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열리는 은퇴 후 30년

by 최재식

인디언 서머, 내 인생의 새로운 상승 국면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해요. 늦가을, 첫서리 후에 찾아오는 건조하고 온화한 날씨를 뜻하는데, 미국 인디언들이 겨울 식량을 비축하느라 애용했던 날씨라고 해요. 유럽에서는 ‘물총새의 날’이나 ‘노부인의 여름’이라고도 부른다니, 왠지 모르게 ‘뜻밖의 휴일’이나 ‘할머니 용돈’ 같은 정겹고 감사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인디언들이 신의 선물처럼 여겼던 그 따뜻한 날씨처럼, 우리 인생에도 늦은 시기에 새로운 상승 국면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미국의 심리학자 스텐리 홀은 이 시기를 ‘인디언 서머’라 부르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과 그 깨달음대로 사는 행동력이 어우러지는 때라고 했죠. 또 인구학자 피터 래슬릿은 이 시기를 ‘제3기 인생’이라 칭하며, 높은 생산성과 꾸준한 학습이 가능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는 때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자기가 하는 일이나 활동 영역에 따라 현역과 은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생애 주기라는 게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낸 것일 뿐, 굳이 그렇게 구분해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정년과 은퇴기를 경험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스텐리 홀이나 피터 래슬릿 모두 이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결코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때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뒤로 물러나 쉬는 ‘은퇴 시체 놀이’를 하는 때가 아니라는 거죠!


사실 ‘제3기 인생’이라고 불리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생애 단계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나고, 정년과 연금 같은 사회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부터죠. 예전에는 수명이 짧아서 농사를 짓거나 일하다가 바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제3기 인생’으로 따로 구분할 기간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된 직업에서 물러난 후에도 무려 30~40년이나 되는 긴 은퇴기가 남아 있어요.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개인적으로나 국가 사회적으로나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년과 노년 사이의 중간 단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상반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 듯해요. 한편으로는 일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지내는 시기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생산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시기로 받아들여지지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공통된 인식이 없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장수 시대에 노년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과연 어느 쪽이 더 현명할까요? 당신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어요?


이 시대의 은퇴자 중에는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개발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이다 보니, 일이 몸에 배어 쉽게 손을 떼기 어렵다는 점도 있겠지만, 사실 더 절박한 이유가 있어요.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 정작 자신의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노후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있어도 놀기보다는 일하려는 분들도 많습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일할 의지와 능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사회 구조와 인습이 강제로 일에서 은퇴시키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주도하는 고령사회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 단순히 은퇴시키고 연금만 주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저는 확신합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나이에 의한 고용 제한은 폐지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봅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편안한 은퇴기를 보낼 수도 있어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하는 거죠. ‘제3기 인생’을 생산적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은퇴기로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생각이나 처지가 다를 수 있고, 어떤 선택이든 그 나름대로 인생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보통의 경우, 은퇴 후 아무 속박 없이 마음껏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몇 년에 불과하답니다. 온전한 휴식과 진정한 자유가 너무 길어지면, 거짓말처럼 또 다른 허전함이 찾아오지요. 그러니 은퇴 후 얼마간의 휴식 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은 마치 생명 없는 인형과 같다고 생각해요.


‘하루는 저녁이, 1년은 겨울이,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마지막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일로부터 해방되는 삶의 자유, 즐거움, 휴식 등을 누리는 여가가 노년의 일상생활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일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노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이지요.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과 존중의 원천이 되는 일이 없어지면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제3기 인생’, 저는 결코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가능성의 나무, 여유로운 노년에 더 무성해


“아, 이제 너무 늦었어!” 가끔 이런 한숨 나오죠? 정말 그럴까요? 가능성이란 게 남은 시간에 비례하는 걸까요? 놓친 기회, 이루지 못한 꿈… 나이 들수록 아쉽게 다가와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제 길이 좁아지고, 남은 카드는 몇 장 없는 것 같아…”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죠? 마치 놓친 물고기가 한없이 커 보이듯,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애틋하듯, ‘했더라면’이라는 상상 속에서는 과정에서 겪은 모든 고난은 생략되고 달콤한 결과만 떠오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지난 일을 그리워한다고 현실이 바뀔까요? 달라질 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놓쳤던 기회를 찾아 나서면 어떨까요? ‘남은 시간이 없어서 불가능해!’라고요?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능성은 시간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용기와 절박함에 비례합니다. “너무 늦었어!”라는 건 그저 비겁한 핑계일 뿐!


