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대 화가 이만익의 <별(알퐁스 도데), (2007)>. 별이 쏟아지는 짧고 푸른 여름밤, 편안한 얼굴로 잠든 소녀를, 포근히 감싸듯 턱을 고인 채로 소년은 하늘을 바라본다. 누군가의 마음이었을지 모를, 쏟아져내리는 별들을 보며, 소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림의 제목을 보면서, 소년의 품속에 저 하늘의 별 하나가 내려와 편안히 잠들었겠거니 하며 미소 지어졌다. 프랑스의 아름답고 순수한 짧은 소설이, 우리나라 정서와 만나면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는 걸까.
작품 제목의 소설 <별>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대표작 <풍차 방앗간 편지(1869)>에 실린 짧은 이야기이다. 프로방스 지역 목동인 '나'는 몇 주일씩 양 떼와 사냥개만 상대하며 보름에 한 번씩 양식을 가져다주는 농장 사람들에게 마을의 소식을 듣는다. 그 소식 중 가장 궁금한 것은 주인집의 딸인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 그가 이제껏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그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에게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름에 한 번씩 오던 양식이 오후가 넘도록 오지 않아 걱정하며 기다리던 목동에게, 노새를 몰고 꿈처럼 나타난 스테파네트 아가씨. 일손이 모자라 그녀가 양식을 전달하러 왔다는 천사 같은 스테파네트는, 목동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마을로 내려가는데, 불어난 강을 건너지 못해 목동에게로 되돌아온다.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바깥의 모닥불 앞에서 그녀를 보호하며 행복해하던 목동에게, 잠자리가 불편했던 스테파네트가 다가와 그의 옆에 앉는다. 쏟아지는 여름밤의 별을 바라보며, 아가씨는 별에 대해 묻고 목동은 별 이야기를 한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 스테파네트가 목동의 어깨에 가볍게 기댄다. 목동은 하늘을 움직이는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다고 생각했다고. 그 아름다운 소설 속 감성이 이만익 화가의 그림과 만나니 더 아름다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주 오래전, 아직 가로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던 마을로 농촌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낮 동안의 활동으로 지쳐 잠들었던 날, 환한 바깥의 빛으로 날이 새었는가 하고 문을 열었는데 바깥은 여전한 밤이었다. 그러나 달도 뜨지 않았던 그 바깥을 밝히는 것은, 밤하늘을 빽빽하게 수놓은 은빛 별들이었다. 그때의 밤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운 은빛 하늘이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밤하늘은, 그 오래전 은빛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그 하늘이었다.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 포스터 원화를 제작하고 88 올림픽 미술감독을 역임한 화가 이만익은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취미를 갖게 되었으며, 경기중 3학년 재학 때 국전에 입선하게 된다. 그러나 중학생의 국전 입선이 논란이 되었고 이후 국전 출품 자격이 대학 3년 이상이라는 규정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중학생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보였던 그는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여 미술을 수학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전후 우리나라 삶의 비참한 현실과 회화적 표현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국전에 특선, 졸업 이후 1966년부터 3년 연속 국전에 특선을 하지만, 이후 계속되는 낙선으로 제도권에 환멸을 느끼고 1973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유학 중 보나르, 고흐, 드가, 마티스 등의 작품들을 보며 자신은 그들이 될 수 없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흔적이 그림에 나타나면 가차 없이 지우면서 '과연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답으로 고향, 가족, 설화 등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 그는 한국적 소재로 한국적 미감을 통한 독자적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설화, 판소리의 주인공들이 작품에 등장했으며, 그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색채와 단순하지만 명쾌한 형태를 통해 우리나라의 한(恨)과 기원이 담긴 우리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삶과 역사의 인물들을 재조명했다고 한다. 기법 면에서도 평면성의 화면과 굵직한 윤곽선 안에 토속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한국적 감성을 살렸으며, 이로 인해 “사인(signature)이 없더라도 누구의 그림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그의 화법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났다. 시를 사랑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화가 이만익은, 고대 그리스 서정 시인 시모니데스의 '회화는 말 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회화'라는 구절에 동의하며 자신의 그림을 ‘말하는 그림, 소리 없는 시’로 천명하고 ‘그림은 시이고 시는 그림’이라는 소신으로 작품을 제작해 나갔다고 한다. ‘한국인의 자화상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화가’라고 불렸던 그는 2012년 8월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74세의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의 소장처는 찾지 못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