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지겨운 생업, 어서 그만두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늘 그런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글쎄요… 노는 것도 영 지겹더라고요. “다시금 할 일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음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직장이라는 울타리만 벗어나면 매일 축제처럼 지낼 줄 알았는데, 어째 삶이 심드렁해지는 걸까요? 일 걱정, 돈 걱정 다 사라졌는데, 왜 사는 게 영 시원찮은 걸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으로 묘한 존재입니다. 늘 반대 상황을 동경하곤 하니까요.
미혼일 때는 결혼을 꿈꾸고, 막상 결혼하고 나면 혼자였던 때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 나이를 먹고 나서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죠. 그러니 현직에 있을 때 그토록 바라던 편안한 은퇴를 하고 나서는, 왠지 모르게 예전의 성취가 그리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은퇴 생활의 공허함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우리 은퇴 생활을 이리도 지루하게 만드는 걸까요? 지겹지 않은 은퇴 생활을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행복하게 살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녕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가슴 뛰는 삶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걸까요?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의 노인학 권위자인 헤롤드 코닉 박사는 『아름다운 은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여가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초, 애리조나주에 ‘선 시티’라는 은퇴자 커뮤니티가 처음 문을 열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선 시티는 오로지 은퇴자들의 여가와 삶을 위해 조성된 곳이었고, 따뜻한 햇볕 아래 골프를 치고 포도주를 즐기는 것이 성공적인 노년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해요. 이후 비슷한 은퇴자 커뮤니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1980년대 이후 이 공동체들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즐겁기만 하고 의미 없는 인생을 보내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은 본래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은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노년에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과 존중의 원천’이 되는 ‘일’이 사라지면 깊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일로부터 해방된 삶의 자유, 즐거움, 휴식 같은 ‘여가’가 노년의 일상생활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은퇴는 결코 여가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여가 생활만으로 은퇴 후의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자신에게 부여된 일정한 역할 없이 막연하게 보내는 긴 자유 시간은 오히려 노년의 삶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저는 직접 경험했습니다.
퇴직 직후 잠깐의 여유로운 기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금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만약 할 일을 찾지 못하면 ‘인생이란 결국 이런 것인가, 이게 다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금세 좌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은퇴로 끝나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직장에서는 은퇴했지만, 남은 인생이 대략 30년은 된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할 일 없이 보내야 하는 그 긴 노년을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인생 2막!’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가 잘할 수 있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나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미래를 내다볼 때, 흔들리지 않는 은퇴 후의 비전이 절실하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은퇴는 삶의 궤적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됩니다. 인생의 한 단계를 마치고 새로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깐의 여유를 만끽한 후에는 새로운 삶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비전을 가슴에 품고, 그 비전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재능을 찾아, 그것을 빛나는 비전으로 연결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재능에 자유를 부여해 보세요. 분명 더 멋
지고 의미 있는 인생 2막이 펼쳐질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자, 당신의 ‘인생 2막’을 위한 플레이 버튼을 누를 준비 되셨나요?