사실 60대든 70대든, 가능성이 없어질 만큼 시간이 없는 나이가 아닙니다. 몇십 년이 걸리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몇 달, 몇 년이면 충분하죠. 때로는 늦은 지금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너무 서둘러서 실패한 경험도 있잖아요? “역사는 때를 잘 타지 못한 자들에게 가혹하다”는 말도 있듯이요.


“10년만 더 젊었어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렇게 되뇌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들은 10년 전으로 돌아간대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겁니다. 지혜는 늘 잘못한 후에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그때 못한 걸 한탄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패배주의자들이 늘 써먹는 말이 있죠. “너무 늦었어. 이제 와서 그걸 어떻게 해?”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그냥 하면 됩니다! 담대함이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지지 않는 것’이라고 믿어요.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죠. 나이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은 어느 때든 생의 의미가 드러나길 바랄 권리가 있으니까요.


젊었을 때는 먹고 사느라 다른 곳에 눈 돌릴 틈도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노년이 오히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가능성의 전성기’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히려 젊었을 때가 가능성의 ‘보릿고개’였을지도 모릅니다. 보리가 익어 풍요로워진 노년기에 오히려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가능성의 나무는 ‘춘궁기’보다는 ‘추수기’에 더 무성해지는 법이니까요!


가능성이란 ‘시간의 양’보다 ‘결정적인 시간’, 즉 ‘카이로스(Kairos)’에 좌우됩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젊을 때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노년에도 찾아옵니다. 생애 어느 시기든 때를 기다렸다가 과감히 낚아채는 것이 중요하죠.


“그 나이에 아직도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고?” ‘아직도’라는 부사는 왜 당황스러운 걸까요? 자신에게 모순되지 않는 것은 모두 가능합니다. 노년이라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노년이라서 못 할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세요. 아마 없을 겁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노년의 세월은 참을 수 없이 밋밋하게 흘러갈 겁니다. 한동안 소식 끊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잊힌 사람이 되어 부고가 뜰 수도 있겠죠. 우리가 원하는 인생의 끝맺음이 이런 건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말이에요. 나이가 들면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건 편견에 불과합니다. ‘영영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우리가 죽고 난 이후니까요!


당신의 ‘가능성의 나무’는 지금 얼마나 무성한가요?





봄날 언덕 위의 파랑새처럼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60세에 죽고 나서 100세에 치르는 장례식!”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일찍 은퇴해서 할 일 없이 여러 해를 죽은 듯이 지내다가 숨을 거둔다는 뜻입니다. 숨만 붙어 죽은 듯이 사는 삶, 영혼 없이 육체만으로 사는 삶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00세까지 의미 없이 산 사람과 80세까지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산 사람, 이 둘 중에 누가 정말 더 오래 산 사람일까요?


인생은 마치 나이테가 늘어나는 나무와 같다고 봅니다. 혹독한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나면 오히려 더 단단하게 여물잖아요. 그런데 왜 나이 들었다고 해서 말라비틀어진 콩깍지처럼 시들해져야 할까요? 저는 나이 들었지만, 봄날 언덕 위의 파랑새처럼 창공을 마음껏 날아보고 싶습니다. 인생은 자유를 갈구하고 성장을 추구하는 한, 여전히 청춘이라고 믿습니다. 은퇴했다고 해서 “아, 이젠 다 살았네” 하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요.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요.


