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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Mar 05. 2024

변화의 용꼬리를 붙잡는 것은?

닭의 머리냐? 용의 꼬리냐? 

서울시내 모 대학의 교수님과 서로 담소를 나눌 기회가 생겨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시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인서울'권 학교로서 학업을 놓지 않은 입학자원을 데리고  열심히 교육하여 서울시내 상위권 대학의 대학원으로 보내도 봤지만 경쟁에서 잘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말씀하시고, 또 이러한 직업수학자를 키우는 커리큘럼의 운영으로 인해 취업준비가 제대로 안 된 학생들이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진학하기보다는 학원강사로 빠지는 케이스를 언급하면서  허탈감도 느낀다고 말씀하셨다. 최근에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 온 AI교육에 대한 경험도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변화에 직면한 학과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나에게 놀라운 이야기였을까?  지방대학 수학과에 재직하는 나는 이미 2-3년 전에 똑같은 고민을 했었고 학과명을 변경하고 커리큘럼을 변경하기로 하는 데 교수님들과 많은 협의를 진행하느라 연구는 뒷전이었다. 물론 고민의 출발점은 조금 다르긴 하다. 인서울 대학의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학생들이 보다 현실적인 직업인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현실을 아파해서 그러한 고민을 시작했다면 지방대학의 경우 그러한 현실에 더해 대학원 진학과 교사임용에 맞추어진 고학년 커리큘럼을 따라오지 못하는 다수의 학생들로 인해 보다 더 실용적인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고민을 촉발시켰다. 


날로 벌어지고 있는 지방과 수도권의 학력격차로 인해 지방대에 남는 자원들의 실력은 서울에 진학하는 학생들과 비교해서도 2등급 이상의 격차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일타강사로 유명한 정승제의 말로는 "모의고사 5등급은 수능으로 대학 가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라고 했으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방대에 입학한 자원들은 모두 수능을 포기한 세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학생들을 어느 분야로 진출하도록 돕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일일까?  AI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이미 거대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가 더욱 가속화되어 이미 코딩을 하는 GPT4가 상용화가 되면 프로그래밍분야에서 코딩실력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우므로 기본적인 수학(행렬이론, 다변수함수의 미적분, 기초 통계)에 코딩만을 접목해서는 흐름을 쫓아갈 수  없다. 그야말로 용꼬리를 붙잡는 노력만 하다가 죽도 밥도 안될 수 있다! 


그렇다고 4, 5등급의 학생들이 학부기간 동안-접근조차 쉽지 않은-빅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고급예술인 강화학습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강화학습이란 몬테 카를로, 확률과정과 같은 고난도의 통계기법을 바탕으로 다양한 머신러닝의 기법이 결합된 복합적인 과정이며 이는 거대 AI기업-IT업계의 일류기업들-이 주도하는 분야이자 딥러닝이라는 새로운 블랙박스 모델을 배우도록 요구한다. 딥러닝 자체는 인공신경망의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지만 랜덤한 데이터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정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법들로 인해 데이터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가 필요한 분야이고 이는 실제 빅데이터를 가지고 제품을 생산하는 IT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습득하고 있는 기술이지 대학에서 이 학문을 가르치고자 하는 학자들이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동안 수학은 지난 수십 년간 산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분야들- 디지털 기술(MPEG), 파생상품(Quant), 보안기술(Crytography)-과 연결고리를 강조하며 일부 졸업생들이  관련 분야로 진출하는 흐름을 이어왔다. 이제 다시 인공지능(AI)이란 신산업이 일으킨 바람에 슬쩍 올라타려고 하지만 이는 수학이 본질적으로 추구해 온 탐구의 대상이 아닌 만큼 본질적으로 이 분야의 architecture를 설계하는 컴퓨터 공학자들의 리더십을 따라 잡기도 어렵고 또한 컴퓨터 공학이란 학문의 본질도 잘 모르는 대다수의 컴알못 수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대학원 수준의 강의를 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유행을 쫓아가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외피를 쓰는 것을 일부 감수할 수는 있을지라도  수학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학의 탐구대상인 수, 함수, 다면체, 그래프, 방정식을 공부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의 딜레마는 대다수의 학교가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라는 현실- 학문의 연구와 보전을 위해 설립된 중세모델과 목적이 분명히 다른 현실-을 딛고 서 있기 때문에 진로지도가 동반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으므로 수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이들이 학과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보다 더 학생들의 직업교육을 주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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