저는 나이를 먹으면, 특히 예순을 넘어서면 인생이 훤히 내다보일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미래도 선명하게 그려질 줄 알았지요. 그런데 막상 예순을 넘어서니, 오히려 앞날이 더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걱정하느냐”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천만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은 저녁녘 그림자처럼, 인생의 노년이 무척이나 길어졌다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삶의 소명을 다한 후 보람되게 생을 마쳐야 할 텐데,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걱정이 앞서더군요. 어딘가에서 읽었던 작자 미상의 <어부의 기도>라는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죽는 그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당신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내던져짐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이 시를 되새길 때마다 ‘쓸모없는 물고기’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정규직에서 은퇴한 나이가 64세였습니다. 그 후 2~3년 동안은 현직의 향수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4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으면 그만 물러나 편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오랫동안 몸에 밴 관성 때문인지 그게 잘 안되더군요. 현직 때와 마찬가지로 지위를 탐했고, 여전히 그럴듯한 자리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로 내려가 땅의 결실을 맛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텃밭에 채소를 기르고 예쁜 꽃을 가꾸면서 사는 것이 노년에 참 어울릴 만한 일로 여겨졌거든요. 대지의 수분과 태양의 열기를 듬뿍 받아 달콤하게 익어가는 과일 향기를 맡아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았고요. 자연과 함께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늙어간다고 해서 불행할 리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나무 그늘이나 시냇물로 몸을 식힐 수 있는 곳이 시골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현실에 얽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은퇴한 지 5년쯤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가 몰두하면서도 여유롭게 지낼 만한 ‘일’이 조금씩 자리 잡혀가고 있습니다. 바로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재미가 쏠쏠합니다.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은퇴와 노년 생활’, 그리고 ‘변화 관리’입니다. 글쓰기는 나의 존엄을 확인하는 소중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내가 쓴 글이 곧 내 삶의 지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쓰고, 읽고, 고치면서 자연스럽게 노년의 바른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지요. 남의 책을 읽어서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내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쓰는 것은 정말 다르더군요. 내 손으로 직접 정리하면, 그 내용이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느낍니다. 뇌에 지도를 새기는 느낌이랄까요?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 책도 내고 있고요. 지금 나의 인생 비전은 ‘100만 명에게 영감 주는 좋은 작가 되기’입니다.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설령 실현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글 재능을 보인 적도 없고, 심지어 글을 써본 경험도 거의 없던 나였습니다. 그런데 은퇴 후 삶의 방향을 찾고, 진정으로 ‘일할 자유’를 갈구하다 보니, 독서와 글쓰기가 이렇게 내 노년의 삶에 깊숙이 들어앉게 된 것입니다.
‘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일할 자유’를 얻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은퇴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지면을 빌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 여러분에게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의 <켈트족 기도문>으로 말입니다.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당신의 ‘할 일’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일을 할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가요?
얼마 전까지 우리네 인생은 기차 여행 같았죠. 어릴 땐 치열하게 공부해서 학위 따고, 중장년엔 한 직장에서 뼈를 묻고, 노년엔 유유자적 여생을 즐기는, 딱 ‘교육 → 직업 → 여가’의 외길 인생! 다들 그렇게 살아오셨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라, 이게 아닌데?’ 싶더라고요. 그 ‘직렬형’ 인생 모델이 슬슬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평생 교육 ↔ 평생 직업 ↔ 평생 여가’가 한데 엮인 ‘병렬형’ 세상이 왔지 뭡니까? 마치 인생이 외길로 내달리는 기차에서 여러 갈래 길을 넘나드는 자전거로 바뀐 느낌이랄까요?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하니 영 적응이 안 된다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됐냐고요? 주범은 두 녀석! 이런 대격변의 주범은 다름 아닌 ‘기술 혁명’과 ‘장수 혁명’입니다.
1. 기술 혁명: 눈만 뜨면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데, 안 배우고 버티다간 순식간에 ‘라떼 아재’ 신세 면하기 어렵죠. 옛날 지식만으론 이제 명함도 못 내밉니다. 그러니 평생 배우는 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 필수템이 됐죠. 안 그러면 회사에서 “저분은 왜 자꾸 라떼만 찾지?” 하는 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2. 장수 혁명: 100세 시대가 코앞인데, 60세에 은퇴해서 40년을 손가락 빨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냥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남은 인생을 마냥 놀고먹는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정신건강에도 해롭습니다. 그러니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죠.
그렇다고 일만 하다 죽을 순 없죠! 요즘 ‘워라벨’이 괜히 유행하는 게 아닙니다. 일과 삶의 균형, 즉 ‘Work-life Balance’를 맞춰야 삶의 질이 높아지거든요.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이 들수록 일은 줄이고 여가를 늘리는 게 순리겠죠? “그래도 되는 게 어디야?” 싶으시겠지만, 몸이 그렇다네요.