아놀드 토인비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죽을 때까지 청년의 정신을 가져라!”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게 사는 것, 바로 청년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요? 새로운 자극에 기꺼이 마음을 열고, 낯선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젊은이입니다. 방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방황은 결코 청춘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어딘가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방황하기 마련이죠. 삶의 고민으로 방황하는 인생, 그 자체로 아름다운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살아있는 한, 여전히 ‘미생(未生)’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전하지 못할 것도 없고, 이루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희망은 무한대로 열려 있습니다. 값진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또 그것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가 되는 것보다,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그 꿈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죠. 이미 이룬 성취에만 갇혀서 자유로운 생각을 잊어버린 채 살아서는 안 된다고 저는 늘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돈도 명예도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매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는 동안은 정말 살아 있자고요! 세상살이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또 노년기의 삶이 어렵다고들 하지만요, 학창 시절 그 지긋지긋한 공부, 취직 준비와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아이들 키우느라 피곤함에 절어 살던 젊은 시절만 할까요? 저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여유롭고 좋다고 느낍니다.


우리 앞에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나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자고요! 인생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며 숨 쉬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숨 막힐 정도로 감명 깊은 순간을 보냈느냐’로 측정된다는 것을요. 우리의 두뇌가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게 두지 말아요. 일없이 가만히 있는 머리는 악마의 놀이터가 된다고 하죠. 그 악마의 이름은 바로 치매라고 합니다. 섬뜩하지 않나요?


은퇴 후 남은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생의 목적’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적에서부터 삶의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하는 정신이 솟아나거든요.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저 죽어 사는 것과 다름없을 겁니다. 의미 없이 힘겹고 지루하게 사는 거죠. 우리는 은퇴 후에도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아갑니다. 이 귀한 시간을 무엇하며,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가요?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 꼭 하고 싶었는데,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으신가요?

∙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찢기고 상처 입었던 꿈은 무엇이었나요?

∙ 차마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가슴 깊이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요?


이제 그 꿈을 다시 한번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요? 꿈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는 정말 ‘살아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장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햇병아리 노년’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유효 기간이 있는 선물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 인생도 계절처럼 흐릅니다. 꽃 피고 우거졌다 단풍 들고 앙상한 가지만 남듯, 언젠가 우리도 겨울을 맞겠죠.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인생이 유효 기간 있는 선물이라면, 그 선물, 제대로 뜯어봤나요? 아침에 눈 떴더니 밤새 흰 눈이 세상을 덮어버린 것처럼, 낯설고 당황스러운 노년이 불쑥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이 낯선 계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나이 들었다고 세월에 그냥 떠밀려 갈 순 없죠. 중력을 거슬러 오르든, 아니면 중력에 몸을 싣고 생각의 날개를 활짝 펴든가 해야죠. 죽을 때까지 죽은 게 아니니까요. 죽은 물고기는 배를 뒤집고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헤치고 나아갑니다. 인생, 덮어놓고 막살면 안 돼요. 눈물 한 방울, 분노 한 번도 아까운걸요? 매일 삶과 한판 씨름을 해야죠!


인생엔 커튼콜이 없습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마지막 장면 끝나면 그걸로 게임 끝! 다시 살아나 감사 인사하고 박수받을 기회, 없다는 거죠. 환생이나 부활? 믿는 분들 많지 않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우리 삶이 이렇게까지 절실할까요? 늘어난 수명 덕분에 죽음으로부터 멀어진 것 같다고요?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 결국 죽습니다. 죽는 데 순서도 없고요. 그러니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죠. 죽음은 삶의 요약이자 완성이라잖아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세요!


