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용 운전석 정면충돌 안전테스트를 굳이 왜?

여성은 조수석만 테스트

by 프린스턴 표류기


Screenshot 2026-03-27 at 1.43.39 AM.png Humanetics 사의 충돌테스트 더미 THOR-50M 출처: https://www.nhtsa.gov/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인형. 이름은 THOR. 가격은 100만 달러에 육박한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기에 이토록 비쌀까? 짐작했겠지만 자동차 충돌테스트 더미다.


충돌은 찰나에 일어나는 일. 그 짧은 순간에 몸이 어떤 충격을 받는 지를 최신 THOR 더미는 초당 1만 번, 150개가 넘는 센서로 잡아 데이터로 수집한다. 그러기 위해 부품이 3만 개가 필요하고, 한 개 만드는 데만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차회사는 더욱 안전한 자동차를 설계할 수 있다. 충돌 순간을 더미가 잘 버텼다는 건 사람도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이 살았다. 정말 고마운 인형이다.


우리 눈에도 친숙한 더미 인형은 키 175cm, 몸무게 78kg 남성의 골격과 근육을 감안해 만들어졌다. 마징가 Z에도 아프로디테 A가 있는 데, 충돌 테스트 더미 THOR는 여성형이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말이다.


사고 시 여성은 많이 다치고 많이 죽는다.

여성도 차를 몬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면허의 숫자를 보면 남녀 비율은 50:50이며 실제 주행거리 역시 여성이 40%가량 된다고 한다. 여성이 운전도 남성보다 약간 덜하고 사고율은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같은 사고를 당했을 때 여성이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다. 조금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NHTSA) 데이터 인용한 NBC News (2025.11.20)에 따르면, 여성의 다리 부상 가능성은 남성보다 80% 높고, 정면충돌 중상 가능성은 73% 높으며, 사망률은 17% 높다고 한다. 왜 그럴까?


자동차는 안전벨트, 의자의 크기, 굴곡의 모양, 목받침대 크기 등등이 THOR-50M처럼 생긴 남성 골격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에어백은 남성 신체 기준으로 터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성은 골반 구조가 다르고 목이 가늘고 앉는 자세도 다르다. 남성용으로 만들어진 안전 설계는 여성의 몸을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사고 시 부상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 여성용 더미로도 테스트해서 여성에게도 안전하게 만들면 되지 않나? 말했다시피 여성 더미는 없었다. 아니, 억지로 끼워 맞춘 더미가 있기는 있었다. 키 150 cm, 몸무게 49 kg짜리인데, 새로 여성의 신체 데이터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남성 더미를 줄여 어린이 크기로 만든 것이다. 미국 여성의 평균키는 163 cm로 이 더미보다 13 cm나 컸지만, 이는 대수롭지 않은 차이로 무시되었다. 키 뿐아니라 근육량, 몸의 굴곡도 무시되었다. 이런 엉터리 더미가 45년간 존재를 하기는 했으나 미국 안전 규정에 공식 반영된 건 2000년이 되어서였고, 그나마 조수석 안전테스트에만 사용이 됐을 뿐, 운전석 테스트는 아예 없었다.


드디어 등장한 여성더미, 그러나

다행히 2025년 말, 진짜 여성 신체 기반의 더미 THOR-05F가 승인됐다. 골반모양, 다리모양, 목의 굵기도 여성 것을 그대로 반영한 신형 인형이다. 키는 아쉽게도 전과 같은 150 cm이다. 그래도 전의 소형 남성 더미보다는 훨씬 여성의 신체에 가깝고, 센서의 수도 늘었다. 그런데 실제 테스트에 쓰이려면 2027년이나 2028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자동차 회사들이 원하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꼭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Screenshot 2026-03-27 at 1.39.44 AM.png Humanetics 사의 여성 더미 THOR-05f 출처 www.bloomberg.com


여성 더미를 굳이 사용하고 싶으면 100만 불 내고 사라는 얘기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 누가 필수가 아닌 테스트를 그토록 큰돈과 시간을 별도로 들여하겠나? 여성용 더미로 테스트하지 않아도 여성들에게 자동차를 파는 데 여태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고가 나서 죽고 다치는 건 구매자의 사정이다. 자동차회사는 영리를 추구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비용 절감은 죄가 아니다.


사실,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사각지대에 두는 일은 자동차 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의료 현장에서도, 작업 현장에서도 표준은 남성이고 여성은 그 기준으로 대충 맞추면 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남성용이 맞지 않아서 사고가 나거나 부작용이 있다 해도 그건 그냥 개인적 불행이다. 그것까지 고려하라고 하는 것은 과잉 규제요, 비용 낭비이고 시간 낭비이다. 이건 짐작이 아니고 이게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그러므로 현재로선 자동차 업계가 자발적으로 이 더미를 쓸 것 같진 않다.


자동차 자체의 설계를 바꾸기 어렵다면 차라리 누군가 이 더미를 써서 여성용 카시트를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데이터를 수집할 더미가 있고, 시장은 비어 있다.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안 했다.


제품이 싸진 않을 것이다. 수백만 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등 쓸데없는 핸드백도 그 정도 되는 것 많다. 본인이나 배우자의 목숨 값 치곤 비싼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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