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아무도 없던 햇살 좋은 낮. 나 또한 외출을 하려고 양치를 하던 참이었다. 그날따라 무인의 조용함이 평화롭기까지 해 이를 닦는 사소한 일상마저도 제법 흥겨웠다. 칫솔에 콩알만큼 적당량의 치약을 묻히고 치아를 닦으며 욕실을 나왔다. 바지런 떨며 시간을 쪼개 쓰기 좋아하는 성향은 이를 닦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거울 앞에 온전히 서 있질 못하고 할 일을 찾아 이리 저리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가 벗어 둔 잠옷을 들어 다용도실 빨래 통에 담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종이 박스가 보여 재활용통에 넣었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수 년 전 절연한 어느 지인이 떠올랐다. 한때는 서로를 절친으로 칭할 만큼 다정했지만 이제는 그저 예전에 알았던 지인이 돼 버린 사람. 만나지 않음이 아쉽지 않고 되레 연락이 없는 지금 이대로가 편한 사이. 그런 그녀가 갑자기 생각났다.
참 희한하게도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계기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초등학교 동창이긴 한데…. 학교 다닐 때 서로 다른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사는 동네도 가깝지 않았다. 친한 초등학교 동창들은 “어떻게 네가 걔랑 친해?”하며 의아해 할 정도로 관계의 교차점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각기 다른 중⋅고등학교를 다녀 더욱 만날 일이 없었는데 한번은 약속도 없이 굳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나를 오랜 시간 기다린 적이 있었다. 날 기다리고 있는 그 애가 부담스러워서 그날은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 기다리다 좀 전에 갔어.”라는 엄마 말에 만나지 않아도 되었으니 도리어 안심이 될 지경이었다. 방 책상 위에 “너는 날 무시하는 것 같으니 우리 절연하자.”라는 간단한 문장이 쓰인 쪽지를 발견했을 때조차 이젠 일방적으로 관계를 종용하는 일이 없겠구나! 오히려 안심되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강원도 내 여러 학교가 참여한 2박 3일에 걸쳐 진행된 예절교육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절연을 먼저 말한 걸 잊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날 반가워했고, 교육 시간 내내 내게 많은 편지를 써 보냈다. 날 좋아해주는 적극적인 그녀 덕에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우리는 베스트프렌드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틈 날 때마다 만나 수다 떨고 쇼핑하고 술을 마셨지만 여전히 우리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었다. 나는 공부 욕심이 많아 직장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회사를 다닌 적이 없고, 결혼도 일찍 했고, 아이도 꽤 컸으며 공부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결이 달랐음에도 그 모든 다름에 대해 친구라는 이름으로 너그러웠다. 달라도 친구니까 기꺼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을 정도로 젊은 나이가 가진 우정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불편했던 것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그녀의 모토였다. 본인이 제일 중요했고 매 순간 당당하면서도 일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때로는 자못 자신감이 넘치고, 유유자적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독단적인 자기애가 결별의 도화점이 된 건 둘이 떠난 10일 간의 여행에서였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5일을 보낸 뒤 국내선을 타고 휴양지인 랑카위 섬으로 가 5일을 더 지내고 돌아오는 짧지 않은 여행. 함께 일정을 짜는 동안에는 매 순간이 설렜고 더 오래 여행할 수 없는 각자의 여건이 아쉽기만 했었다. 하지만 상상한 것과 달리 결과적으로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10일이 되었다.
여행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날, 저녁에 마신 맥주에 기분이 좋았던 친구는 호텔 룸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하고 춤을 췄다. 문제는 엘리베이터에 우리 외에도 외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점이다. 외국인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하기를 권하는 내게 “세상에서 내가 가장 중요한데, 누굴 위해 조용히 해야 해?”하며 버럭 화를 냈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고 그녀와 외국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쩌면 그 때 나는 등만 돌린 게 아니라 마음도 돌렸었나보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한명 한명을 떠올리며 내가 신중히 골랐던 기념 선물들도, “너에게는 내가 제일 소중하니 나부터 고르게 해줘야하는 거 아냐?”라며 본인 마음에 드는 물건을 먼저 챙겼다. 또, 활동하기 좋아해 매일 새로운 일정으로 낯선 나라를 탐험하기 원했던 나와는 달리 숙소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어떤 외부 일정을 하던 결국엔 “너 때문에 내가 고생했다”는 말로 끝났다.
많은 원망의 말과 일련의 사소한 갈등들을 견디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차츰 멀어졌다. 육체보다 정신이 더 지친 여행 후 상대에 대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음으로써 인연은 자연스럽게 종결된 것이다.
배려와 공감만 있다면 여행은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찬 신남의 연속이다. 낯선 환경과 상황이 가득한 여행이라도 오히려 ‘전우애’가 쌓여 관계는 더욱 돈독해 진다. 물론 완벽한 여행 친구는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완벽한 여행 동반자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해 준다면 여행은 힘들어도 재미있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그녀같이 오래 기간 동안 공유한 세월을 핑계 삼아 철저하게 다름을 덮고 넘겼던 사람들이라면 여행 자체가 헤어짐의 발판이 되고 이별의 계기가 되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Oldies but Goodies(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은 오랜 물건, 오랜 사람만큼 마음을 여유 있고 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는 의미리라. 나 역시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을 애정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날 알아주는 오랜 벗이 좋다.
그렇기에 상당한 시간을 알고 지낸 친구를 삶에서 베어내는 일은 괴롭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을 벗으로 삼기는 어렵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사소한 것에 감사하다 말하고 작은 잘못에도 사과할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이 나는 좋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과 개인 삶의 균형을 유지해야하는 요즘, 의지와 상관없이 바빠지고 챙겨야 할 일은 너무 많다. 그렇기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조차 얼굴 접할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사귐이 불편한 관계까지 연명할 필요가 있을까?
어렸을 때 서로에게 느꼈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그저 나이가 들면서 상대에 대한 사유가 객관적 기준을 빗대 달라졌을 뿐. 만약 여행 중 느낀 섭섭함과 아쉬움을 여행이 끝난 후에라도 솔직하게 터놓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을까? 꾹꾹 참으며 끝까지 감정을 쌓았다 한꺼번에 터트리는 대신, 그때그때 갈등을 풀었다면 완전한 단절의 결말까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양치를 할 때처럼 생각이 비어지는 찰나의 틈을 타 나도 모르게 그녀를 떠 올린다. 그녀가 아프지 않고, 대체로 잘 지내기를 바란다. 서로에 대한 추억이 많은 만큼 마지막에 헹궈 퉤-하고 하수구로 버리는 양칫물처럼 깔끔하게 정리될만한 사람은 아닐 테니까. 그저 함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기에 힘들게 견뎌야 하는 사람은 뒤로 하는 게 낫겠다 싶을 뿐이다. 이를 닦다가 비어져 나온 사람에 대한 미련은 입가에 남은 물기를 수건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그렇게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