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 2040년엔 셋 중 하나가 노인!” 다들 난리법석이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좀 어이가 없습니다. ‘노인’이라 함은 늙어야 부르는 거 아닌가요? 아직 쌩쌩한 우리 보고 ‘다 쓴 물건’ 취급하며 ‘노인국’이라니요? 이건 좀 아니잖아요? 건강한 6070을 노인 취급하는 세상이라니… 헛웃음이 나옵니다.
사회는 왜 멀쩡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잉여 인간’처럼 볼까요? 그리고 우리도 “아, 나는 이제 노인이야!” 하면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쉬려고만 하니, 진짜 ‘노인 천지’가 되는 건 아닐까요?
1. ‘노인’ 타이틀,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나이 기준, 확 올려야죠!
요즘 세상,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살잖아요? 그러니 꽁꽁 묶어둔 노인 기준 나이, 확 끌어올려야 합니다! 65세 말고 75세나 80세쯤으로 어떠세요? 80 넘어서도 팔팔한 사람에게 ‘노인’이라 부르기가 좀 민망하지 않나요? 늙기도 전에 앉아서 밥상 받으려는 생각은 이제는 그만! 의존적인 노년보단 능동적인 노년이 훨씬 ‘간지 폭발’이잖아요?
2.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옛말! 이젠 ‘언제까지 살지 모른다!’
불과 100년 전엔 평균 수명이 40대 중반, 50년 전엔 60세 정도였대요. 근데 지금은 80을 넘어 100세까지 넘보고 있죠? 이젠 태어나면 웬만해선 최대 수명까지 사는 시대가 온 겁니다. “인생 뭐 있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같은 말은 이제 ‘구닥다리 유머’일 뿐! 인생, 정말 제대로 잘 살아야 해요!
3. 인생 2막, 그리스 철학자처럼 빛내자!
80~100세까지 산 그리스 철학자들이 늙어서 놀기만 했을까요? 오히려 그들의 인생은 후반기에 더 빛나고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시대, 우리도 새로운 인생 지도를 그려야죠! 이모작 인생 개척, 뭘 망설이나요? 한번 추수했다고 또 추수 못 할 법 있나요? ‘인생은 셀프 리필’입니다!
4. ‘노쇠’요? 정신만 팔팔하면 문제없어요! 노쇠는 ‘장애 전 단계’일 뿐!
물론 나이 들면 몸이 좀 시들해지겠죠. 앉았다 일어설 때 삐끗하고, 계단 오르기가 귀찮아지는 현상, 이걸 ‘노쇠’라고 부른대요. 기력이 쇠하긴 했지만, 아직 장애 상태는 아니라는 거죠! 젊었을 때 황소 같던 힘을 노년에도 바랄 필요는 없어요. 젊고 우렁찬 목소리도 좋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것도 운치 있잖아요?
5. 정신만 살아있으면 장땡!
노년에는 노년에 맞는 임무를 수행할 체력만 있으면 됩니다. 젊은 운동선수 보고 “아, 내 팔다리는 이미 사망했구나!” 하고 한탄할 필요는 없어요. 노년에는 근력 쓰는 일 대신 정신적인 일을 하면 되거든요. 배우고 성장하고 세상에 지혜를 나누는 일, 근력 좀 없어도 문제없지 않겠어요? 정신만 살아있으면 몸이 좀 노쇠해도 별문제 안 됩니다! 자기 권리 지키고 자기 영역 지배할 수 있다면 존중받을 수 있으니까요. 평생 공부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80대, 90대, 심지어 100세가 넘어도 여전히 ‘존경의 아이콘’으로 살잖아요.
5. ‘방탕한 삶’이 문제일 수도!
만약 60~70대에 벌써 정신적인 일조차 못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면, 그건 나이 탓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방탕함’ 탓일 수도 있습니다. 꾸준히 운동하고 잘 먹고 관리했다면 운이 정말 나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은 없어요.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하고 만성 질환 잘 관리해서 ‘노쇠’를 예방하거나 늦춰보자고요!
