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타우로스(1885)-조지 프레데릭 왓츠
19세기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왓츠(George Frederic Watts)의 <미노타우로스(1885)>. 바다가 보이는 높은 성벽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는 괴물의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난간에 살짝 얹은 팔은 먼바다를 궁금해하는 것 같이 보이고 바다를 향한 그의 시선은,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이 가득 담겨있을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한 미로의 성에 갇힌 채 공물로 바쳐져 미로로 들어오는 남녀를 잡아먹는 괴물일 뿐. 먼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그에게도 감정이 있었음을, 그리하여 그 역시도 희망과 동경을 지닌 생명체임을 화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크레타 왕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형제들을 누르고 왕이 된다. 자신의 왕권이 신에게서 왔음을 알릴 때 자신이 기도하는 모든 것을 신이 들어준다 하였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칠 소 한 마리를 보내줄 것을 기원했다. 신은 그의 소원을 듣고 바다에서 멋진 하얀 황소 한 마리를 보낸다. 신에게 감사하며 소를 제물로 바쳤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이 하얀 황소가 너무나 탐났다. 그는 이 소를 자신의 가축으로 삼고, 가축 중 흰 소 한 마리를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노스에 대해 포세이돈은 노하여 저주를 내린다. 그 저주는 다름 아닌, 왕비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이 보낸 소에 기이한 욕정을 품게 하는 것. 황소에 대한 왕비의 욕정은 너무나 커져서 그녀는 그것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당시 궁전에 있던 건축과 공예의 달인 다이달로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된다. 다이달로스는 왕비에게 속이 비어있는 암소 조각을 만들어 주게 되고, 왕비는 그 비어있는 공간에 들어가 포세이돈의 황소를 기다렸다. 다이달로스의 조각은 실물 암소와 거의 다름없었기에, 흥분한 황소는 이 암소 조각에 달려들었으며, 조각 안에 있던 왕비 파시파에는 황소와 교합하여 그녀의 욕정을 만족시켰다. 몇 달 후 파시파에가 낳은 것은 반은 소, 반은 인간인 괴물이었다.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의 미노타우로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괴물은, 처음에는 파시파에가 돌보며 길렀으나, 성장할수록 사람을 집어삼키고 각종 야만적인 행동을 보여 더 이상 기른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를 시켜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를 짓게 하고 그곳에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했다. 그리고 그가 침공하여 승리를 거둔 아테네로부터 남녀 7명씩을 공물로 받아 이 라비린토스에 보냈고, 미로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은 속절없이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 되었다. 당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백성들의 죽음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자원하여 본인이 제물로 잠입한다. 공물로 바쳐진 7명의 남녀를 보던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남들보다 눈에 띄는 왕자 테세우스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계획에 동참한다. 아리아드네는 실뭉치를 주면서 미로의 입구에 실을 매고 실을 풀며 들어갔다가 나올 때 실을 감으며 나오라는,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방법대로 테세우스는 라비린토스 깊은 곳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만나 그를 처단한다. 먹이를 기다리다 테세우스의 칼에 죽임을 당한 미노타우로스. 신화 속의 괴물은 그리 죽었지만, 원하지 않은 탄생과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감금되어야 했던 미노타우로스에게도 감정은 있지 않았을까. 헤어 나올 수 없는 운명의 정신적 미로와, 다이달로스의 신묘한 재주로 만든 물리적 미로에 갇혀야만 했던 괴물에게도 쓸쓸함과 외로움, 서글픔은 있었지 않을까.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라 칭해지는 조지 프레데릭 왓츠는 잉글랜드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로, 상징주의 화풍의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으며 '영국의 미켈란젤로'라 불렸다고 한다. 18세에 왕립예술원에 등록하여 정식 미술교육을 받았고, 20세가 되던 해 왕립예술원 여름 전시회에서 첫 작품을 전시했으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왕립예술원 주최 장식공모전에서 우승하였으며, 상금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며 현지의 많은 작품들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그에게 두 번이나 준 남작 작위를 고사한 후에, 왕립예술원의 정식 회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고 한다. 조각과 초상화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작품을 보고 영감과 희망을 얻길 바랐다고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테이트 브리튼, 국립초상화미술관, 왓츠 갤러리 등 영국 전역의 갤러리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