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머리(1892)-프란츠 폰 슈투크
독일 화가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의 <메두사의 머리(Head of Medusa, 1892)>. 그림으로만 보면 마치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파스텔화이다. 갸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그러나 거무스름한 입술과 황금빛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은 어딘가 무시무시하다. 저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면 누구든 오싹하게 굳어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 이것으로 그녀가 누구인지는 그림의 제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녀는 메두사, 눈을 마주치는 어느 누구나 돌로 만들어 버리는 여인이다. 결국 그녀는 페르세우스의 손에 머리를 잘리게 되고, 이는 아테네 여신의 방패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메두사가 원래부터 이런 무시무시한 괴물이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인 메두사는 고르곤 세 자매 중 하나이다. 고르곤 세 자매는 뱀 머리카락과 멧돼지의 어금니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세 자매 중 유일하게 필멸의 존재인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님프였다고 한다. 그녀의 아름다움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 그녀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신화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아테네 여신의 저주로 괴물이 되었다고 한다. 메두사가 아테네 여신과 아름다움을 겨루다가 여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신화도 있지만, 읽었던 것 중 메두사의 가련한 운명에 대한 신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님프 메두사는 매우 아름다워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았다. 포세이돈은 그녀와 거리낌 없이 사랑을 나눴고, 그 장소가 아테네 여신의 신전에까지 이르렀다(신화에 따르면 메두사는 아테네 신전의 여사제였다고도 한다). 성스러운 장소에서 사랑을 나눈 둘에 대해, 아테네 여신은 아버지 제우스의 형제이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을 벌할 수 없었고 대신 그 벌을 모두 인간인 메두사에게 내리게 된다(신화에서는 아테네 여신 역시 포세이돈에게 애정을 품고 있었으나 그가 메두사를 사랑한 탓에 여신이 연적인 메두사에게 벌을 내렸다고도 전해진다). 그리하여 메두사의 외모는 고르곤 자매들과 똑같이 뱀머리카락에 독기 가득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는 괴물로 변해버렸다. 그 무시무시한 시선을 마주 한 사람들과 동물들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렸다. 이후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의 손에 그 머리가 잘려 죽게 되고, 페르세우스가 그녀의 머리를 넣은 주머니를 가지고 헤르메스의 하늘을 나는 신발로 날아서 사막을 건너갈 때 그 피에서 날개 달린 천마 페가수스와, 황금검을 지닌 전사 또는 뱀의 모습을 한 괴물로 알려진 크리사오르가 태어났다고 한다(혹은 포세이돈이 죽은 메두사의 몸에서 두 아들을 꺼냈다고 한다). 그녀가 진정으로 아테네 여신과 아름다움을 겨루다가 저주를 받았다면, 그것은 당연히 그녀의 잘못이었겠지만, 후자라면 메두사의 운명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렇게 잘린 메두사의 머리는 결국 아테네 여신의 방패 장식이 되었으니, 여신은 두 번이나 그녀를 벌한 셈이다. 신들의 복수는 정말 무자비하다.
독일 상징주의 예술 운동을 전개한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는 뮌헨 조형예술학교와 뮌헨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뮌헨 분리파 운동을 주도했다. 초기에는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에서 만화가로 잡지 <유겐트(Jugend)>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이후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의 영향으로 회회 작업을 하며 신화와 상징을 이용한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5년부터 뮌헨 아카데미의 교수로 봉직하면서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등과 같은 젊은 화가들을 가르쳤고 이는 독일 현대 미술 발전에 기여했다. 이 공로로 그는 1905년에 바이에른 왕실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06년에는 화가로서는 이례적으로 기사 서임을 받고 귀족 명부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화가로서의 영예를 누린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상징주의와 아르누보의 쇠퇴로 그의 작품들도 구시대적인 것으로 비판받았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 작품의 중요성도 약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아르누보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도 다시 진행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화나 성경의 고전에서 테마를 가져오되, 에로티시즘과 당시 유행했던 정신분석등이 접목된, 어쩌면 고전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를 그의 작품들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주도한 뮌헨 분리파 운동은 보수적인 독일미술계에 다양한 미술 양식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그의 진보적 사상은 제자들을 통해 전달되었으며, 이는 후대 모더니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개인 소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