젊은 사람이라고 다 운동선수가 아니듯, 노년이라고 다 허약하지 않아요. 미리 포기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세상은 나이 든 사람에게 ‘슈퍼 히어로’ 같은 체력을 요구하지 않아요. 노년의 일은 소소한 일상을 빼면 주로 정신적인 것이니까요. 정신은 마치 등잔처럼 기름을 계속 채워주기만 하면 된답니다.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입니다. 행동하는 그날이 바로 봄날이죠. 삶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언제든 줄 준비가 되어있어요. 노년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자, 우리 이제 뭘 해볼까요?
“나이 드는 거? 그거 못 피해요. 막을 수도 없어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하지만 ‘늙음’이 결코 ‘낡음’이 아니랍니다! 새로 찾아온 황혼의 인생, 우리 함께 멋지게 그려볼까요?
젊은 시절 소중했던 것들과는 쿨하게 이별하고, 노년에 맞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인생 후반기 목표,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욕심은 버리고 나이에 맞춰 흐르듯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럼,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변화랍니다. ‘인생무상’이 ‘허망하다’는 뜻이 아니라, ‘항상 같지 않다’는 뜻이래요. 결국, 인생은 ‘변화 그 자체’인 거죠!
공자님이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 폭포 급류에 뛰어든 사내를 보고 놀랐지만, 사내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헤엄쳤대요. 그 사내가 하는 말, “물결 따라 빨려 들어가면 같이 빨려 들어가고, 솟아오르면 같이 솟구칠 뿐! 따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이거, 완전 ‘달인’ 아닌가요? 욕심과 무리한 의욕은 인생 후반기에 좌절만 안겨줄 수 있어요. 흐름을 따라가는 삶이 훨씬 편하다는 말씀! 인생은 모르는 사이에 슬금슬금 노년으로 넘어가는 거지, 갑자기 팍! 하고 꺼지는 게 아니잖아요? 서서히 준비하고 적응하면 됩니다.
가끔은 물길을 거스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순리대로 사는 게 현명하죠. “나 아직 안 죽었다!”고 하면서 불같이 화낼 일은 아니지 않나요? 세월에 순응하는 편이 훨씬 멋지고 지혜로운 노년의 삶입니다. 선한 의욕이라도 지나치면 해가 될 수 있대요. 그러니 우리, 좀 ‘유연한 노년’이 되어봅시다!
어떤 현자도 “노년기가 그 자체로 좋다!”고 단언한 사람은 없대요. 세월의 발자취, 그 누구도 지울 수 없죠. 나이 들고 늙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잖아요? 그러니 주름살과 싸우는 ‘안티에이징(Anti-Aging)’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수용하는 ‘러브에이징(Love-Aging)’을 실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소리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출렁일 때가 있죠? 나이 듦을 의식하며 낙담할수록 인생은 더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늙기 싫다고 안 늙는 건 아니지만,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세월은 우리와 함께 가자고 손짓하는데요. 계절이 거꾸로 바뀌는 일 없고, 늙은 나무가 젊어지는 일 없잖아요. 늙는다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숙명’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하는 만큼 나이 든다”는 말도 늙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젊게 살자’는 뜻이죠.
꽃은 다시 필 날이 있어도 노년은 다시 청춘이 될 수 없습니다. 노화를 적대시하기보다 즐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누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러도 발끈하지 맙시다! 상대는 보이는 대로 불러주는 거니까요. 풋내기 노년이 나이 자랑할 것도 아니죠. 80대, 90대 어르신들도 계시잖아요? “너 몇 살이야?” 하다가 “왜 이렇게 늙어 보여?” 소리 듣고 화내는 사람도 많죠. 나이를 편할 대로 생각하지 말고, 그 나이에 맞게 몸도 마음도 곱게 늙어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곱게 늙는다는 것’은 곱게 살아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같으니까요.
나이 들면 뇌세포 유연성이 떨어져 배려 없는 생각을 하기 쉽대요. 맨날 지난 얘기만 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고집불통이 되거나, 젊었을 때는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내는 경우가 있죠. 이런 사람, 누가 좋아하겠어요? 훌륭한 인품과 지혜를 갖춰 사랑으로 교감하는 법을 몸에 익히면 좋습니다. 상대방 말도 끝나기 전에 가르치려 드는 노년도 많죠. 말이 앞서면 실수하기 십상이니, ‘경청의 미덕’을 발휘해 봅시다!
