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하루가 길다’고 하지만, 막상 십여 년의 세월은 한숨 한 번으로 훅 지나갔더군요. 시간이란 녀석이 어떤 날은 더디게 기어가다가도, 지나고 나면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 듯 아득하죠. 특히 은퇴 후의 시간은 또 왜 이렇게 더디 가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보니 또 훌쩍 사라져 버리는 걸까요? 이 점이 참 희한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매 순간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방법과, 아예 시간의 흐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로 가는 방법 말이죠. 그럼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다뤄야 은퇴 후의 삶이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요?
물론 저도 한때는 시간의 매 순간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건 정말 아까워!’라고 말이죠. 잠깐이라도 허비하지 말고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버킷리스트라도 쫙 작성해 놓고 하나하나 빨리 실행해야겠다, 그래야 죽을 때 후회 안 할 거라고 다짐했었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정작 죽음을 눈앞에 둔 마당에 그런 아쉬움이나 후회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조급한 마음만으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걸 저는 이제야 알 것 같네요.
흔히들 ‘오늘을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곤 하죠.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니 오늘 이 시간을 소중하게 살자고요. 이 순간이 가장 확실하고 소중하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현재에 집중해서 최대한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고요. 불확실한 미래 걱정보다는 지금 내 행복을 누리는 데 집중하자고요.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니, 백세시대에 100살 넘은 어르신에게도 내일은 있는 법인데, 어떻게 오늘만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겠어요?
은퇴한 노년에 대체 뭐가 그리 급하고, 또 할 일은 얼마나 많다고 치열하게만 살아야 할까요?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다!’라고 생각하면 과연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겠어요? 죽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 아픈데, 아침마다 그 불길한 상념을 강박적으로 떠올린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은 저 멀리 도망갈 것 같아요.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저는 아마 잠도 오지 않을 겁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처럼, 삶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 또 있을까요?
시간이 소중한 건 두말할 나위 없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시간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젊은 시절, 피 말리는 경쟁의 한가운데 있다면 모를까, 이제 여유로운 노년에 시테크에 목숨 걸 일은 아닌 듯싶어요. 돈 관리하듯 시간을 빡빡하게 관리해서 과연 얻을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은퇴 후에는 마치 계곡의 물이 흐르듯이, 그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 살아가는 삶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말이죠, 뭘 하든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면서요.
‘군자(君子)도 초조해진다는 만년(晩年)’이라고 하죠. 조급한 마음으로 영혼에 굳이 주름을 지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인생에서 비교적 한가하게 쉬어가는 ‘벤치 타임’인데… 굳이 하루하루를 마치 ‘삶의 완성’이라도 되는 양 치열하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인생을 둘러보면, 정말 이런저런 반복들의 연속이더군요. 술을 좋아하는 저는 오늘 한 잔에서 내일 한 잔으로, 또 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이번 주 한 권에서 다음 주 한 권으로… 이렇게 반복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죠. 물론, 가끔은 이 일상을 확 깨부수고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만, 솔직히 계속해서 새로움만을 좇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반복을 다 내다 버리고 오직 창의성만을 떠받든다면, 뻔한 건 좀 줄어들지 몰라도, 아, 인생 정말 피곤할 겁니다.
