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평생 미술 선생님이셨어요.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제가 물었죠. “아버지, 이젠 뭐 하실 거예요?” 아버지가 씩 웃으며 “다 계획이 있지!” 하시는데, 글쎄요. 그 계획이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 그리는 거였지 뭐예요! 진짜로 파리에 가셔서 한 점, 두 점 그림을 그리시더니, 어느새 몽마르트의 ‘진짜 화가’가 되셨지 뭡니까.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 엔딩에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죠. “나는 또 꿈이 있지!”
요즘 은퇴하신 분들, 이 영화 속 아버지처럼 젊을 때 꿈도 못 꾸던 일에 도전하는 분들 많더라고요. 직장 다니고 가족 챙기느라 바빠서 엄두도 못 냈던 것들, 이제야 비로소 시작하는 거죠. 자! 그럼,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무는 인생에 무슨 꿈 타령이냐고요? 천만에요! 나이 들었다고 꿈이 없으면 마치 날개 꺾인 새 신세랍니다. 꿈꾸는 데 나이 제한 없다는 거 아세요? 언제든, 어느 순간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인생에서 ‘너무 늦은 시기’ 따위는 없습니다! 인생의 가을에 새롭게 꾸는 꿈이야말로 우리 삶을 ‘명품’으로 만들어 줄 거예요.
은퇴 후 작가의 꿈을 꾸는 한 사람이 있어요, 바로 저예요. 어릴 때 백일장 근처에도 못 가봤고, 글쓰기 재주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였죠. 그런데도 제가 노년에 글쓰기를 꿈으로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글로서 저 자신을 ‘뇌섹남’으로 만들고, 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어서요. 사람은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잖아요? 저는 매일 삶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고 있어요. “100만 명에게 영감을 주는 좋은 작가”를 꿈꾸면서 말이죠…
“인생은 일장춘몽이니 꿈같은 소리 말고 그냥 살자!”는 사람들도 있죠. 김만중 선생의 『구운몽』처럼 한바탕 풍미해도 깨고 나면 그저 꿈이라고요? 글쎄요, 세상 모든 일이 부질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있겠어요? 꿈이 없는 삶은 실존의 상실이나 마찬가지! 허무주의는 우리 인생에 ‘1도’ 도움이 안 된답니다.
‘꿈의 크기가 곧 삶의 크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년에 꾸는 꿈은 왠지 모르게 ‘새우 꿈’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위축된 마음과 현실 제약 때문이겠죠. 하지만 저는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자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은퇴 후 건강과 활력, 그리고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바로 ‘꿈’이거든요. 은퇴 후에도 여전히 꿈이 있다면, 황혼도 그저 ‘신나는 여행’일 뿐이에요. 꽃 중년 여러분, 우리 모두 꿈 하나씩 장만해 보는 건 어때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 74세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는가 하면, 수많은 은퇴자가 모델, 가수,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어요. “저렇게 야단들일까?” 싶으세요? 얼마 전엔 71세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우주 관광 시험 비행에 성공하고, 억만장자들 우주여행이 줄을 잇잖아요? 그들이 왜 목숨 걸고 위험한 도전을 할까요? 바로 ‘꿈’ 때문 아니겠어요? 꿈이 그들을 새로운 길로 이끄는 겁니다!
이런 소식들, 정말 기분 좋은 반전이죠! 황혼에 좋은 것들로 꿈꿔 볼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솔직히 이제 ‘서른 살의 누군가가 무엇을 했다’는 얘기는 별로 안 궁금해요. 저는 ‘일흔 살의 누가 무엇을 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꼭 내가 해야만 하는, 가슴 뛰게 하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내 육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바쳐 ‘꿈’을 향해 달려보는 건 어때요?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는 당신!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생존을 넘어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때예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삶은 의외로 짧을 수 있답니다. 나와 이웃과 사회를 사랑하는 데 열중해 보세요. 황혼의 자존감은 돈보다는 사랑, 협력, 배려, 나눔 같은 가치로 채워진답니다.
‘꿈’이 더 이상 우리 안에 머물러있지 않다면, 우리는 심장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거예요. 반대로 ‘꿈’이 함께하는 한, 우리 영혼은 늙지 않고 오히려 더 성숙해질 수 있죠. 우리가 100세까지 가져가야 할 가장 중요한 게 건강과 돈일지 몰라도, ‘꿈’이 없다면 그것들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은퇴자 여러분! 우리 모두 꿈을 놓지 말아요!
젊은 시절, 한창 현역으로 일할 때는 사회가 정해놓은 통념들이 우리 인생을 아주 강하게 이끌어갔죠. ‘나답다는 게 뭘까?’ 같은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됐어요. 그냥 사회가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행동하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출세해야 멋있게 사는 거야!’