20세기형 몸뚱이를 21세기형으로 개조해야만 이 험난한 기술 혁명과 장수 혁명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평생 배우고, 평생 일하고, 평생 즐긴다니… 어찌 보면 꽤 괜찮지 않나요? 인생에 배울 것도, 할 일도, 즐길 거리도 없다면 생각만 해도 지루합니다. 숨이 턱 막힌다고요! 그러니 ‘평생 공부, 평생 일’이라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즐길 기회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죠.
세상이 디지털처럼 빠르게 변하는데, 과거의 경험과 지식만 고집하다간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 새로운 걸 배우고 시도하지 않으면… ‘라떼’ 외치다 ‘꼰대’ 소리 듣는 ‘라꼰 아재’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혹시 이미 ‘라꼰 아재’ 대열에 합류하셨나요?
살다 보면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보지 않나요? “아,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영 재미없고, 그냥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 기분….” 다들 이런 ‘삐걱거림’ 느껴봤을 겁니다. 재미도 없고 사명감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일만 한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어림도 없습니다!
세상이 어디 반듯하게 쫙 펴진 고속도로 같던가요? 구불구불, 이리저리 휘어지는 산길 같죠. 그래도 그 구불거리는 길 속에서 ‘나만의 방향’을 찾아야 하는 법! 그게 뭘까요? 바로 내가 하면 기가 막히게 잘하고, 안 하면 못 배길 것 같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그거! 여러분도 같이 한번 생각해 봐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 마시고, 마음 활짝 열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하는 것 말고 뭔가 다른 삶이 있을까? 변화를 두려워 마세요! 옛날 책 『채근담』에 나오는 ‘둥근 박 이야기’가 딱 우리 얘깁니다.
어떤 작은 오두막집 지붕에 박이 하나 열렸대요. 이 박은 자기가 나중에 커서 둥근 달처럼 빛날 거라 기대했죠. 가을이 되어 보름달만큼 커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빛이 안 나는 거예요. 실망한 박이 달님한테 물었죠.
“달님, 제 몸에서는 왜 빛이 안 나요?”
보름달이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해줬어요.
“전에 어떤 아이가 TV 보고는 탤런트 되고 싶다 하고, 동화책 읽고는 작가 되고 싶다 했단다.”
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죠.
“그 아이는 꿈을 이뤘어요?”
달님이 답했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는데, 자기는 노래 부를 때 제일 행복하다는 걸 알고 가수가 되었단다.”
“그럼, 작가나 탤런트는 못 된 거네요…”
박무룩해 하자 달님이 다정하게 말해줬어요.
“사람은 모두 타고난 재능이 달라. 그 아이는 자기 재능을 노래에서 찾은 거야.”
달님 말 듣고 한참 생각한 박은 한 달 뒤 다시 찾아온 달님에게 말했어요.
“달님,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단단하고 좋은 바가지가 될 거예요!”
박의 이야기에 달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답니다.
“오호라! 참 좋은 생각을 했구나! 네가 생각한 그 일은 오로지 너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란다!”
와우~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박은 달처럼 빛나고 싶었지만, 결국 자기가 제일 잘하는 ‘바가지’가 되는 걸 선택했잖아요. 이게 딱 우리 이야기 아니겠어요?
가끔은 머리로만 계산하는 합리성 다 집어치우고, 그냥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밤하늘 별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좀 보세요! 하찮은 미물이 감히 별을 동경한다고 비웃을 게 아닙니다. 그게 얼마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인데요!
불나방이 별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낭만적이고 뜨거운 열정을 쫓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내 모습 그대로 살고, 내 영혼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나만의 색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성공한 삶 아닐까요?
새로운 비전과 계획들은 우리를 또 다른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마치 옛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명대사처럼 말이죠. 주인공 여자가 온갖 시련을 겪고 나서 마지막에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Tomorrow is another day! 내일은 또 다른 날이야!”
맞습니다! 오늘 힘들었어도 괜찮아요! 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뜬다고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 마음, 그게 바로 희망인 거죠. 여러분도 너무 풀 죽어 있지 말고, 불나방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자기만의 별을 향해 한번 날아보자고요! 제가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