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by 재키

"고용이 아니라 합류다. 우리는 한 배를 탄 거다. 너는 승선했고 계약은 없다. 우리는 일한 만큼 번다. 너는 이제 네 운명의 주인이다"

관리직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리키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들 밑에서 일하는 게 지겨웠던 리키는 남자의 말이 반갑다. 면접이 끝나고 리키는 일을 시작한다.


남자의 말은 사실 기만으로 가득하다. 계약서가 없다는 건 법과 제도의 보호가 차단되었다는 뜻이고, 성과에 따른 급여란 "너에게 줄 안정적인 임금은 없다"와 다름 아니다. 언뜻 수평적 관계를 선언하는 듯한 '승선'은 "우리는 너를 책임질 생각이 없다"는 통보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리키는 결코 제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는 자본의 새로운 착취 방식에 희생당할 '노예'일뿐이다.


그렇게 리키는 물류체인 말단 하청 택배기사의 일원으로 '합류'한다. 할당량을 다 채워도 생계는 여전히 멀다. 리키의 스캐너는 쉴 새 없이 물건을 찍어 제 몫을 불리지만 정작 리키 자신에게 허락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관리직의 독촉과 멸시를 견디며 리키는 묵묵히 트럭에 물건을 싣는다. 생리현상을 해결할 빈 생수통도 잊지 않는다.


달리는 트럭처럼 리키의 일상도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하루 12시간씩 6일을 일하면서 가족까지 돌보는 현실이 가혹해도 방법이 없다. 이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 만든 결과임을 선고하는 시스템 앞에서 리키는 무력하다.


리키도 한때는 어엿한 건설회사 직원이었다. 그의 인생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십 년 전 금융위기 사태부터다. 이후 리키는 노동유연화라는 미명 아래 비정규직이 되어 여러 직종을 전전해야 했다. 노동의 자유는 있지만 노동의 조건이 제거된 현실에도 그는 일해서 살아야만 했다. 끝내 살아내야만 한다는 조건만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 탓이다.


이 영화에서 켄 로치 감독의 화두는 '플랫폼'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제 모습을 달리해 이번엔 '디지털 경제'라는 형태로 노동을 갈아 넣는다.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힘의 불균형은 여지없이 인간을 착취의 굴레로 밀어 넣는다.


희망은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모습에서 보인다. 정해진 시간 없이 일하는 '제로아워' 비정규직 리키의 아내는 곤궁한 처지에도 자신보다 낮은 처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연민의 손길을 뻗는다. 그러나 감정적 연대는 무지막지한 시스템의 위계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리키를 짓누른 생애의 굴레는 혈연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그의 자식들 역시 옭아맬 것이다.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이지만 리키는 망가진 몸을 이끌고 다시 일터로 향한다. 리키의 위태로움을 보며 그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나의 마음은 초라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