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설계한 책임 - 배상하는 인스타

인간의 뇌를 상대로 한 돈벌이는 이제 끝?

by 프린스턴 표류기

안 사도 되는 휴대전화를 사고, 안 만들어도 되는 소셜미디어에 계정을 만들고 매일매일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다 인생이 피폐해졌다.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건 당연히 사용자 책임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걸 생각해 보자. 소셜미디어에 중독성 콘텐츠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그리고 플랫폼은 그걸 아주아주 보고 싶도록 최대한 감질나는 방법으로 연속적으로 제공한다. 사용자가 보려 하지 않았어도 저절로 켜지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숨겨 놓는다. 그렇다면 플랫폼은 아무런 잘못이 없을까?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완벽했던 방패 Section 230

미국에는 Section 230이라는 법이 있다. 인터넷 플랫폼 자체는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법이다. 쉽게 말해, 유튜브에 누군가 나쁜 영상을 올려도 유튜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인터넷 초기인 1996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원래 초기 인터넷 플랫폼들이 크고 작은 소송 전에 휘말리지 않고 발전할 동기를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 빅테크는 이법을 방패 삼아 30년 동안이나 아무런 책임 없이 그들의 사업을 불려 나가 지금과 같은 거대 기업이 될 수 있었다. 현재의 그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인터넷 초창기의 신생기업을 보호하던 완벽 면죄부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사업을 불려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좋은 시절은 지나갔나. 지난 3월 25일, 캘리포니아 배심원단이 메타와 유튜브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소셜미디어의 유해성을 알고 있음에도 중독성 알고리즘을 돌렸다는 이유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어떻게 Section 230이 뚫려버린 걸까?


원고는 누구였나

케일리 (Kaley)라는 20세 여성이다. 그녀는 6세부터 유튜브, 9세부터 인스타그램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우울증, 신체이형장애, 자살충동을 경험했다. 원래 소송에는 틱톡과 스냅도 피고로 포함됐지만 재판 전 합의금을 내면서 빠졌고, 메타와 유튜브만 끝까지 배심원 앞에 섰다. 거물인 자신들이 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런저런 개인에 합의금 따위를 주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생각해 끝까지 가기로 한 것 같다.


왜 중독되는가

소셜미디어 중독의 핵심은 "가변 보상 스케줄"이다. 심리학에서 나온 개념인데, 슬롯머신 원리와 같다. 유튜브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유튜브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재밌는 콘텐츠가 나오는 게 아니다. 별로인 것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스크롤을 하다 보면 재밌는 건 반드시 나온다. 가끔씩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하다. 언제 좋은 게 나올지 모르니까 계속 스크롤하게 된다. 그냥 끄면 무엇인가 중요한 걸 놓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무한 스크롤, 자동재생, 좋아요 알림이 전부 이 심리를 바탕으로 설계됐다. 그러니까 소셜미디어 중독은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성인도 이 설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아이들은 더 취약하다. 전두엽, 즉 충동 조절과 판단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자극에 훨씬 강하게 반응하고, 스스로 멈추는 능력이 약하다. 이런 중독을 겪으며 성장한 뇌가 성인이 된 후 건강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나라는 2025 년 말, 아이들이 소셜미디어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에 단단히 중독돼 참을성이 더욱더 없어진 아이들의 강한 저항을 부모라면, 교사라면 이미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메타와 유튜브는 왜 졌나

원고 측 변호사가 전략을 바꿨다. 콘텐츠 질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로 접근했다. 플랫폼에 존재하는 영상이 나쁜 게 아니라, “중독되도록 앱을 설계한 것 자체”가 제품 결함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렇게 되면 Section 230이 적용이 안 된다. 자동차 결함 소송, 담배 소송과 처럼, 위험하거나 해로운 제품에 대한 책임 영역으로 들어오는 거다. 그 결과가 이번 원고 승소이다.


