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여보, 왜 이렇게 밖에 못찍어, 사진을?”
분명 아내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준다며 회색 반바지 위에 헐렁한 무지 티를 걸치고 쪼리를 신은 채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날더러 자신의 뒷모습을 좀 찍어달라고 한다. 그리곤 머리를 차분하게 보이도록 누르고, 손가락으로 살짝 컬도 만들어 부풀릴 곳은 부풀리더니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몹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스마트폰에 담았다. 찰칵찰칵. 아내가 사진을 훑어보고나서 스마트폰을 건네며 한 말이 바로 저 말이다.
나는 변명을 할까하다가 중3 아들이 내 표정을 보고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천천히 고개 젓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내가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좋은 남편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 ‘안꾸’여도 ‘꾸안꾸’로 사진을 찍어주는 능력.
그래. 나는 잘 찍어줘야 했다. 일단 (영혼없이) 미안하다고 하고는 다시 찍어주겠다며 아내에게 다시 앞으로 걸어가라고 했다. 피사체가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자연히 뒤쪽 다리는 쭉 뻗게 되는데, 그 떄 다리가 길어보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포착해서 스마트폰의 셔터를 눌렀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많이 찍을 수록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은 높아진다. 물론 건질 게 하나도 없다면 ‘많이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는 잔소리를 듣겠지만.
사진 보관함을 열어 미리 내가 촬영한 것들을 살펴본 뒤 그나마 제일 잘 나온 사진을 열어놓고 아내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만약 첫 사진부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진은 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나만의 노하우였다.
나는 스마트폰을 건넨 후 긴장한 채로 아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아내는 엄지와 검지로 사진을 확대했다 축소했다하며 살펴본다. ‘그렇게 미시적으로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고!’라고 속으로 외쳤다. 한참 살펴보던 아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한숨을 쉬곤 눈을 치켜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마음에는 안들지만, 더 찍어달라고 했다가는 네가 화를 낼테니 내가 참아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나는 일단 촬영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그녀가 딴 말 하기 전에 얼른 차에 올라탔다.
사실 사진 때문에 많이 싸운다. 신혼 초였던 약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싸움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위에서 내려 꽂으며 촬영했다. 사진을 열어보니 스머프가 있다. 가르마도 세상 그렇게 선명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렇게 찍는 건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피사체의 발끝을 사진의 밑부분에 맞추고 스마트폰을 살짝 뒤로 기울여 찍으니 아내의 키가 10센티는 더 커보였다. 그날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아내는 어딜가든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처음엔 나의 사진 기술에 만족해하던 아내도 이런저런 사진들을 많이 보다보니 매일 주구장창 똑같은 각도로 찍는 것이 싫증났나보다. 여러가지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나의 감성과 기술로는 도무지 그런 사진이 나오질 않았다. 보다못한 20대 초반의 여대생 조카가 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가져가더니 ‘이모!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하고 명령하더니 찰칵찰칵하고 몇 장을 찍는다. 세상에나. 아내가 보여준 사진대로 작품이 나왔다.
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 판독기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아내가 어디서 듣고와서 사진이 안나올때마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아내가 예쁘게 나오기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노력한다. 하지만 아재의 감성과 기술로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내는 내가 젊게 살도록 오늘도 과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