‘돈을 많이 벌어야 잘 사는 거지!’
‘뒤처지면 끝장이야!’
‘먹고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다들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믿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나이가 들어 은퇴라는 시간의 연안에 떠밀려오면서, 비로소 ‘내 마음대로 살아도 돼’ 하는 권리를 얻게 되죠. 그때부터 ‘어떤 삶이 정말 나다운 삶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요. 어릴 적 꿈꿨지만, 감히 다가가지 못했던 것들이 문득 생각나고, 현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야심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해요. 과거의 열정은 식었을지 몰라도,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었나 봐요.
그 어렴풋한 지난 시절의 꿈과 야망은, 사실 깨어날 때만을 기다리는 가능성 덩어리예요. 우리 안에는 아직 채워지지 못한 위대한 출발점들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요. 젊은 시절의 그 뜨거운 열망을 어떻게 ‘이미 지난 일이야!’, ‘너무 오래된 얘기잖아’ 하면서 그냥 묻어버릴 수 있겠어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 길로 가려 했지만 실패해서 좌절했던 것들, 이루지 못한 승자의 길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과거가 그저 벌레 끓는 낡은 서랍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신기한 물건이 가득한 보물 궤짝 같달까요? 책장 어딘가에 숨어있는 낡은 일기장이라도 찾아서 한번 뒤져보세요. 상상만 하다가 전설이 되어버린 많은 사연이 그 안에 있을 거예요. 버림받았던 존재에 대한 위안, 이루지 못한 소명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할지도 몰라요. 우리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나아가려면 가끔은 뒤돌아볼 줄도 알아야 해요. 사람들은 회고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가재처럼 뒷걸음질도 필요한 법이죠. 어렴풋이 떠오르는 지난 시절의 일들, 그 추억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답니다. 간혹 지난 시절에는 ‘에이, 별거 아니네’ 하고 시시하게 여겨 버렸던 것 중에서, 세월이 흘러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있어요. 세월이 가면 과거도 새롭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저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죠.
저도 가슴 한쪽에 희미하게 품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초승달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어요. 그러자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면서, 제 머리 위에는 보름달 하나가 둥실 떠오르더군요. 일찍이 상처받았던 그 꿈이 이제는 환한 보름달이 되어 노년의 저를 살게 하고 있답니다.
인생의 맛을 겨우 음미하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제가 노년이 되었네요. 세월과 함께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우리들,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래도 세월의 파괴력이 우리의 역동성을 완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미래를 향해 성장할 수 있잖아요? 활동적인 삶이든, 아니면 조용히 관조하는 삶이든, 무엇이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흥미로워 보이는 것들이 참 많아요. 영원한 동심, 이른바 ‘피터팬증후군’이라고 하죠? 그게 과연 나쁜 걸까요? 나이 들고도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험을 즐기며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늙지 않는 꿈의 나라로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떤 단계에서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반발할 수 있어요. 헤어날 수 없는 심연으로 완전히 가라앉기 전까지는 말이죠. 돌이킬 수 없다는 ‘불가역성’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짜릿한 게 또 있을까요? 여러분, 어떠한 호기심도 포기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 봐요! 그러다 실망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열광하는 순간도 분명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인생이 기발한 상상의 장소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없다면 참 지루할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는 가능한 것을 얻었을 때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해냈을 때 더 흥분하잖아요?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 걸까요? 물론 몽상에만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여러분은 뭔가 놀랍고 대단한 일을 해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는 나이에서 황폐한 장식을 벗겨내고 노년을 유머와 멋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고 재미있게 살아보는 건 어떠세요? 한계라는 건, 사실 우리가 밀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요즘 신세대 시니어들을 보면 열정은 여전히 번득이고, 영혼과 마음은 활활 불타오르는 것 같아요. 정신적 노화를 늦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욕망의 역동성 안에 머무는 것, 그것뿐이라고 저는 믿어요.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저는 ‘새로움’보다는 ‘연속성’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삶의 큰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의미 있는 좋은 것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지죠.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 여전히 바라도 되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안정감 속에서 별일 없이 사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삶은 활기를 잃게 될 수도 있어요. 연속성 안에서도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야 우리 마음속의 열정과 감성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답니다.
물론 침묵하고 명상하며 관조하는 것이 나이 듦에 어울린다고들 하지만, 저는 가끔 혈기 어린 탈선을 하며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선글라스로 눈가의 주름을 살짝 가리고, 가벼운 연애를 즐겨보는 건 어떠세요? ‘나이 먹고 무슨 주책이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게임은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뒷방으로 물러나거나 소독약 냄새나는 병원 신세를 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관습이나 고정 관념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짜릿한 게 또 있을까요?
