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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Dec 12. 2023

111. 연말이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도 굉장히 전투적으로 한다. 탁구도 상대와 랠리 하면서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그 이상 욕심내다 보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다 망가진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님은 60대 후반으로 현재 사시는 곳의 면사무소에서 코치로부터 일주일에 두 번 탁구를 배우고 동네 사람들과 탁구를 치신다고 한다. 탁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하시느라 얼굴 가득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맞아요. 욕심내는 사람 바로 여기 있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고백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욕심내다 보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라는 말에 뜨끔해서다.

    

특히 12월 연말이면 뭔가 결판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결과를 내보이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에 대한 결판이냐고? 이제는 말하기도 징글징글한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자신감 갖기, 코스 가르기에 대한 자신감 갖기가 그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치 회사에서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고가로 A, B, C, D 평가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긴다. 1년 동안 포핸드 드라이브 기술이 얼마나 늘었는지  가모드로 전환한다. ‘제 점수는요?’라고 물은 뒤  C나 D를 받지 않기 위해 12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에 온몸을 불사른다. 레슨도 빡세게, 연습도 빡세게.


이렇게 해야 1년 동안 열심히 운동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착각인 줄 알지만 마치 일 년을 보람차게 살았다는 감각을 위해 모른 체한다. 12월 열심히 했으면 올해도 열심히 했다는 엉뚱한 계산법이 이렇게 작동한다. 아니면 달성하지 못한 목표에 대한 아쉬움을 아니 미련을 불사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 연말에는 이렇게 무리하게 몰아붙이다가 사이 났다. 12월 한 달을 불사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새해가 밝아 희망이 넘실대는 1월이 왔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12월에 무리한 몸은 새 출발을 하기엔 부실했고 3월이 되어서야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었지만 그때가 있었기에 올해 연말을 보내는 방법은 전과 달라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올 12월은 다르게 보내고 있냐고? 아니 다시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미련을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작년보다 욕심은 덜 내는 걸로. 몸을 무리하게 몰아붙이지는 않는 걸로 타협했다. ‘워워워’ 하며 불사르려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그럼에도 생각처럼 마음이 다스려지않는다. 어제는 레슨 시간이 지났음에도 5분을 추가해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 불규칙 레슨을 받았다. 무리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며? 욕심내지 않는다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다음 문장이 지금의 나를 설명해 주려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 작년에 분명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마따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려나?

이런 인생이 반복되려나?


취미로 탁구를 치는 생활 체육인인 난  앞으로 20년 이상 탁구를 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누구보다 나와 잘 지내야 한다. 내 몸, 내 마음과 잘 지내야 한다. 스승님 말씀처럼 욕심내다 보면 몸이 망가져 좋아하는 탁구를 영영 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니 연말인 지금 스스로에게 해 줄 말은 사실 이런 말이 아닐까 싶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언제나 잘하지 않아도 돼. 매년 나아질 순 없잖아. ”

          

그럼에도 머릿속은 온통 ‘오늘은 탁구장 가서 포핸드 드라이브 연습을 이렇게 해 봐야지. 아니야 이렇게 해 봐야겠어.’라며 야심 찬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고야! 아무래도 주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병만 나지 않는 걸로 계획을 변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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