나이 듦이 다 나쁜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니랍니다. 퇴화이기도 하지만, ‘성숙’이기도 해요. 인생에서 찾아온 늦가을을 맞으면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죠. 생업에 치여 바빴던 나날에서 벗어나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찾아오는 겁니다.
노년에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인터넷 검색으로 모든 지혜가 대체될 수는 없죠. 배움과 성찰의 끈을 놓지 않고, 욕심과 명예를 넘어선 ‘자유로운 영혼’이 되면 좋겠어요. 곱고 여유롭고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꿈을 접지 마세요! 오래 사는 행운에 감사하며, 노화를 이해하고 선한 삶을 살다 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나이 드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 슬픔만큼 좋은 추억도 있잖아요?
나이 듦이란 그 자체가 인생이라고 저는 믿어요. 나이 들어가는 나와 친구 되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자고요. 나비가 늙는 것을 걱정하며 날아다닐까요? 우리는 ‘늙지 않는 방법’보다 ‘잘 늙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어때요, ‘러브에이징’으로 우리 모두 멋지게 나이 들어볼까요?
사람들은 흔히 그러죠. 나무는 봄에 싹 틔우고 여름에 무성하다가, 가을엔 낙엽 되고 겨울엔 앙상한 가지가 된다고. 그런데 사람은 좀 다르대요. 아무리 나이 먹어도 마음속엔 늘 봄날 햇살, 여름 열정, 가을 풍요가 가득하다고! “인간의 마음엔 겨울은 없다”는 말, 정말 그럴까요?
마음에서 세월의 흔적을 싹 지울 수 있을까요? 왠지 ‘지는 해 붙잡으려는 아련함’ 같기도 하지만, “마음은 이팔청춘! 나이 안 먹는 것 같다!”는 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아마 부정적인 감정은 피하고 싶고, 행복하고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고 싶어서 그럴 거예요. 저도 그렇답니다!
오스카 와일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노년의 비극은 사람이 늙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겉은 늙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젊다는 데 있지. 젊어서나 늙어서나 변치 않는 내 마음에 때론 나 자신조차 놀란다네.” 딱 제 마음 같습니다. 몸이 마음처럼 같이 늙어버리면 사랑 같은 건 생각도 안 날 텐데, 이 주책 없는 마음은 여전히 젊어서 때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까짓 가슴앓이 좀 하면 또 어떤가요? 늙어가는 마음보다 젊고 활기찬 마음으로 사는 게 훨씬 좋지 않겠어요?
우리 주위엔 ‘이 나이에 무슨 증후군’에 걸린 분들이 참 많아요.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죠. 새 일을 시작하는 것도, 새것을 배우는 것도, 새 사랑을 하는 것도, 새 옷을 사는 것도 주저합니다. ‘주책’이라는 소리 들을까 봐 겁내는 거죠. 유독 나이에 주눅 드는 우리 문화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이런 문화, 빨리 바꿔야 합니다! ‘이 나이에 무슨!’ 보다는 ‘내 나이가 어때서!’가 훨씬 멋지지 않겠어요?
나이 들면서 점점 무표정으로 변해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죠. 하지만 감정 표현이 없으면 외로움만 더해질 뿐이더군요. 나이 들어서도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나는 돌덩이가 아니야!” 아무리 외쳐봐야 외로움만 커지는걸요. 반면에 “외로움은 참아도 그리운 건 못 참아!”라며 속마음을 죄다 드러내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 어쨌든 외로움도 그리움도 참고 살 것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지는 해는 그 안에 아직도 이글거리는 뜨거움이 가득 차 있지 않나요?
나이 들어가는 몸이 있듯, 나이 들어가는 마음도 분명히 있습니다. 보통 몸 따라 마음도 쇠약해진다고 하지만, 몸은 늙어가도 내면의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어요. 게다가 인간의 마음은 쇠약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강해지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새롭게 강해진다는 건 바로 ‘성숙’을 의미하는 거겠죠.