시간의 순서를 무시하고, 운명에 코웃음 치며, 젊음의 희열에 푹 빠져보는 것보다 더 유쾌한 일이 있을까요? 여러분, ‘예정된 삶’보다는 ‘약속의 삶’을 살아가요. 완전히 늙어버리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 젊음에 머물러 봅시다!
여러분, 아세요? 지금까지 지구에 살다 간 인류가 대략 1,000억 명이래요. 마치 덧없는 촛불처럼 타올랐다 꺼진 삶들이죠. 그런데 인류 역사 속엔 이 수많은 촛불 중에서도 유독 ‘튀는’ 삶을 산 소수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위험에 기꺼이 몸을 던진 용감한 영혼들이었죠. 자, 어때요? 우리도 한번 일탈해 보지 않으실래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아시죠? 그 조르바 형님 말이에요! 그는 오직 ‘자신만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망설임 없이 온몸으로 인생과 맞짱 떴죠. 순수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자유인! 하고 싶은 걸 자기 방식대로 즐기며 살았답니다. 조르바의 삶, 정말이지 부러운데요?
이미 해는 서산에 걸렸는데, 무슨 도전과 열정이냐고요? NO! 도전과 열정은 선택의 문제일 뿐, 시간 탓이 아니에요! 요즘은 100세 시대잖아요? 은퇴 후에도 30~40년이나 남았다고요! 이제 노년기는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은퇴 후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60대에서 70대를 ‘새로운 인생 주기’로 불러야 해요. 물론 건강만 허락한다면 80대, 90대까지도 확장될 수 있겠죠!
이 시기를 그냥 ‘또 다른 노년기’라고 부르는 건 모욕이에요! 새로운 상상력과 성공의 정의,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로 이 황금기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줘야 합니다.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나이 든 게 대체 무슨 문제인가요? 가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고,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것들이 정말 수두룩합니다. 그래요, 하고 싶다면 일단 저질러야죠! 나쁜 것만 빼고는 다 OK!
은퇴하면 좋지 않으세요? 하고 싶은 건 하고, 싫은 건 안 해도 되니 말이에요. ‘인생 60은 쉬는 때’라니, 그건 ‘라떼는 말이야~’ 시절 얘기죠. 나이는 들었어도 여전히 건강해서 생산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잖아요? 자신의 성장뿐 아니라,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 한다고 믿어요.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이 기회를 자신과 세상, 후대에 이바지하는 데 쓴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인생의 막바지가 겨울뿐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삭막하고 쓸쓸할까요? 나무들은 겨울에 냉해 걱정으로 수액을 비웠다가, 봄이 되면 다시 물을 끌어 올려 생명의 싹을 틔우죠. 우리도 잠시 생각을 비우고, 오래된 생각의 늪에서 헤엄쳐 나와야 합니다. 그동안 달려오던 관성을 이겨내고, 이제 새로운 삶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 살아가야 해요. 길 잃은 영혼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니까요.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선물하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고 하죠.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대요. “어리석은 자는 노년을 겨울로 보지만, 현명한 자는 노년을 황금기로 본다.” 인생의 가을! 아무래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겠죠? 가슴속에서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껴 보세요. 저는 인생이 나이로 늙는 게 아니라, 이상의 결핍으로 늙는다고 생각해요. 영원의 세계로부터 ‘자유와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한, 우린 언제나 청춘일 겁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엔 어떤 이상이 뛰고 있나요?
살다 보면 시련과 고통은 마치 해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널렸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은퇴’! 많은 분에게 은퇴는 ‘절망의 절벽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게 할 만큼 두렵다죠? 왜 사람들은 은퇴 후 노년을 그렇게 무서워할까요?
어떻게 살지 걱정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미지의 세계’ 때문이라고 봐요. 인간은 모르는 걸 마주할 때 오금이 저리잖아요? 미래를 모르면 상상 속에서 두려움이 부풀어 오르고, 뱃속에 숨어있던 고약한 악마가 ‘만약에~’, ‘혹시~’를 외치며 심장을 쿵! 얼어붙게 만들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두려움의 순간에 인간 정신은 최고치를 찍는다는 사실! 바짝 긴장해서 자신의 능력을 몽땅 쏟아붓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합니다. 은퇴 후 미지의 세계는 우리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밀당 고수’ 같아요. 결국 우린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만나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갖게 되죠.
미리 불행해질 것을 걱정할 필요 없어요.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하지?” 하고 밤낮으로 걱정해 봐야 소용없잖아요? 진짜 하늘이 무너지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 그냥 우리 삶을 망치는 바보 같은 짓일 뿐이죠.
우리 ‘초보 노년’들은 꿈과 희망을 다 이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사람도 아니잖아요? 우린 그저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음질칠 뿐이죠. 은퇴 후엔 ‘걱정보다 희망’이 갑이라고 전 믿어요. 쓸데없는 걱정은 뚝! 그만하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 봅시다!
