을 우연히, 아니 운명처럼 또 만나게 되었어요. 그렇듯 웰다잉 강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 같은 느낌으로 형의 따뜻함과 자상함과 스마트함이 진하게 내 안으로 흐르고 있음을 나도 알고, 형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5년 동안, 차곡차곡 우리 둘만의 정을 쌓아갔고, 이제는 좋은 기억으로 쌓여있어요. 기억을 되살려 보면, 참 즐거운 시간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어요.
웰다잉 강사가 되어 노인 복지관 어르신들께 나머지 삶을 행복하고 잘 살아야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게 된다는 강의도 같이하고, 평생학습관의 ‘배우로 배우다’ 연극과정에 입문하여 수료 작품인 “아비‘의 주인공은 형이 하고, 나는 조연으로 의사역과 경찰역을 연습하면서 더욱 친해졌고, 000문화회관 무대에서 연극공연을 하여 관객들의 박수도 받는 특별한 경험을 했고, 형은 00시민연극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여 배우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기쁨을 같이 나눴어요. 자원봉사센터 환경생태해설가 과정도 함께 수료하여, 청소년들에게 환경생태해설가로서 한 봉사활동, 몰운대 숲 해설, 낙동강 수문 어도 탐방, 다대포 갯벌체험, 명지동 철새도래지에서 철새들에 대해 공부하며 자연의 신비로움에 놀라고, 배우고, 봉사활동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쌓았어요.
형과 같이 영도 갈멧길을 걸어서 태종대까지, 국제시장->깡통야시장->남포동 크리스마스트리 축제의 밤거리 걷기, 당리동->한샘->구덕산기상대->구덕문화회관->꽃마을까지의 땀 흘리는 산행, 특별히 엄광산 정상에 올라 땀 식히는 동안. 형이 불어준 하모니카 연주는 너무 선명하게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대저생태공원 유채밭, 맥도생태공원 벚꽃길에서 장난치며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 또 웃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듯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인생수업‘에서 말한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하게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를 실천하듯 살았어요.
만날 때마다 함께 감상한 영화가 너무 많지만, 오늘은 유난히 "미 비포 유"라는 아름다운 존엄사 이야기가 있는 영화, 여자 주인공 주리아의 밝고 사랑스런 모습과 진심을 다하는 마음, 또 남자 주인공 윌의 남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의 마무리. 서로 간의 애틋한 사랑에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작년 6월 건강검진을 한 형은 위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정밀검사를 한 결과 위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었어요. 아무 전조증상도 없었는데 갑자기 받은 진단으로, 웰다잉 공부하면서 배운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했던 죽음 전의 심리 5단계, 즉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3개월 동안 경험하게 되었다며, 꼭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저에게 해 주셨어요. 고향에서 자연치료법으로 활기를 찾아가던 중, 그동안 없었던 통증이 올 초부터 갑자기 찾아와서 형을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어느 날 형은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며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찾아간 그때, 형을 위해서 나는 울지 않았지만, 형은 아픔을 참으며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형이 나를 두고 훌쩍 가셨다는 문자 메시지를 형의 휴대폰 번호로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보내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마지막으로 형에게 답글를 보냈어요.
<마지막 문자>
결국, 가장 두려워했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 순간 가장 힘든 것은 늘 내 편이셨던 형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만 형이 가시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웰다잉 교육과정에서 형을 만나서 5년의 시간을 형으로 인해서 많이 행복했고, 많이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형님 생각만으로 행복했고, 만나면 해맑은 눈빛만 봐도, 다정한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하게 해 주신 형님을 이렇게 빨리 보내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존중해 주고 사랑해 준 사람, 앞으로 살면서 형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은 내게 왔다 간 천사였던 거지요! 아주 많이 생각날 거예요.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셨던 분입니다. 형이 떠나는 날, 비가 많이 내려요. 하늘이 내가 흘릴 눈물을 대신 흘리고 있어요. 가장 슬픈 건, 보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을 때, 말하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배려하고, 공감하고, 웃게 하던 밝은 미소, 따뜻한 눈길, 목소리를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요.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린 그 날에, “하고 싶은 거 다 하신 거지요.” “후회하시는 거 없으신 거지요.” 웰다잉공부 같이했던 제가 농담처럼 물었지만, 대답이 없으셨지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먼저 가는 건 너무 큰 아픔이기 때문이셨겠지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더욱 행복하셔야 해요. 이제 저는 형과 함께했던 시간 들과 추억들에 감사해하며. 만나면 늘 했던 것처럼 이다음에 하늘에서 만나면 하게 될 좋은 이야기를 준비해 가겠습니다. 부디 가시는 길 편안하시길 빕니다. 지난 시간, 너무나 감사했어요. 사랑합니다. 아우가 보내는 마지막 문자 올립니다.
ps. 슬픔은 애써 억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함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다.-조지 베일런트 ‘행복의 조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