나이가 좀 드니, 저는 특별한 일보다 그저 ‘별일 없이’ 사는 데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에 여전히 눈길이 가긴 합니다만, 이젠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들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삶의 거창한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이미 제 곁에 있는 소중하고 좋은 것들과 그냥 함께하고 싶어져요. 정다운 친구들의 목소리, 늘 즐겨 듣는 음악이나 영화, 그리고 익숙한 일상 속의 잔잔한 일들… 이런 것들이 주는 편안함과 마음에 위안은 정말 값지다고 생각해요. 늘 하던 일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 때로는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되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네, 이렇듯 반복적이고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바로 우리 삶의 전부죠. 일상의 일이 반복된다고 해서 꼭 지루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저는 깨달았습니다. 젊었을 적엔 저도 뭔가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대단한 일을 해내고 싶었고, 반복적이고 단순한 삶은 좀 혐오스럽기도 했었죠. 여러분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요? 그래서 ‘삶의 하찮은 조건들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야!’라는 기개를 부리기도 했습니다만, 신기하게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늘 그날이 그날 같은 반복된 삶에서 지겨움보다는 오히려 깊은 안락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우리 삶에 주어진 일상이라는 ‘기본 설정값’이 없다면, 오히려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아서 더는 바꾸고 싶지 않은 공식들을 하나둘씩 찾아내게 됩니다. 체질에 맞는 음식, 더없이 편안한 나만의 공간, 내 몸에 딱 맞는 운동 같은 것들 말이죠. 복잡한 삶의 방정식을 풀기보다, 이렇게 한결 간단한 규칙들 속에서 삶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에게 있어 우리들의 일상은 일종의 ‘통주저음(通奏低音)’과 같습니다. 계속해서 잔잔하게 흐르는 베이스 선율을 바탕으로, 가끔은 가슴이 떨릴 만큼 아름다운 아리아가 연주되는 것처럼 말이죠.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마치 판에 박힌 듯 되풀이되는 것 같지만, 정말 똑같지는 않은 새로움의 연속이에요. 나선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처럼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지만, 한 번도 같은 자리를 두 번 지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우리들의 삶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에서 잔잔히 흘러갑니다. 영웅적이거나 기상천외한 일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죠. 오히려 나른하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 이 무심한 한가로움이야말로 인생 후반기의 진정한 특권이 아닐까 싶어요. 느려지지 않도록,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생이 다하는 날까지 끄떡없는 것처럼 계속 굳건히 버텨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몰입의 땀’으로 가득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그것들이 분명 우리를 살게 할 것으로 생각해요. 늘 우리 내면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며 일상을 살아가 보시죠. 그렇게 하다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비로소 다시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늘 대하던 것인데도 볼 때마다 새롭고, 다시 만날 때마다 반갑고, 깊이 생각할 때마다 사랑스러운… 아, 정말 인생은 그저 멋진 선물이네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봅시다. 모든 장소에서, 모든 시간에, 오래도록 열심히 살아가요. 결국 소소한 일상이 바로 우리를 살리는 힘이니까요.
저는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예순을 넘어서면 삶이 훤히 내다보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막상 예순을 넘어서니 앞날이 오히려 더 막막하게 느껴지더군요.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걱정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요즘은 저녁녘 그림자처럼 인생의 노년이 참 길어졌잖아요? 죽는 그날까지 소명을 다하고 보람되게 생을 마쳐야 할 텐데… 문득 이런 걱정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런 마음을 담은 작자 미상의 <어부의 기도>라는 시가 있더군요.
주님, 저로 하여금 죽는 그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당신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데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내던져짐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풀타임의 근무를 마치고 은퇴했던 나이는 예순네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2~3년 동안은 이상하게도 현직의 향수에서 영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십 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했으니 이젠 좀 물러나 쉬어야겠다 싶을 법도 한데, 글쎄요… 오랫동안 몸에 밴 관성 때문인지 그게 참 쉽지 않더군요. 현직에 있을 때처럼 여전히 지위를 탐하고, 뭔가 그럴듯한 자리를 찾고 있더라고요, 제가 말이죠. 여러분도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솔직히 시골로 내려가서 땅의 결실을 맛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직접 채소를 기르고 예쁜 꽃을 가꾸면서 사는 게 노년에 참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대지의 수분과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듬뿍 받아 달콤하게 익어가는 과일 향기를 맡는 것도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 자연과 함께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 사람들이 어찌 늙어간다고 불행할 수 있겠어요? 여름에 뜨거운 몸을 시원한 나무 그늘이나 맑은 시냇물에 담글 수 있는 곳이 시골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현실에 얽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은퇴한 지 5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제가 몰두하면서 여유롭게 지낼 만한 새로운 ‘일’이 조금씩 자리가 잡혔습니다. 바로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고, 이젠 꽤 재미도 붙었어요. 요즘 저의 주된 주제는 ‘은퇴와 노년 생활, 그리고 변화 관리’입니다.
