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며느리 그동안 고생했어." 꼬옥 안아주시고 등을 토닥여 주셨다.
어느 날 남편이 사라졌다. 아이들이 어려 인근 중학교에서 급식 알바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는데 "여보세요?"하고 받았다. 남편의 직장 상사라고 했다. "지금 ㅇㅇㅇ씨가 연락이 안 됩니다. 혹시 집에 왔어요?"라고 했다. 밖이라고 대답하고 끊었다. 남편에게 연락을 해보니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철렁!! '이게 무슨 일일까' 워낙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고,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저녁이 되어서야 메시지가 왔다. 안산에서 친구 만나 술 먹고 늦게 들어간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회사를 뛰쳐나갔을까.'하는 생각에,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못했다.
다음날 결혼 후 한 번도 쉬지 않았으니 몇 달 쉬고 싶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맞벌이도 아니고 2시간 아르바이트하는 아내인데 쉬고 싶다니!! 남편은 지칠 대로 치쳐 있다고 했다. 이 회사에 2년 6개월 정도 다녔었다. 퇴직금 1000만 원 정도, 몇 달을 버틸 수 있지!! 아이들 학원을 끊어야할까?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들이 "어젯밤에 피아노 다녀오는데, 집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아빠 집에 계시냐고 물었어요. 안계시다고 하니,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시고 가셨어요."이야기 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며칠후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한 가정의 가장이 간도 쓸개도 빼줘야 할 마당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방패막인지 하소연을 하셨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어머니 저희 학원을 끊을까요?"라고 물어봤다. "왜? 학원을 끊어?" 하고 물으니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뒀으니 끊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울컥!! 눈물을 삼켰다. "괜찮아, 학원에 가야지"라고 말했다. 미술 및 태권도,피아노 학원을 즐겁게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처음 두달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6개월간 공식적으로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 집에서 핸드폰을 보고 뒹굴뒹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들과는 평소보다 더 잘 지냈다. 속 깊은 이야기를 안 하고 모든 것을 삼키는 남편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말하지도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쉬는 동안 캠핑을 다니며 퇴직금은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식 알바로 한 달에 30만 원 남짓 벌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돈처럼 느껴졌다.
생활비가 바닥이 났고 저축해둔 돈도 없었다. 답답했다. 남편이 집에 있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스트레스가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이기만 했다. 친구는 내게 부처님이라고 말했다. 결국 퇴직금을 다 썼을 때서야 "여보, 이제 퇴직금이 바닥났어.'라고 한마디 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다.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면접을 보러 다니고 새로운 회사에 다녔다. 6개월의 실직 생활은 끝이 났다. 시댁에 갈 일이 있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어머님께서 꼬옥 안아 주시며 "우리 며느리 고생했어."하시고 등을 토닥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