나이 듦 그 자체가 인생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지나간 것 걱정할 시간도 없어요. 오직 미래를 준비할 시간만 있을 뿐! 카드놀이에 ‘낙장불입’이란 말 아시죠? 한 번 돌려진 카드는 못 바꿔요. 지금 손에 쥔 패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인생 다시 산다면…’ 같은 후회는 접어두세요. 그럴 일 없어요,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사세요. 황혼의 인생이 의미 있는 일들로 가득하면 좋잖아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죠. 기독교 감리교파 창시자 존 웨슬리의 시처럼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에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살아있는데 자신이 살아있는 줄 모르는 좀비처럼 살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 아직도 살아있었네?’ 하면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머리도 가슴도 없이 살덩어리 욕구만으로 움직이는 깡통 인간처럼 의지력 없이 오래 사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습니다.


살아있지만 사라진 사람처럼 살 순 없잖아요? 인생을 그저 오래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요. 수명 연장에만 정신 팔려서 그 연장의 의미를 생각지 않는다면, 오래 사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생존을 위해 뭘 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당신의 인생 선물, 이제 제대로 뜯어볼 준비가 되셨나요?





인생의 전환, 황혼은 여명을 닮아야


매미가 왜 나뭇가지를 붙들고 통곡하듯 울어댈까요? 통곡은 무슨, 지하에서 7~17년 굼벵이로 버티다 고작 2~4주 날갯짓하는데, 그 정도는 ‘불꽃 쇼’ 아닌가요? 매미에겐 늙음 따윈 없죠. 오직 화려한 삶과 장렬한 죽음만 있을 뿐! 우리 인생도 우주의 시간 앞에선 매미 생애만큼 짧아요. 그러니 우리도 매미처럼 ‘후회 없이 불태우는’ 삶, 한 번 가봅시다! “아, 그때 그러지 말걸…” 하며 눈물 콧물 뺄 시간 없다는 겁니다. 잘 살아야죠.


생기와 활력을 잃는 순간, 그때가 바로 ‘파멸’입니다. 감각이 무뎌지고 욕망이 말라붙는 것? 이거 완전 영혼의 ‘좀비화’ 아닌가요? 영혼이 굳어지지 않게 계속 입김을 불어 넣어 줘야죠. 어떻게? 안병욱 철학자의 ‘하루에 한 번쯤은’이라는 글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높은 하늘을 쳐다보세요.

2.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남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해보세요.

3.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땀을 흘려보세요.

4.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책을 읽어보세요.

5.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나라와 겨레를 생각해 보세요.

6. 적어도 하루에 한 번쯤은 엄숙한 마음으로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천지신명 앞에 서 보세요.


이 6가지를 매일 실천하면, 노년의 삶이 잿더미가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잉걸불’이 될 거라고요!


매일 찾아오는 새벽을 외면하면, 인생은 그저 저녁 어스름과 함께 사라질 겁니다. 황혼? 여명을 닮아야죠! 부활이 다음 생에서만 이뤄진다고요? 아니요, 지금의 이 삶에서, 매일의 여명과 함께 이뤄지는 거 아닐까요? 나이 들어도 젊음으로 살아야죠! 황혼의 마음에서 ‘겨울’은 깨끗하게 지워버립시다!


은퇴가 그저 ‘여가 생활 시작!’이라고요? 천만의 말씀! 그 긴 시간을 노는 걸로만 채우면, 아마 지쳐 쓰러질 겁니다. 역할 없는 막연한 자유 시간은 오히려 노년의 삶을 망칠 수도 있어요. 퇴직하고 잠깐의 ‘꿀맛 휴가’가 지나면, 다시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못 찾으면? “인생 뭐 있냐… 이게 다인가?” 하며 바로 좌절 모드 ON!

인생은 은퇴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직장에서 은퇴해도 남은 인생이 대략 30년은 된다고요. 할 일 없이 그 긴 시간을 보내는 걸 상상하면 아찔하지 않나요?


은퇴는 삶의 아주 큰 전환점이에요. 한 단계 졸업하고 새로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이죠. 잠깐 쉬었으면,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힘껏 달려갈 차례입니다! 가슴에 새로운 비전을 품고 “내 안의 숨겨진 독보적인 재능”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재능에 자유를 부여해서, 당신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인생 2막’을 디자인해 보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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