글쓰기는 저의 존엄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제가 쓴 글이 제 삶의 소중한 지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쓰고, 읽고, 고치면서 자연스럽게 노년의 바른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죠. 물론 남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지식이 들어오지만, 저만의 생각으로 정리하면 가슴에 훨씬 더 깊이 새겨지는 걸 느낍니다. 이 느낌,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요즘은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누리소통망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펴내기도 합니다. 지금 저의 인생 비전은 ‘100만 명에게 영감 주는 좋은 작가 되기’입니다. 그 꿈이 언제쯤 실현될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설령 실현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젊었을 때 글재주를 보인 적도, 제대로 글을 써본 경험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은퇴 후 삶의 방향을 찾고, 저에게 ‘일할 자유’를 주다 보니 이것이 제 노년의 삶에 이렇게 멋지게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몰두할 수 있는 ‘일할 자유’를 얻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은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늘 은퇴자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음의 <켈트족 기도문>으로요. 여러분도 함께 이 기도의 마음을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가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결국 ‘행복’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죠. 그런데 여러분, 행복이라는 게 그저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찾아오는 것일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삶의 만족감이나 희열을 느끼고, ‘아, 살맛 난다!’ 하며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일은 없지 않겠어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분명 무언가를 해야만 합니다. 마치 무지개다리 저편에 있다는 보물 상자를 찾아 나서듯,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해야만 비로소 행복을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제 경우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어떤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려고 애쓰지는 않습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쓰고 있어요. 그게 뭐냐고요? 바로 ‘놀고 쉬고 일하고’를 즐기는 겁니다. 제주의 올레길을 ‘놀멍 쉬멍 걸어멍’ 여유롭게 걷듯이, 은퇴 후의 인생길을 ‘놀Go 쉬Go 일하Go’ 여유롭게 보낸다면 이것이 곧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저의 인생 2막 ‘행복 찾기 3박자’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행복 찾기 1: 재미있게 ‘놀GO’!
우리는 재밌게 놀 때 정말 행복하다고 저는 믿어요. 신나는 여행도 가고, 골프도 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술 한잔 기울이며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이렇게 살아야 인생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노는 것’에 대해 좀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못마땅하면 “놀고 있네!” 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하니 말이죠.
하지만 그저 참고 견디는 방식만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놀 줄 몰라서’ 불행한지도 모릅니다. 재미와 행복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거든요. 재미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이라면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은퇴 후 노년에는 마치 ‘놀 듯이’ 사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는 걸 여러분도 느끼지 않나요?
행복 찾기 2: 한가롭게 ‘쉬GO’!
‘한가로움’이야말로 행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행복해지려면 한가롭게 쉬는 시간을 사랑하고, 또 그것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알아야 해요. 맑게 갠 아침에 창가에 놓인 화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 몰입하여 책을 읽다가 잠시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시간… 이런 시간은 한없이 소중합니다.
저에게 이런 시간은 말 그대로 ‘내 안을 살찌우는’ 시간이죠. 한가하게 쉬는 것은 결코 나태함이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는 살기에 바빠서 한가로울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 은퇴 후에는 이 한가로움을 통해 진정한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행복 찾기 3: 보람 있게 ‘일하GO’!
은퇴라고 해서 마냥 물러나 쉬면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대체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우리는 주로 경제적 수입을 얻기 위해 일을 하지만, 그것만이 ‘일’의 전부는 아니죠. 은퇴 후의 일은 그저 돈벌이를 넘어, 나 자신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인생을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아마도, 자기에게 타고난 재능이나 복을 정성껏 키우고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보람 있게 일을 할 때, 행복은 마치 그림자처럼 저절로 따라온다는 걸 여러분도 느끼실 겁니다.
결국, 제가 경험한 행복은 그저 운 좋게 찾아오거나, 엄청난 성과를 이룬 뒤에 주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놀고 쉬고 일하는’ 이 세 가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기쁨이었죠. 젊은 시절의 치열함과 조급함을 지나, 은퇴 후의 삶에서 저는 비로소 진정한 여유를 찾았습니다. 신나게 놀이를 즐기며 삶의 활력을 얻고,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며 내면을 살찌우고, 마지막으로 제가 진정으로 몰두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해나가는 것.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우리 삶은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행복의 선율을 연주할 수 있음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놀고 쉬고 일하는’ 세 박자를 통해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찾고, 행복을 마음껏 연주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 예전에는 ‘나이 듦’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 협회에서는 ‘호기심도 이상도 없이 매사에 무관심으로 영혼이 주름진 사람’을 노인이라고 정의했다고 해요. 정말 딱 맞는 말 같지 않나요? 스스로가 “아, 난 이제 늙었어”라고 생각하고, “배울 만큼 배웠지, 뭘 또 배워”라거나, “이 나이에 그까짓 일을 해서 뭐 해?”하고 말한다면, 그냥 바로 그 순간 노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만약 “음, 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니지. 아직도 해보고 싶은 재미난 일이 왜 이렇게 많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설령 나이가 좀 많더라도 그는 진정한 노인이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옛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젊을 때는 철학 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되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철학 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되오.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는 데는 너무 이른 때도, 너무 늦은 때도 없는 것이오.”
