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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Jihyun Park Mar 19. 2024

한 장의 사진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딸


우리는 흔히 딸바보 라는 말을 많이 쓴다. 딸 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못했던) 사람들도 있다.


바로 북한에서 태여난 사람들이다. 지난주 런던에서는 “자유의 목소리” 라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6.25 전쟁 당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 참전하여 피를흘렸던 10대,2대의 우리 국군들이 정전협정 몇달 앞두고 포로가 되어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우리는 6.25 전쟁 하면 유엔군들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 국군들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 안 한다.


우리가 모르는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6.25가 일어났다고 유엔군이 한국을 도우러 한국에 왔다? 이런 질문을 해본적 있는가?


1950년 6.25일 일요일 새벽 4시북한은 구 소련을 등에 업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3일안에 한국을 점령 할 것 이라고 큰 소리 쳤고 김일성 의도대로 처음엔 한국은 북한군에 의해 점령을 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전방에는 우리 국군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전쟁에서 획득한 소련 무기들을 유엔에 보냄으로 하여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들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두 분단된 국가의내전으로 만 생각했던 세계는 이것은 내전이 아니라 바로 전체주의 공산국가와 자유 민주주의의 대결 임을 알게 된 것 이다.


우리 국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했을까? 국군포로가 된 그들은 모두 최전선에서 싸운 분들이며 그분들 피와 용기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없다.


북한에서 국군포로들은 전쟁으로 페허가 된 평양을복구하는 건설 노예가 되었고 그 후 43호 라는 명령에 따라 구군포로들은 43호로 불리우며 아우지 광산,탄광으로 강제로 추방되고 한 평생을 굴 속에서 ,산속에서 나무만베여 내면서 단절된 삶을살아왔다.


자식들은 한 달에 3번만 집에오는 아버지를 보면서, 왜 우리 아버지는 한 달에 3번 오는 것도 자식들과 따뜻한 시간을 나누지 못하고 있는지 늘 생각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족들에게도 들키기 싫어 꽁꽁 숨겨둔 아버지 수첩을보니 산에 혼자서 나무를 해야 하는 과제를 받은것도 모자라 매일매 순간을 기록하여 한달에 3번 산에서 내려오면 그것을 보고해야 한다고 한다.


수첩에는 오늘 까마귀몇 마리 날았고, 몇 마리 토끼가 지나갔고, 또 메돼지가 언제 왔고 등등에 대해서,,,,,


한국엣 태여나고 국군이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북한정권에서 짐승만도 못한 인간대우를 받았고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국군포로들을 북한정권은 무자비하게 학살했고 심지어 총알도 아깝다면서 탄광 굴속에 집어넣고 화약을 터뜨려 생매장 하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들의 마지막 유언은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것이며 고향에있는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을 한번 만이라도 만나보는 것 이었다.

군인이었던 그들은 본인들 군번을 단 한번도 잊은 적 없었고 마지막 유언은 군번과 함께 고향의 주소 였다.


아버지들의 그 비참한 삶, 마지막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딸들은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와서 아버지들을 모셔 온다.

하지만 온전히 묻히지 못한 아버지들도 있다. 상반신은 북한에,,, 하반신은 한국에,,, 죽어서도 온전히 고향에 뭍히지 못한 국군포로들,,


국군포로들은 포로 이기전에 대한민국을 지킨 국군들이고 , 그들은 몸이 북한에있어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국민들에게서 잊혀 가는 호국 영웅들,,,


참전용사와 만남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환하게 웃는 국군의딸들, 그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눈물을 머금는다.


한국에있던 북한군 포로들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2000년도 김대중은 김정일이를 만났고 그 당시 한국에 있던 포로들은 돌아갔고 김정일 정치에 이용이 되면서 죽어가던 김씨정권을 살렸다.


그 당시 북한에 있던 우리 국군포로들은 본인들도 고향에갈수 있을 것 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오지 않았다.


국군포로들은 대한민국 국민 이며 대한민국을 지킨 국군들이다.

마지막 임종을 앞두면서도 자신의 군번을 자식들에게 알리면서 군인으로써의 삶을 마감하는 그들의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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