젊었을 땐 나이 먹으면 욕심도 미움도 다 사라질 줄 알았어요. 후회, 안타까움, 두려움, 절망까지 모두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지요. 나이 든다는 건 그만큼 성숙하는 거니까 이 정도는 저절로 이룰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막상 나이가 들어보니, 그건 너무 큰 기대였다는 걸 알게 됐네요.
그래도 세월을 살아온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모르던 것도 더 알게 되고, 사리 판단을 더 잘하게 되는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욕심도 미움도 덜해지고, 사는 것 자체가 훨씬 편하고 쉬워지는 것 같아요. 아마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점점 성숙해 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세월이 주는 지혜와 경험, 연륜을 잘 살리면서 젊고 멋있고 품위 있게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95세에 다시 공부 시작해서 103세에 별세하신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박사님 말씀, 제게 늘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젊었을 땐 진짜 열심히 살아서 인정받고 존경받았지. 65년은 자랑스러웠는데, 그 후 30년은 후회와 비통뿐이었어. 만약 은퇴할 때 30년 더 살 줄 알았다면 그렇게 안 살았을 거야. 그때 ‘이젠 늙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게 큰 잘못이었지.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은 또렷해. 앞으로 10년, 20년 더 살지도 몰라. 그래서 지금부터 어학 공부를 시작할 거야. 단 한 가지 이유! 10년 뒤 105세 생일에 ‘95살 때 왜 아무것도 안 했지?’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이 말씀 들을 때마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젠장, 다 나이 때문이야! 조금만 젊었어도…” 하고 투덜거릴 때가 솔직히 있죠. 이렇게 핑계라도 대면 마음은 좀 편하더군요. 하지만 나이를 탓하는 건 결국 우리 인생의 ‘골든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거란 걸 깨닫습니다.
나이 듦이란 뭘까요? 저는 ‘농축된 경험치’라고 생각합니다. 부딪치고 배우면서 쌓인 지혜, 이게 바로 나이 듦의 결과 아니겠어요? 70 넘은 제가 달리기에서 30~40대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지혜와 경험을 뽐내는 일에서는 얼마든지 우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적응력이 뒤떨어진다고요? 에이,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진짜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요?
물론 나이 들면 몸의 힘이 약해지니, 이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나이 듦에 따라오는 다른 변화들도 마찬가지고요.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정 못 하고 늘 ‘내가 왕년에…’ 하며 고집부리는 건 좀 답답하죠. 사실 우리 인생 대부분이 내려놓는 일의 연속 아니겠어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건 내려놔야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노년을 바람에 실려 가는 나뭇잎에 비유했죠. “나뭇잎아, 바람이 너를 데려가려고 하거든 가만있어라. 네 놀이나 하며 가만있어라.” 이 말은 나이 들면서 자연에 순응하라는 뜻이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뻗어라!” 하는 게 아니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노년은 인생의 다른 시기처럼 나름의 가치와 매력이 있습니다. 몸은 좀 둔해져도, 정신 활동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잖아요? 육체가 약해져도 그 나이에 맞는 활동들이 분명히 있어요. 이걸 잘 갈고닦으면 나이 들어서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괴테가 노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격하게 공감하게 돼요.
“자네 귀에 조용히 들려줄 말이 있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도 좋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요즘 행복하다네. 이 생각들을 좇고 또 실천에 옮기기 위해 생을 반복해도 좋을 만큼 소중한 생각들이네.”
노년! 지금이야말로 제가 살아갈 가장 적당한 나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무엇을 해내면 ‘이 나이에 해냈다’고 하고, 못 하면 ‘나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부족함을 나이 탓으로 돌리는 이들이 있죠. 저는 더 이상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씌우지 않을 겁니다!
세월이란 녀석, 왜 이리 바싹바싹 쫓아오는지 가끔은 당황스럽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삶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찌 됐든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죠. 만약 세월을 빗겨서 갈 수 있다면, 그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요?
