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비밀

by 재키

"이거 비밀인데, 사실 나 음악 접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신 뒤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난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지쳐 보였고, 더는 낭만이나 예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에선 이십 대 중반 청년의 피곤한 눈만 보일 뿐이었다.


형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스무 살의 내가 처음 반한 사내였다. 난 형을 동아리에서 만났다. 이름이 멋있어서 택한 락밴드 동아리였다. 밴드 음악을 하는 곳답게 개성 강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형은 거기서도 단연 돋보였다. 부산 억양에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와 기타 하나로 형은 그곳이 어디든 자신의 무대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합주팀을 꾸릴 때 난 망설임 없이 형이 속한 그룹을 택했고 형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악기를 연습했다.


형의 자취방에서 소주를 마시던 시간을 좋아했다. 그때면 형은 마치 너에게만 알려주겠다는 듯이 스피커로 멋진 음악을 틀어 들려줬다. 생활비를 털어 겨우 구한 비싼 스피커였다. 커트 코베인이 어쩌다 죽음을 맞이했고, 밥 딜런이 어떻게 포크의 배신자에서 혁명가가 됐는지 알게 된 것도 형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형이 음악을 하겠다 선언했을 때, 난 누구보다 형이 잘 되기를 바랐다.


형이 돈이 필요하다며 장교로 임관한 건 두 해 전이었다. 이미 여러 번 오디션에서 낙방한 뒤였다.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길 위에서 마냥 연주하는 일도 힘들다고 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형은 손을 다쳤다. 재활 기간만 일 년이 넘었다. 형은 기타를 팔았다.


형이 꿈을 포기했다는 것보다 날 아프게 한 건 그게 비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형은 온 힘을 다해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 점에서 형은 누구보다 떳떳한 사람이었다. 난 그 말을 형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형의 열패감은 내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그날 나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숨기고 싶은 수치를 비밀이라 부르곤 한다. 형은 자신의 실패를 수치라 여기고 있었고 그 사실이 날 슬프게 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나의 실패를 숨기게 될까 두려웠다. 모두가 밥 딜런처럼 위대해질 수는 없다. 행운도 따라 줘야 하는 게 세상일이다. 꿈을 좇으라고 말하면서 꿈을 포기한 이들에게 수치를 남기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날 형과 나는 소주를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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