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여행기

by 바다가 보이는 곳

나는 항상 첫번째 손님이다.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이야기다. 우리집은 꼭대기 층이라, 집으로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항상 비어있다. 지하철 5호선으로 치면 방화역이나 마천역에서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습관적으로 버튼이 있는 우측에 자리 잡는다. 문의 열고 닫음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재생하다보면 다음 손님을 태우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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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는데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채로 열려있는 현관문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OO야, 빨리 나와! 엘리베이터 왔어!"

그 여성은 머리가 부시시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패딩 점퍼를 걸친 것을 보니, 아이를 차로 등교시키기 위해 같이 내려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아이가 나올 준비를 다 끝내고 신발장에서 있는 줄 알았는데 슬쩍 보니 신발장 앞에 아무도 없다.

여성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채로 계속해서 아이를 불러댔고(아이의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여학생인 듯 했다.) 결코 시선을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주지 않았다.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저 아주머니는 언제까지 버튼을 누르고 있으려는거지? 이러다 늦는 것 아닌가?

엘리베이터에는 또 한 명의 승객이 있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인데, 머리에 가르마가 워낙 선명해서 마치 칼자국처럼 보였다. 아무 말없이 침착하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그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슬슬 짜증이 나는 표정을 지었다. 나의 반대편에 서 있던 남자는 자신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슬쩍슬쩍 눌렀다. 그러나 여성이 바깥쪽에서 워낙 단단히 버튼을 누르고 있는 터라 엘리베이터는 입을 닫지 않았다.

기어코 남성은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침착남이 앵그리남으로 되기까지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남성이 '먼저 내려갈게요!'라고 외치는 순간, '나 중학생이니까 건들지 마라'라고 얼굴에 씌여있는 여학생이 여성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왔다. 둘은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섰고, 여성은 학생에게 서두르라고 나무랐다.

그리고 찾아온 침묵의 시간. 남자는 한마디 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참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딸에 대한 원망으로 아이를 째려보았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기분이나 엘리베이터 안의 긴장감은 뭐나 줘붜리라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모두 한꺼번에 내렸다. 엘리베이터에게는 배설의 순간이다. 칼가르마남과 나는 오른편으로, 아주머니와 딸은 왼편으로 갔다. 내리는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었던 화가 난 순간, 원망의 순간, 미안한 순간들은 모두 해소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꼈던 감정의 요동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을 것이다. 아, 내일 아침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때 또 생각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