옛날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답니다. 어린 시절 형은 시간이 없는 별로 떠나고, 동생은 지구에 남았죠. 50년 후, 다시 만난 형제! 지구에 살던 동생은 주름 자글자글한 노인이 되었는데, 다른 별에 있던 형은 10대 미소년 그대로였다는군요. 형은 매일 똑같은 날을 살았기에 젊음을 유지했지만, 삶의 깊이는 알지 못했답니다. 매일 같은 삶,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반면 동생은 매일 새롭고 첫날 같은 삶을 살았대요. 하루하루 드라마 같은 삶 속에서 숱한 시련과 슬픔을 겪으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 여기서 질문! 과연 누가 더 참된 삶을 살았고, 누가 더 행복했을까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는 ‘스트럴드브러그’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네 나라로 스트럴드브러그 한 명 데려가지 않겠나? 죽음이 두려운 사람에겐 최고의 선물일 텐데…” 럭낵 왕이 농담처럼 말했다죠. 그런데 그들은 허리는 굽고, 눈은 멀고, 귀는 먹었으며, 손발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대요. 일도 못 하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았다는군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더군요. 세월을 피해 그저 오래 살려고만 할 게 아니라, 존엄하게 사는 것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정말 무서운 건 신체와 정신의 기능을 하나하나 잃어가며 남의 도움으로만 연명하는 삶이 아닐까요? 영혼과 육신이 시들어버리면, 모든 시도가 허무해질 테니까요.
이제 나이 듦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좀 바꿔봅시다. 일본어 ‘이키가이(生き甲斐)’는 ‘사는 보람’을 뜻한답니다.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나오는 이유, 살아가는 원동력인 셈이죠. 오키나와 사람들은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없대요. 101세 어부는 가족을 위해 물고기 낚는 게, 102세 할머니는 고손녀를 안아주는 게 그들의 ‘이키가이’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한 가지씩 품는 것이, 세월에 쫓기지 않고 사는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요?
세월은 단지 흐를 뿐, 쫓기는 건 결국 우리 마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세상만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그냥 일어날 대로 일어나는 법이죠. 이걸 인정하면 불안은 걷히고 마음의 평정이 찾아옵니다. 절망에 허를 찔릴 일도 없어지고요. 쫓아오는 세월을 피해 도망칠 필요 없습니다. 세월과 함께 변해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세월에 순응하면, 늙어가는 시련마저도 신의 섭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거예요.
자, 당신의 ‘이키가이’는 무엇인가요?
밤잠 설치게 하는 걱정들… 혹시 당신도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요?
“너무 오래 살아서 가진 돈 다 떨어지면 어쩌지?”
“연금이 끊기면 큰일인데?”
“치매라도 걸리면 누가 날 돌봐줄까?”
“자식들도 나 몰라라 하면 어쩌지?”
에이, 진정하세요! 이런 걱정, 모두에게 닥치는 **‘보편적 위험’**은 아니랍니다. 잘 대비하면 대부분 물리칠 수 있는 것들이죠. 걱정 말고, 기죽지 말고 살아봐요. 정말 좋은 세상이니까요!
노년은 짐(Onus)이 아니라 보너스(Bonus)!
장수는 결코 무거운 ‘짐(Onus)’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보너스(Bonus)’**라 생각해야 해요. 우리는 은퇴를 그저 모든 짐 내려놓고 쉬는 **‘약속의 땅’**이라 여기곤 하죠. 하지만 잠깐만요! 마냥 놀고 쉬기엔 남은 세월이 너무 길지 않나요?
더는 전진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놀랍고 기막힌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젊은 시절보다 살날이 줄어들었다 해도, 시간은 여전히 우리에게 우호적입니다. 이 귀한 시간을 그냥 고갈되고 닳아 없어지는 시간으로 흘려보낼 순 없죠.
이 시대의 은퇴는 물러나 쉬는 게 아닙니다.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해요.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하시나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마라톤에 도전하며,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는 사람들처럼, 당신의 욕망과 감정은 노년에도 여전합니다. 세월 흐른 후에 “아, 그때 뭐라도 다시 시작할걸…”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새가 공기의 저항을 받아 날고, 물고기가 물의 저항을 받아 헤엄치듯, 우리 삶도 적절한 저항 속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사는 게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조금은 힘들더라도 ‘사는 것 같이’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나이와 함께 지혜도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노년들 덕분에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 보면 어때요? 왠지 모르게 뿌듯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