총배상액은 불과 600만 달러. 소셜미디어 재벌들의 수익을 생각하면 푼돈에 가깝다. 그 열 배라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불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신문에 실린 마크 저커버그의 얼굴엔 왜 수심이 가득할까?


Jury Rules Against Meta and YouTube for Addictive Features, New York Times Mar 26, 2026


그들은 자신들이 제품의 해악을 알고 있었다

이번 재판에서 메타 내부 문서가 공개됐는 데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11세 아이들이 경쟁 앱보다 인스타그램으로 돌아오는 비율이 4배 높다." 또 다른 문서에는 "트윈 (Tween, 11-12세를 이르는 말)을 잡아야 크게 이긴다"라고 적혀 있었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뷰티 필터는 별도로 문제가 됐다. 성형한 얼굴을 매일 보면서 자신의 얼굴과 비교하게 만드는 구조, 이것이 10대 여자아이들의 자존감과 신체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을 메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꾸지 않았다. 이것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튜브는 역시 중독적 설계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자동재생, 무한 추천, 시청 시간 극대화 알고리즘이 그것이다. 유튜브 측은 케일리의 의료 기록 어디에도 유튜브 중독이라는 언급이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졌다. 그 알고리즘 자체가 문제라는 면은 같기 때문이다. 즉, 비슷한 알고리즘을 쓰는 타 플랫폼의 해악성 역시 인정되었다는 면이 획기적이다.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로비와 Section230 덕에 책임이라는 걸 거의 져 본 적이 없던 메타와 유튜브는 당연히 항소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다. 이번 소송뒤에는 1,500건 이상의 비슷한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 줄에 서 있는 원고는 케일리 같은 무명의 개인이 아니다. 각 주의 검찰총장과 학교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아주 구체적이다. 소셜미디어 중독으로 학생들의 집중력이 무너지고, 온라인 괴롭힘이 교실 안으로 침투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실제 비용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비용을 플랫폼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참고 문헌이 넘쳐난다. 이번 판결로 알고리즘의 중독성이 인정돼 버린 지금, 주 검찰총장이 원고면 배상 규모는 차원이 달라진다. 이틀 전 뉴멕시코에서 메타에 부과된 벌금은 3억 7500만 달러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알고리즘이 달라질까

불행히도 낙관하기 어렵다. 담배회사들의 전례가 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중독성 없다고 버티다가 결국 인정하고 배상에도 합의했다. 미디어를 통한 직접 광고가 금지되고 무서운 경고 문구를 커다랗게 붙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담배를 모르나? 경고 문구와 사진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라 담배를 얼른 끊나? 아니다. 게다가 담배회사는 수익의 일부를 연구에 기부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토바코머니를 통해서 수십억 원짜리 장비를 새로 사는 날, 우리 연구실 가족들은 기쁨에 넘쳤고, 내 마음속에는 담배회사가 좋은 사람들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소셜미디어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유튜브 기초과학재단에서 기부한 장비 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은 꿈의 첨단 장비를 매일매일 이용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유튜브가 좋아지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이번 판결이 상급 법원에서 뒤집어지지 않는다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분명히 "장기간 사용은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커다랗게 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수년에 걸쳐 사람들을 엮어 올렸던 알고리즘을 새로 쓰거나 크게 고칠까? 솔직히 그럴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중독성이 있고, 아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경고하기만 하면 별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담배처럼.


그래도 이번 판결이 의미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 뇌의 약점을 잡아 설계에 응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한 뒤 뇌에 미치는 악영향은 나 몰라라 했던 회사가 처음으로 법정에서 책임을 인정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입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을 엮어 들여 바로바로 수익화해 왔던 플랫폼이 인간의 정신건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번에 이긴 원고는 무명의 20세 젊은이이다. 인간의 뇌를 상대로 한 빅테크의 끝없는 이윤추구에 우리 보통 사람들이 저항할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사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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