저는 꿈을 꿔요.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아시죠?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 착각하고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돌격했다가 날개에 떠받쳐 나가떨어지죠. 가는 곳마다 현실과 부딪혀 쓰디쓴 실패와 패배를 맛보지만, 그의 용기와 고매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아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죠.
돈키호테는 망상에 빠져 어이없는 소동을 벌이는 몽상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꿈과 이상을 위해 돌진하는 불굴의 인간이에요. 약자에게는 세상없이 부드럽고, 악당 앞에서는 용사처럼 변하죠. 우스꽝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한 번쯤은 그처럼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덩어리!
여러분은 의지와 기력 부족에 굴복해서 그저 쇠락해 가는 노년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으세요? 설마요! 우리도 한번 돈키호테처럼 불굴의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요? “달려라, 로시난테!”
저는 4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 긴 여정이 끝나자마자, 뜻밖에도 키르기스스탄으로 트레킹을 갈 기회가 생긴 거 있죠? 만년설을 이고 있는 텐샨산맥의 알라아르챠 국립공원, 그저 하얀 설산만 바라보며 묵묵히 올라갔습니다. 해발 3,000m 가까이 되는 곳, 눈 덮인 설산 바로 아래에서 정말 신기한 걸 발견했어요. 여기저기 돌무더기 사이로 예쁜 풀꽃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거예요!
아니, 이렇게 춥고 메마른 땅에도 저런 아름다운 생명이 살고 있다니!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나도 마치 황량한 사막에 던져진 기분이었는데, 저 풀꽃처럼 살면 되겠구나!’ 이제는 굳이 저를 과시하거나 자랑할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삶은 무엇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들 하죠. 영원한 게 어디 있겠어요? 모든 것이 그저 한때일 뿐인데 말이죠. 나이가 들수록 행복을 실어 오는 바람은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고들 하잖아요. 그러니 우리 스스로 힘껏 달리면서, 행복의 바람개비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바람개비는 지금 잘 돌아가고 있나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정신 차리면 오후 5시! 남자들 얼굴에 수염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쯤이면 저도 모르게 우수에 젖곤 하죠. “오늘은 뭘 했나? 내일도 똑같겠지…” 혹시 당신도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요? 직장인들의 흔한 고독 시그널, 바로 ‘다섯 시의 그림자(Five O`clock Shadow)’랍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되뇌는 동안 세월은 쏜살같이 날아가 황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느껴요. 이 그림자, 점점 길어지다 언젠가 사라지겠죠. “내 인생, 뭘 하면서 살았나? 앞으로는 또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인생 60에 가슴을 저미는 고독으로 다가오더군요. 나이 들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는 세상, 맞죠? 인생은 늙어가면서 배우는 거라던가요?
하지만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어요! 고독은 때론 새로운 창조의 어머니가 되기도 하니까요. 석양을 등지고 광야를 힘껏 내달려 보는 건 어때요? 저녁 어스름이 지고 땅거미가 내리면 다시 별이 반짝이고, 가끔은 달이 환하게 비춰주기도 하죠. 인생에는 몇 번의 장면이 바뀌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당신에게 다가올 노년, 사랑할 준비 되셨나요?
인생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하더라고요.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운 다 됐다!”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인간이 노력할 수 있는 세계에 ‘운’을 끌어들이는 건 반칙 아닌가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조(自嘲)’는 절대 금물! “노력해 봐야 소용없어”라고 스스로 비웃지 말자고요.
“이젠 끝장이야, 더 이상 못 달려! 다 부질없는 짓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끝장나 버립니다! 지금 당신의 몸과 마음은 건강하지 않나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해서라도 ‘자조’는 절대 금물이에요!
아, 그 이야기 아시죠? ‘코끼리와 사슬’ 이야기 말이에요. 서커스 무대 뒤, 거대한 코끼리가 쇠사슬에 묶여있는데, 사실 그 코끼리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끊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어릴 때 할 수 없었던 경험에 갇혀 슬픈 눈망울만 깜빡이며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이야기요. 우리도 혹시 그 코끼리처럼 스스로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못 한다!’고 포기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에요!
지혜롭게 살기를 선택해야 인생 후반을 멋지고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은퇴 후에도 여전히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묻고 느끼고 깨닫는’ 것을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활력이 생기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깨달음의 기쁨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거예요. 여생은 바로 이런 지적 깨우침으로 고무되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안 보던 방향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60세는 현역 시절의 탄성과 방향이 여전히 살아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경은 확연히 달라졌죠. 이제는 왼쪽도 살피고 오른쪽도 살피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아봐야 해요. 60세 이후의 인생! 구름에서 벗어난 달처럼, 그물을 통과한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석양을 빗겨 힘껏 내달려 보자고요! 당신의 석양은 어떤 색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