철학을 하는 데 나이 듦이 아무 상관 없다는 그의 말처럼, 저는 요즘 ‘여유로운 노년’이야말로 오히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즐기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따스한 햇볕이 화사하게 쏟아지는 날에는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훌쩍 떠나고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는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정원의 꽃들을 가꾸고 손주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간도 더없이 행복하죠. 가끔은 가족과 함께 오페라나 연극을 감상하며 작은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어떠세요, 여러분도 이런 삶이 마음에 드시나요?
요즘은 정말 신기합니다. 날씨가 맑으면 맑아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심지어 개구리가 요란하게 울면 개구리가 울어서 좋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다 좋습니다. 노년에는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푸른 하늘이 훨씬 더 선명하게, 더 깊이 있게 보인다는 걸 아세요? 정신없이 분주하게 사는 것만이 꼭 해답은 아니더라고요. 머리는 비울수록 똑똑해지고, 생각은 버릴수록 더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고들 하죠. 그렇게 비우고 버리는 삶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하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늘 과거의 추억 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었어도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남은 세월이나 팔뚝의 힘만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지 않겠어요? 온화한 얼굴에 살아온 햇수만큼 깊어진 지혜가 또렷이 배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노년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복한 삶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황혼’이라는 시간이 결코 걸림돌이 될 수 없어요. 젊음은 ‘젊음’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고, 늙음은 ‘늙음’ 나름의 의미가 있는 법이죠. 긴 다리를 가진 학이 오리 다리가 짧다며 늘리겠다고 애쓰고, 짧은 다리를 가진 오리가 학의 다리가 길다며 자르겠다고 덤벼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다른 것은 그저 다를 뿐인데, 굳이 같아지려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나이를 잊고 행복하게 GO! 제가 요즘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는 글귀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인생 2막을 살면서 직접 지은 ‘생각 조각’입니다.
노년은 노년일 뿐,
괄시받을 일도 대접받을 일도 아니다.
도움받을 일 있으면 도움받고,
도움 줄 일 있으면 도움 주면 된다.
어눌한 만큼 현명하다.
그냥 그대로 노년으로 살면 된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저마다 자기의 삶을 살 뿐,
모두가 제 몫의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다.
지금 행복해지고 싶으면 나이를 잊어라!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이 글귀는 제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이자,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은 진심입니다. 그러니, 지금 행복하고 싶다면 나이라는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오직 마음이 이끄는 대로 용감하게 나아가 보세요!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두 부류의 어른이 등장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숭배하라고 요구하는 ‘허풍선이’, 그리고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주정뱅이’죠. 이 둘은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 허풍선이:
- 특징: 은퇴 후의 상실감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고, 마치 젊은 날의 영광에 갇혀 사는 듯 으스댑니다.
- 문제점: 타인의 칭찬에만 귀 기울이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외톨이가 될 수 있습니다.
- 예: “나는 아직도 현직 못지않아!”, “이 나이에도 나는 이 정도야!”
∙ 징징이:
- 특징: 은퇴 후의 불안감과 어려움을 끊임없이 하소연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려 합니다.
- 문제점: 자신의 어려움만을 최고로 여기며, 타인의 고통을 과소평가하여 주변을 지치게 만듭니다.
- 예: “아이고, 내 팔자야…”, “다른 사람 병은 병도 아니야.”
〔현실 인정: 품격 있는 노년의 시작〕
허풍선이와 징징이… 이 두 모습은 결국 외로움으로 이어집니다. 중요한 건 바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는 다음과 같은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 변함없는 가치: 지폐가 구겨졌다고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듯이, 은퇴했다고 해서 우리 존재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우리의 본질적인 ‘의미’는 그대로입니다.
∙ 잘 나이 드는 기술: 노화를 단순히 쇠퇴가 아닌 ‘성숙’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억지로 허세를 부리거나 과하게 징징거리는 것은 고독과 소외를 부르는 질병과 같습니다.
∙ 덤덤한 삶: 가장 좋은 삶의 자세는 바로 ‘덤덤함’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솔직하게 타인과 관계 맺으며, 주어진 노년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품격 있는 은퇴’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