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적 정의강박

by Young

순간 의심이 시작될 때가 있다. 작은 틈이 생긴다. 유리창에 날아들 돌이 박히고 주변을 따라 틈이 번진다. 의심이 한번 시작되면 모르는 사이에 퍼진다. 틈은 벌어지고 쩍쩍 갈라대기 시작한다. 작은 파편도 떨어진다. 어느 곳은 두께의 반쯤 떨어지고 남아있다.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없이 갈라짐을 바라본다. 갈라짐이 멈추기 전까지 벌어지는 일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저 끝날 때까지 아무 느낌이 없다. 의심이 그렇다. 의심이 온몸 전체에 퍼지고 나서야 불안이 나를 감싼다. 후회가 시작되면 그 어떤 것도 탓한다.

2년에 한 번씩 불안해지는 순간이 온다. 2년은 나에게 유예기간이었다. 2년이 돌아오면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빙의한다. 내 과거를 은행에 맡기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의 2년을 위해 조바심을 낸다.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치장한다. 2년 동안 외면한 것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돌아온다. 시간은 지났지만 언제나 제자리다. 10년 전이 오늘이 되고 10년 후에는 10년 전이 그대로 돌아올 것이다. 2년에 한 번씩 나를 점검하는 기회가 있지만, 의심이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깨지고 벌어질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본다. 그리고 후회를 시작한다. 언제나 그랬다.

10대에는 세상이 느려서 싫었다. 티클보다 더 하찮은 내가 싫었다. 20대는 10대가 그래서 그냥 싫었다. 20대는 망했으니 30대를 노려보겠다는 후퇴도 있었다. 30대에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매일 주어진 일도 버거웠다. 냉혹한 미성숙한 어른들에게 한낱 인정이라도 받아 보려고 비슷한 척 다르게도 행동했다. 그렇게 40대가 시작하자. 남은 게 없었다. 2년마다 돌아오는 정기적인 비참한 시간과 발전하는 기술덕에 내가 꿈꾸던 겉모습의 타인이 더 눈에 들어온다. 뒤쳐짐의 느낌은 없었다. 그저 더욱더 하찮음이었다.

잠깐은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마이너 한 선택이 메이저를 굴복시킨다는 알량한 생각이 물리적 보상까지 따라올 때, 그때는 세상에 이 우월함을 매너 있게 숨기려 했었다. 그것도 그리 길지 않았다. 생각보다 세상은 더 미치게 변하고 그럴수록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2년은 돌아왔다.

마음은 조급하게 허무한 하루를 보냈다. 어제가 오늘이었고, 월요일도 더 이상 부담이 없게 되었다. 금요일이 온다고 기대가 넘치지도 않았다. 월요일은 화요일과 같았고, 금요일도 월요일과 별반 차이 없었다. 주말은 TV 프로그램만 바뀌는 날이었다. 무력감도 없었고,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 숨을 쉬는 생활 같았다. 숨 쉬는 수영장 안에서 물을 이기며 한 발씩 걷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고통도 없었다. 숨을 쉬는 줄 알았지만 참고 있는 모습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뭔가가 필요했다.

필요를 느낀 순간 설계가 시작된다. 설계를 시작하기 위해서 시방서를 만들었다.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 설계 목적은 무엇인가. 엔지니어는 목적이 불분명한 설계를 시작하면 결과가 산으로 간다. 이 별것 아닌 인생이 의미를 찾아야 했다. 의미까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생각은 하고 살아야 했다.

나는 멋대로 정의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친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